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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법장사 주지 퇴휴 스님

“마음을 낮추는 사람에게 만가지 복이 돌아갑니다”

학승 시절 10.27 법난 목도
항거 못한 교계현실에 절규
불교 힘 법에서 나온다 인식
도심포교 매진 전법 저변확대

 

재가참여 사찰운영은 당연
재정투명 토대 위 신도결속
신도 10명에서 현재 3천세대

 

 

▲퇴휴 스님

 


‘수행자들이여 이제 너희들도 세상으로 나가라. 그리하여 세간의 안락과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설법하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게 논리정연하고 정확한 표현으로 법을 설하라. 그리고 진정으로 원만하고 청정한 행을 드러내 보여라. 세간으로 나갈 때는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고 따로따로 다녀라. 세상에는 더러움이 적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그들도 설법을 듣지 않으면 타락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설법을 듣는다면 타락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제 나도 우루벨라의 세나미가마(병장촌)로 떠나리라.’


부처님의 전도선언을 가슴에 새겼던 퇴휴(退休) 스님도 정든 북한산 운가사 일주문을 열고 홀로 길을 떠났다. 첫 도착지는 서울 노원구 창동. 그 때가 1991년. 창동역 앞 상가를 임대해 법장사를 개원했다. 운가사에서 인연 맺은 불자 10여명의 후원이 있었지만 당시 스님은 거의 무일푼이었기에 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 자금으로 40평 규모의 작은 포교당을 마련했다.


장엄불단과 거룩한 불상은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베니어판 불단에 석굴암 부처님 사진을 걸었다. 시멘트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새벽예불만큼은 빼놓지 않고 올렸고, 낮엔 살림에 쓸 그릇을 주우러 골목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신도는 없었지만 퇴휴 스님은 마음을 다해 불단에 향을 올렸다. 번뇌의 속박에 걸려 고통 받고 있는 도시 사람들에게 반야를 통한 해탈의 대자유를 전하겠다는 포교 원력은 그렇게 시작됐다.


1993년 노원구 중계동으로 확장 이전한 후 2000년 중량구 묵동 봉화산 앞 신내아파트 지구에 종교 부지를 분양 받아 지금의 법장사를 창건했다. 어린이는 물론 중고생, 대학, 청년, 가족 법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어린이불교를 비롯해 중고등학생회, 청년회, 거사회. 여자신도회, 합창단, 성인사물놀이반 등의 신행단체도 일주일 한 번 이상의 정기법회를 봉행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법장사 인근 토지도 인수해 이젠 부지만도 800여 평에 이른다.
교리반과 경전반으로 구성된 교육기관 영산불교대학의 경전반은 벌써 48기생을 모집하고 있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부설기관으로는 중화3동 어린이집과 서울시도시철도공사 직장 어린이집인 대공원어린이집이 있다.


청년 불자 10여명으로 시작한 법장사의 현재 신도 등록 세대수는 약 3300세대. 도시 특성상 유동 인구가 많아 실재 등록 세대 수는 매년 격차를 보이지만, 한 달에 한 번 이상 법회에 참석하는 평균 세대수는 약 2000세대. 10개 포교당 중 6개 이상이 1년 안에 문을 닫는 도심 포교당 현실을 감안할 때 이는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강북 도심포교의 한 획을 그은 법장사가 4월14일로 창립 22주년을 맞았다. 법장사가 지나온 여정 속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메시지가 분명 있을 것이다.


전남 구례 출생인 퇴휴 스님은 동진출가했다. 일찍이 사문의 길을 걸었던 삼촌은 퇴휴 스님의 속가 집에 들를 때마다 부모님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절에 머물러야 살 수 있습니다. 숙연입니다.’ 스님이 첫발을 내딛은 사찰은 동화사. 12살의 소년에게 산사는 ‘적막’으로 다가왔을 것만 같다.


