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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말

기자명 법보신문

재능만 믿고 나태하면
순식간에 죽음 다가와
부지런함이 수행 완성
게으름 말고 정진해야


주자학의 대성자인 송나라 주희는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숫따니빠따’는 주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태어난 자들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결국 늙음에 이르러 죽고 만다”라고 읊고 있다.


하루하루 시간은 더디게 갈 수 있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처럼, 어떤 일의 결과나 보고픈 사람을 간절한 심정으로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일초의 짧은 시간도 참으로 더디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어떤 재미에 푹 빠진 사람에게는 몇 시간도 몇 초 밖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는 속담이 말하는 바와 같다.


그런데 신선놀음에 빠져 있는 사이 늙음과 죽음은 슬며시 다가와, 충격적인 당혹감을 안겨다준다. 그 전까지 우리에게 있어 늙음과 죽음은 남의 이야기이며, 소파에 기대어 보는 드라마속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하루를 어떻게 재미있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며, 쾌락을 좇아 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우리 범부(凡夫)들의 삶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수행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출가자라고 해도 재가자와 다를 바 없는 범부이긴 마찬가지이다.


‘담마빠다’에는 ‘지혜로운 자는 마치 준마가 둔마를 제치듯 나아간다’라는 비유가 나온다. 여기서 지혜로운 자는 나태하지 않은 자(appamatta)를 말한다. ‘나태함은 죽음의 길이며, 나태하지 않음은 불사(不死)의 길’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나아가 나태하지 않고 행위가 깨끗하고, 신중하게 행동하고 스스로 자제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수행자(dhammajīvino)는 나날이 명성이 더해간다는 가르침도 이 비유를 전하는 경문에서 볼 수 있다.


수행은 천재라서 잘하는 것이 아니다. 수행은 나태하지 않은 사람이 잘하는 것이다. 그 예를 우리는 쭐라판타까(Cullapanthaka)의 예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친형의 권유로 출가했으나 너무도 우둔하여 절에서 쫓겨나게 된다. 절에서 쫓겨난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정사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마침 그를 본 부처님은 쭐라판타카를 자비의 마음으로 이끌어 그에게 알맞은 가르침을 주게 된다. 그것은 흰 천으로 비구들의 신발을 닦아주는 일이었다. 4개월 동안 시 한 구절을 외우지 못한 그가, 아라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단 한순간도 게으름피지 않고 열심히 수행한 결과였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살인귀로 악명을 떨친 앙굴리말라를 들 수 있다. 그는 999명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몸에 걸치고 다녔기에 앙굴리말라라는 이름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부처님을 만나 진심으로 참회하고 수행한 결과 아라한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앙굴리말라가 해탈의 즐거움을 시로 읊었는데, 그 첫 구절이 바로 나태함에 관련된 것이다. “예전에는 나태했어도 지금은 나태하지 않은 자, 그는 이 세상을 비추네.” 나태함은 어둠이며, 나태하지 않음은 밝음이란 의미이다.

 

▲이필원 박사

나아가 다른 경전에서는 “선정을 닦되 나태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다”는 말씀도 전한다. 수행할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지 않으면 반드시 훗날 후회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게으름피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이 ‘말’의 비유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재능을 뛰어넘는 것이 노력임을 새삼 일깨워주는 비유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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