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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지금, 티베트가 원하는 것 - 상

티베트 독립 위해선 소신공양도 불사

티베트 불교 중심으로 한
독립 지역이라는 인식이
중국에 대한 반발 출발점

 

 

 

 

얼마 전, 미국의 저명한 티베트학자가 쓴 책의 한국어판 번역본에 대한 서평을 요청받았다. 책의 내용과 쟁점은 날카로웠고 동의하는 부분도 많았으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러나 내심 정말 반가웠던 것은 언제가 국내 학술세미나에서 필자가 발표했던 내용이 이 책의 어떤 부분과 비슷한 논조와 시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당시 나는 어떤 문학하는 교수로부터 “티베트와 달라이라마를 그렇게 폄하하고 있다”며 핏대를 올리고 혼자 열변을 토하더니 문을 ‘꽝’ 닫고 나가버린, 그런 봉변(?)을 당한 기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그 교수는 그때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책의 내용 중 재미있는 부분은 티베트 독립에 관한 저자의 견해였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티베트에 대한 환상이 지난 30여 년간 티베트 독립문제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불러일으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런 환상은 독립을 실현시키는 데 결국 위협이 될 뿐이다.” 이에 관련해 나는 잠시 지면을 통해 티베트 독립의 역사와 중국의 입장을 현실적으로 살펴볼 필요성을 느낀다.


현재 티베트는 여기저기서 소신공양(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침)이 줄을 잇고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자살이라고 보는데 이는 그 속사정을 안다면 자살이 아니다. 또한 달라이 라마가 사주한 것이라 하는데 그도 아니다. 아니 아닐 것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2011년부터 현재까지 총 100명이 넘는 티베트인이 소신공양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사망자 중 대부분은 전·현직 승려와 비구니들이다. 올해 1월에는 일반인(농민)의 시도도 시작됐다.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Free 티베트”와 “달라이라마 귀환”이다. 이들은 분신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비폭력 평화투쟁 노선을 지향하며 국제사회에서 티베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던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14대 달라이 라마는 지난 3월 인도방송 ‘타임즈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계속되고 있는 티베트인 소신공양에 대해 불교적 관점에서 입장을 표명했다. 달라이라마는 “사실상 자살은 기본적으로 폭력적인 형태이나 좋다 또는 나쁘다의 쟁점은 전적으로 동기와 목적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만약 동기가 화가 너무 많이 나있거나 증오를 품거나 한다면 이것은 부정적이다. 만약 동기가 많은 연민과, 고요한 마음이라면 긍정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엄격히 불교적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어떤 행동이 폭력 또는 비폭력적인지는 근본적인 동기에 의해 달려있다.”고 피력했다.


국제사회가 티베트의 전반적 문제, 특히 독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59년 달라이라마가 아슬아슬하게 인도로 망명하고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후부터다. 그후 2008년 3월 국제사회에서 중국 베이징올림픽 보이콧이나 개막식 불참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당시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대규모 반(反)중국 시위로 2명이 사망한 것을 두고 유럽연합(EU) 등은 중국 정부의 무력행사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최근 티베트인의 분신이 계속되자 국제사회가 또 다시 형식적으로 들썩이고 있다. 미국 뉴욕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티베트 청년단’(TYC·Tibetan Youth Congress) 소속 회원 3명은 2012년 2월22일부터 유엔 본부 앞에서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티베트 승려 분신 사건을 핑계로 한 어떤 내정간섭도 반대한다. 어떤 국가나 개인도 티베트 문제를 핑계로 중국 사회의 안정과 민족의 단결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강력한 성명을 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인들은 여전히 소중한 목숨을 담보로 끔찍한 분신을 시도하고 있다. 왜일까?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독립일까? 달라이라마의 귀환일까? 이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과 티베트의 그간의 사건일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950년 10월1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모택동(毛澤東)은 “티베트는 중국의 영토이다. 따라서 인민해방군은 반드시 티베트에 들어가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사실상 여기서부터 중국과 티베트의 독립과 주권에 대한 역사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중국은 티베트를 역사적, 지리적, 민족적으로 완전 병합하기 위해 1996년부터 소위 ‘서남공정’(西南工程)이라는 국가 프로젝트를 실시했는데 이는 중국에서 티베트 지역의 역사, 지리, 민족, 문화 등의 제반사항을 국가차원에서 연구하고 재구성하려는 국가차원의 프로젝트이다. 그 중심에는 그 유명한 ‘칭짱(靑藏)철도’ 프로젝트도 있다. 즉 중국 베이징역에서 라싸역까지 4064Km의 거리를 48시간에 주파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이 계획은 2006년에 완성되었고 지금은 이 철도(일명 하늘기차)를 이용해서 수많은 내지인들과 이방인들이 티베트로 무자비하게 들어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영토 관념과 통치 철학의 확고한 신념은 13세기 중엽 원(元)나라로부터 그 근원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지도자들은 저마다 “예부터 티베트는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13세기 중엽 티베트가 정식으로 원나라의 판도에 귀속됐었고, 그 이후 줄곧 중앙정권의 관할 하에 있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티베트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티베트가 원나라의 통치를 받은 사실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는 근거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정부는 원나라 이후 중원을 차지한 왕조가 티베트를 통치한 사례를 들며, 티베트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바로 청나라다. 강희(康熙) 59년(1720) 청나라 군대는 티베트를 장악했다. 청은 1727년 티베트에 주장대신(駐藏大臣)을 파견했다.

 

뿐만 아니라 1792년 달라이라마에 대한 ‘금병추첨제도’(주장대신이 금병 속에 있는, 달라이라마의 전생자로 추정되는 아이의 이름과 생년이 쓰여진 상아 편을 뽑아 후대 달라이라마를 결정하는 의식)의 도입 등을 통하여 달라이라마를 수반으로 하는 티베트의 영향력을 관여하고 통치하려 했다. 그러나 정체성이 강한 티베트는 중국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중국이 원-청나라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면서 청나라 영향력 아래 있었던 모든 민족은 ‘중화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반면 티베트는 모든 구성원과 사회가 ‘티베트불교’라는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권역이라는 것이다. (계속)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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