“아닙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에도 뭔지 모를 희열감이 밀려왔습니다. 산사에 닿았던 당시의 감정을 지금도 필설로는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말한다면 저도 모르게 되뇌었던 ‘참 좋다!’라는 한 마디 뿐입니다.”


포교 원력을 세운 건 학승 시절 발생한 1980년 10.27법난을 목도한 후였다.


“전두환 신군부가 사회정화라는 미명 아래 전국 사찰에 중무장한 계엄군을 투입했지만, 당시 불교계는 항거 한 번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습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중화하지 못한 우리에게 허물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탄탄한 신도 조직만 서 있었어도 그렇게 무참하게 당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부처님 법을 전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반증하는 일대 사건이기도 했다. 퇴휴 스님은 은사 수혜 스님이 주석하고 있던 북한산 운가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뜻을 펴기 시작했다. 청소년과 장년층의 신도를 조직화하며 법회를 열어 가자 운가사는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산에만 머무를 퇴휴 스님이 아니었다. 퇴휴 스님은 좀 더 적극적인 전도를 지향하고 있었다.


“대중이 숨 쉬고 있는 공간으로 뛰어 들어야 포교의 저변 확대도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산에 있어야 할 절이 왜 도시로 내려왔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점 집’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소참법문 한 토막이라도 제대로 해주고 싶었던 스님에게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을 터.


“산과 강이 어우러지고 구름 머문 곳만이 ‘절’이라는 인식을 가진 분들에게 부처님 법 머문 곳이 ‘절’이라는 설명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던 게 사실입니다.”


무의미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그 사이 퇴휴 스님은 원력만 세웠다고 그냥 성취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좀 더 구체적인 전도계획과 그에 따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법장사가 뿌리내릴 지역특성부터 파악했다. 유동인구, 학력, 남녀노소 비율까지 면밀히 파악한 후 새로운 포교전략을 세웠다.


“교육수준이 높은 그들에게 맹목적인 신행강요는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육수준이 높다 해서 교리 이해 수준 또한 높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 역설 속에 답이 있었습니다.”


영산불교대학은 그렇게 시작됐다. 신도들의 변화가 감지됐다. 경전과 교리를 통해 나름대로의 불교관을 세운 불자들은 불교관에 걸 맞는 인생관과 삶의 가치관을 정립해 가고 있었다. 퇴휴 스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졸업생을 중심으로 신도회를 조직해 갔다. 청소년과 청년은 물론 장년층까지 세분화 해 각각의 특성에 맞는 특별법회를 꾸려 나갔다. 당시 어린이 법회에 참여했던 아이는 이제 어린이, 청소년 법회를 이끌고 있다.


영산불교대학이 법장사의 주동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불교대학 운영 하나로 3000세대의 신도조직이 가능했던 것일까? 어쩌면 법장사 운영의 네 가지 원칙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법하다. 원칙 첫 번째는 정법불교 실천이다. 두 번째는 신도의 가족화, 세 번째는 사찰운영의 투명성과 의사 결정의 민주성, 네 번째는 일상생활의 건전성(지도자의 모범적 실천 및 공개성 유지)이다. 세 번째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법장사 최고 의사결정 기구는 사찰운영위원회입니다. 각 신도 단체별 대표자 등 30여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재정현황은 물론 법장사 행사 하나하나까지 이 기구에서 논의합니다.”


일례로 사찰 ‘빚’이 얼마인지도 밝힌다고 한다. 사찰운영위원회 운영의 최대 강점은 결속력. ‘퇴휴 스님의 법장사’가 아닌 ‘사부대중의 법장사’라는 주인 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에, 다 함께 법장사를 가꿔가자는 원력이 그 어느 사찰보다 강하다. 신도들 스스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상호간의 관혼상제를 챙기는 것은 물론 사회봉사와 법장사 허드렛일도 마다않고 나선다. 공양주만 20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법장사 불자들의 봉사실천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봉사가 곧 보살행’이라는 퇴휴 스님의 설법을 불자들이 새겼기 때문이다.


