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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미디어 연수’

  • 법보시론
  • 입력 2013.04.30 15:52
  • 수정 2013.04.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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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은 현대의 성직자, 함석헌의 말이다. 얼핏 언론인의 자리를 높이려는 뜻으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전혀 아니다. 함석헌이 그 말에 담은 뜻은 현대사회에서 언론인이 자기 구실을 온전히 못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비판이었다.


그런데 언론인이 성직자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실제로 유럽에서 근대사회가 성립하기 이전까지 그 사회의 여론을 좌우한 것은 성직자들이었다. 마을 주민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던 기독교 성직자들은 주민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옳은지를 가르쳤다. ‘인쇄혁명’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 성직자들만 성경을 지니던 시대였기에 그들의 권한은 막강했다. 성경의 말씀이라며 사익을 도모하는 이야기를 사부자기 집어넣는 일도 적지 않았을 터다.


조선 500년의 역사에서 이 땅의 성직자들은 스님이었다. 조선 왕조의 이데올로기는 유학, 그 가운데도 주자학이었지만, 민중 위에 살천스레 군림하고 있던 대다수 사대부와 달리 민중과 더불어 숨 쉬고 있던 성직자가 바로 스님들이었다.


문제는 조선이 1876년 개항하면서다. 근대사회를 자주적으로 열어갔다면, 민중과 더불어 애환을 겪으며 뿌리내리고 있던 불교가 새로운 시대를 선도해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이 땅의 근대화는 자주적 발전의 길을 걷지 못했다.


그 결과다. 서양의 근대사회에서 신부나 목사가 주도하던 세상읽기가 언론인들의 손에 상당 부분 넘어갔듯이,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일상생활에서 언론인들의 몫은 무장 커져갔다. 단순했던 전근대사회와 달리 분업에 기반을 두고 빠르게 변해가는 경제사회에서 대다수 사람의 세상읽기는 언론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성직자들도 신문과 방송의 보도를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를 우리는 체감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그 신문과 방송이 현대인들에게 세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여주느냐에 있다. 만일 언론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보여주지 못한다면, 세상을 판단하는 자료를 언론에 의존하는 대다수 현대인들은 진실을 마주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미디어 바로보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만년에 특정신문만 구독하며 세상을 바라보다가 몇 차례 ‘오판’을 했던 경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조계종단 또한 언론으로부터 적잖은 피해를 입어왔다. 그래서다. 언젠가도 언급했지만, 종단 차원의 ‘미디어 바라보기’가 필요하다. 마침 조계종 교육위원회가 “스님들의 자질 향상과 지속적인 재교육을 위해 마련한 연수 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해 법계별로 교육의 내용을 세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좋은 일이다.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여론 수렴’을 한다는 말은 더 반갑다. 그 여론 수렴 차원에서 ‘미디어 교육’을 제언한다.


여기서 “스님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미디어 바로보기가 꼭 필요하다고 단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속적 재교육”을 목적으로 한다면, 성직자로서 미디어에 대한 기본 인식이 갖춰져야 옳다. 언론 보도에 종단 전체가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안쓰럽고, 기사 불만을 폭력으로 터트리는 살풍경은 민망을 넘어 개탄스럽기에 더 그렇다.


더구나 현대 미디어는 급변하고 있다. 절에 오는 ‘보살’들에게도 자녀들의 미디어교육은 절실하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뉴미디어중독에 빠져가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것인가는 스님들의 몫이다.

 

▲손석춘
물론, 청소년만이 아니다. 급변하는 세상을 미디어에 의존할 때 자칫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십상이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불교의 고갱이라면, 미디어 바로보기는 현대사회의 모든 사부대중에게 ‘필수교양’이다. 스님들부터 언론에 빼앗긴 ‘성직의 자리’를 되찾아야 옳지 않을까.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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