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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교회와 타산지석

기자명 이학종
기독교 국가인 독일에서 교회와 성당이 텅텅 비어가고 있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소식이 아닙니다. ‘서구에 선불교가 전해진 것이 20세기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언급한 아놀드 토인비의 말이 아니더라도 유럽에서의 불교바람은 엄청난 위력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서구에서 기독교, 그러니까 전통적인 종교가 쇠퇴하는 주된 이유는 ‘에조테릭(Esoteric, 비밀스러운 의식)’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형태의 ‘유사종교’(독일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와 영적 체험을 제공하는 ‘대체종교’들이 대중의 욕구에 부합하지 못해온 전통종교의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 최근 한 시사주간지는 개점휴업 중인 독일의 전통교회를 다룬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서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이 유사종교적 경험을 추구하는 주요계층으로 자리잡으면서 전통종교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기독교가 빠르게 영향력을 잃게 된 것은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찾아내려는 젊은이들에게 기독교는 권위적 사회를 유지하려는 걸림돌이었으며, 개개인의 다양한 고뇌와 욕구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제도권의 산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유아 세례를 받았지만 성년이 되면서 기독교를 거부하는 경향이 보편화되어 있고, 지난 2년 사이에 기독교를 탈퇴한 사람이 60만 명에 이르고 있는 현실은 서구유럽 기독교가 존립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진단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제도화되고 권위적이 된 전통종교에 대한 염증으로 이탈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영성의 체험이나 인간적 따뜻함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러한 욕구들이 독일인들을 다양한 유사종교적 영적체험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 동인(動因)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들에게 티베트 불교나 인디언의 자연신앙, 인도불교와 탄트라, 선, 샤머니즘, 마녀신앙, 심령술, 접신 의식 등이 대안으로 대두된 것은 정해진 귀결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주의 깊게 살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 같은 유사종교 경험이 영원히 불변할 것 같던 ‘1인 1종교’의 전통적 틀을 깨고 ‘조합 종교’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요가와 심령술을 즐기는 사람이 주말에는 참선을 하거나 인디언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이지요.독일의 종교학자들은 이런 경향에 대해 ‘종교적인 것의 분산’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종교도 삶의 스타일만큼이나 다원화할 것이며 따라서 한 종교의 독점욕구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부 기독교학자들은 교회와 성당에 대해 ‘성전이 비는 것을 한탄할 게 아니라 현대인들이 찾는 종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유럽교회의 ‘휴업’ 위기는 ‘제3의 수행법’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그곳에 빠져드는 불자가 빠르게 늘어가는 오늘의 한국불교에게 참으로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닐 수 없습니다.



편집부장 이학종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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