“내가 비록 좀 불편하고 괴로워도 상대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게 봉사이고, 육바라밀을 실천하며 타인을 이롭게 해주는 게 보살행이니 서로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봉사와 보살행을 한다고 해서 ‘나는 베푸는 사람’이라는 상을 세울 건 아닙니다. 봉사, 보살행도 따지고 보면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보살행은 누구를 위해서가 하는 게 아닙니다. 불교나 절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행이 깨닫는 과정의 일부라 전제하고 보면 보살행 자체가 자신의 행복을 찾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보살행을 자리이타(自利利他)라 하는 겁니다.”


스님은 무엇보다 불자라면 하심(下心)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심은 내가 편하기 위해서, 또는 남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적당히 머리 숙여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불성을 구족하고 있다는 근거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신이 부처님입니다’라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심 하는 사람에게는 만 가지 복이 돌아간다’ 했습니다.”

 

환경·노동·인권은 ‘생명’
정치이념 개입되면 왜곡
나눔에 초점 맞춰야 해결

 

봉사·보살행은 일맥상통
평생하면 날마다 좋은 날
부드러운 눈길도 ‘일불’

 

 

▲학승시절 10·27 법난을 목도한 퇴휴 스님은 깊은 절망 속에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포교원력을 세워 실천하고 있다.

 


경희대 NGO대학원에서 NGO정책과 관리를 전공한 스님은 환경, 노동, 인권에 대해 전문적이고도 체계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도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돌봐야 한다는 부처님 뜻에 따라 그들 곁에 섰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2010년 12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독단에 반발해 퇴휴 스님은 조정위원직을 사퇴 한 바 있다.


유엔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활동기구로 평가 받아왔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비인권위’라는 냉소를 받았다. 인권위 축소, 폐지 논란이 일자 당시 인권위원장은 조직기구 축소추진과 감시 견제를 추진한 정부와의 갈등 끝에 사퇴했고, 인권활동 비전문가인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임명됐다. 이후 인권위는 인권 전문가 보다는 친정부 인사위주로 위원들이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구성원들이 인권위원장의 독단파행 운영에 사퇴를 촉구하며 줄줄이 사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계인권선언 62주년을 맞아 열린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자들이 대거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당시 퇴휴 스님은 “인권은 보수나 진보라는 정치 이념을 떠나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라며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권력을 보위하지 않는, 인권을 위한 민주적인 인권기구로서의 회복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환경, 노동, 인권이라 하지만 크게 보면 생명 문제입니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는 부처님 말씀에 입각해 보면 세 분야는 투쟁을 통해 얻어지는 게 아니라 공생관계 속에서 조화롭게 이뤄져야 함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정치이념과 파벌이 개입되는 순간 모든 건 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4대강, 용산참사, 쌍용차사태 등이 확연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생명존엄과, 나눔에만 초점을 맞춰도 그런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퇴휴 스님은 우리 사회가 좀 더 건전한 사회로 진일보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퇴휴 스님이 불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그 뜻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일행일불(一行一佛)!


“한 가지 좋은 일을 하고 한 부처님의 명호를 생각하는 그 순간, 그는 곧 부처님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건 아닙니다. 부드러운 눈길과 좋은 마음을 갖고 사람을 대하며 자리 하나 양보하는 것도 ‘일행일불’ 입니다. 부처님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부처가 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하루 5분 동안 부처가 될 것인지, 하루 동안 부처가 될 것인지. 평생 부처가 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일입니다. 일행일불이 지속되면 ‘날마다 좋은 날’입니다.”


‘세간의 안락과 이익을 위해’ 길을 떠난 퇴휴 스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가 ‘일행일불’을 걷는다면 사회는 공생을 지향하며 변화 할 게 분명하다. 퇴휴 스님의 간절한 바람이요 희망이기도 하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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