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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가족

기자명 법보신문

서로간 따뜻한 배려로 가정에 웃음꽃 펴

가정 구성원인 가족은
과거 인연으로 맺어져
배려 없는 집착·구속은
불편한 관계로 변질시켜


정행품의 141가지 원은 14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원은 실천적 행위를 담고 있고 그 실천은 깊은 불법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불법의 특징은 나와 나의 환경에 대해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게 가르치고 우리의 인지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 발원을 할 때 그것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 아닌가의 가늠점은, 그 발원 속에 교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실천적인 행위를 담고 있는가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인내심이 있는가의 여부에 있다.


“불자여! 보살이 집안에 있을 때면, 중생들이 집의 성품이 공한 것을 알고 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발원해야 한다.”


‘보살이 집안에 있을 때’란 일반적으로 가정생활을 말한다. 그 위치나 입장은 가족 구성원의 한명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정해진다. 2013년 3월5일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가장인 한 치과의사의 자살소식이다. 십년간 기러기 아빠로서 살았고 아내와 딸은 미국에서 지냈던 모양이다. 자세한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경제문제와 존재감의 문제, 외로움의 문제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비단 그 치과의사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에 기러기 아빠의 문제는 하나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가족은 있으나 가정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이나 가정에 바라는 욕구가 외면된 채로 오랜 시간 방치되는 것이다. 책임과 의무를 내세우면 명분상 할 말이야 없지만 우리의 DNA마저 긴 시간을 인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생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의해 생각해 보자. 141가지 발원에 ‘나는 …을 바란다’고 하지 않고 ‘중생들이 …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나와 중생의 관계에서 중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중생들 속에서 그 가운데 하나인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중생과의 관계를 전제하면 차별이 발생하고, 중생들 가운데 하나인 나를 발견하면 평등을 생각할 수 있다. 차별 속에서는 우선순위에 따라 중심이 되는 사람과 주변인이 생기게 된다. 주변인은 중심이 되는 사람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차별이 정당화될 수 있고 그것에 모두가 동의하는 순간 희생은 책임과 의무로 포장된다.


‘집의 성품이 공한 것을 알고’란 가정을 구성하는 가족을 묶어주는 구심점은 정이다. 따뜻한 정이 있는 가정에는 가족이 잘 모인다. 정의 또 다른 표현은 집착이다. 남과는 다르게 가족끼리는 마음 놓고 집착할 수 있다. 배려하는 집착이 정인 것이다. 집착은 나와 상대를 구속하여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따뜻한 배려가 있다면 구속에 따른 소속감은 삶에 의욕과 안정감을 준다. 배려가 없는 집착은 구속에 따른 불편함이 생긴다. 편하고자 하면 가장 편하고 불편하자면 가장 불편할 수 있는 관계가 가족관계인 것이다.


사람들이 한 가족으로 만나게 되는 데는 4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과거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한다. 하나의 인연도 없다면 가족으로 만날 일이 없다. 그 네 가지란 1)과거 생에 은혜를 입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만나는 경우다. 이때 부부라면 금슬이 좋고 부모자식 사이라면 인자한 부모 효성스런 자식이 될 것이다. 2)과거 생에 원한 관계가 있어 그 원한을 갚기 위해 만나는 경우다. 이때 부부사이로 만나든 부모자식 사이로 만나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집안이 망가지는 상황을 초래한다. 3)과거 생에 빚을 빌려준 경우다. 생이 바뀌면서 기억은 사라져도 업은 남아서 빚을 갚으러 오는 이와 가족관계를 맺는다. 이때 물질적으로는 이득을 얻지만 애정이나 효성은 없다.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대하는 것에 비해 정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4)빚을 받으러 오는 이와 가족관계를 맺는 경우가 있다. 빚쟁이가 자식으로 오면 가족 구조의 특성상 덜 힘이 들지만 부부나 부모가 빚을 받으려 하는 경우엔 그 고통이 매우 심하다. 삶의 표면은 관계의 형식이 지배하고 삶의 이면은 과거의 업이 지배한다. 업이 소멸하면 관계의 끈도 소멸한다.


과학자들은 말한다. 우리의 몸이 동질의 에너지가 서로 관계 맺는 방정식의 차이에 따라 현재처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낸다고. 에너지는 매 순간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변화하는 패턴이 이전의 모습과 차이가 작다면 우리의 몸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패턴이 크게 변하면 삶과 죽음처럼 커다란 변화가 나타난다. 겉모습이 어떠하든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매 순간 변하고 있으며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다. 나도 가족의 구성원도 가족의 소유물도 모두 변하며 실체가 없이 항상 변한다는 것을 알고, 실체가 없는 곳에 실체가 없는 내가 집착을 하는 것이 모두 허망한 것임을 알아차린다.

 

▲도암 스님

‘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발원해야 한다’는 말에서 ‘압박’이 크다는 것은 집착이 크다는 말이다. 집착이 크다는 것은 인연의 진실한 모습과 인연 과보의 관계를 깊게 이해하지 못할 때 생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연의 관계에서 업을 갚고 복을 지으며 청정하게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고마운 인연으로 소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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