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집 앨범 발매 앞둔 ‘속사포 래퍼’ 아웃사이더
4집 앨범 발매 앞둔 ‘속사포 래퍼’ 아웃사이더
  • 김규보 기자
  • 승인 2013.05.13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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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들 위로하는 가릉빈가…“아픔 꺼내니 세상과 통했죠”

‘강한 척’ 했던 무명시절 거쳐
전국일주 계기로 ‘소통’ 나서
2집‘외톨이’ 각종차트 휩쓸어


‘주변인’으로 머물며 방황도
수불스님 인연으로 화두정진
“비워도 꽉차는 음악 만들 것”

 

 

▲아웃사이더

 

 

1초에 20음절을 내뱉는 속사포 래퍼,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노래하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해왔던 가수 아웃사이더(본명 신옥철). ‘외톨이’, ‘주변인’, ‘삐에로의 눈물’ 등 그가 발표한 음악들은 ‘아웃사이더’라는 그의 예명처럼 소외되고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감로수가 됐다. 노래를 통해 세상과 소통해온 그가 4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가수로서의 삶, 그리고 그것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사실 그는 오랜 무명생활을 거쳤던 늦깎이 스타다. 1999년부터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펼치며 힙합계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2004년 첫 앨범을 발표했을 때 그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그의 음악에 공감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자신의 모습을 “약하지만 강한 척, 슬프지만 행복한 척, 아프지만 괜찮은 척 했다”고 회고한다. 진솔함의 부재는 단절로 이어졌다. 소통을 위한 여정을 결심했다.


“국토대장정을 떠났어요. 자전거에 텐트를 싣고 무작정 길에 나섰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자신감도 아닌 자만심이 가득했다고 해야 할까요. 여행 10일째 되던 날이었어요. 깜깜한 국도를 자전거로 달리는데 갑자기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춥고 배고픈데 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죠. 옆으로는 트럭들이 무섭게 지나가고요.”


그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전거를 갓길에 세우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한참을 서 있었지만 아무도 태워주지 않았다.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전거를 도로 한복판에 세웠다. 한 대의 트럭이 멈췄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너무 춥고 배고프고 무서워요.”


여행을 시작하고 열흘 만에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운전사는 그를 국도 끝 마을로 데려다줬고 따뜻한 우유와 감자, 계란도 사줬다. 힘들다고 이야기 하지 않아야 했고 남들보다 잘 살아야 했으며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겨왔지만 결국 그 역시 힘들었고 항상 잘 살진 못했으며 남들과 다름없는 한명의 인간이었다.


“저는 나약한 존재였어요. 깨지면 아플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아픈 척 안하고 살아왔을 뿐이죠. 그날 칠흑같이 어둡던 국도에서 저의 나약함을 꺼내놨을 때 세상은 아름다운 용기로 그 나약함을 포용해줬어요.”


그는 나머지 여정 내내 도움을 요청했다. 때로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자기도 했으며 때로는 경찰서 마당에 텐트를 쳤다. 보육원 아이들과 감자도 캐고 어르신들에게 랩도 가르쳤다. 진솔하게 다가간 끝에 얻은 공감의 맛은 무엇보다 달콤했다.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 채 혼자만의 외로움에 가라앉았던 내면을 끄집어 올렸다. 그는 여행 직후 자신의 외로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노래 ‘외톨이’를 발표했다.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다가오면 매몰차게 등을 돌렸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담담한 고백이었다.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가만히 놔두다가 끊임없이 덧나. 사랑도 사람도 너무나도 겁나. 혼자인 게 무서워 난 잊혀질까 두려워’


2009년 당시 ‘외톨이’는 각종 차트를 휩쓸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1집 ‘남자답게’에서 ‘눈물을 감추고 주먹을 꽉’ 쥐었던 그가 ‘나도 아플 땐 아프고 슬플 때는 슬프다’며 노래한 가사에 대중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의 인생, 음악의 변곡점이었다.


“‘외톨이’를 발표하고 사람들로부터 정말 많은 편지를 받았어요.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보낸 편지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어요. 자살하려고 창문에 매달려 있는데 라디오에서 ‘외톨이’가 흘러나오더래요. 나보다 힘든 사람도 있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참 고맙다는 편지였어요.”


그에게 노래는 ‘사명감’이 됐다. 그때까지 그는 노래를 통해 단지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3개월이 넘는 국토대장정과 ‘외톨이’ 발표 후 자신이 만드는 음악, 내뱉는 언어,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기장’처럼 써내려갔던 가사들이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깊게 소통하기 위한 도구가 됐다. 그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무겁게 말했다. 음악작업은 전보다 힘들어졌지만 행복했다. 같이 귀를 기울이고 같이 눈물 흘리고 함께 공감하는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 치유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을 빼는 방법은 서툴렀다. 소통과 공감의 세계로 도약하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남자답게’ 강한 척 하다가 ‘외톨이’가 돼 다가가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마음을 담아 ‘주변인’을 발표했다. 원래 3집 앨범 ‘주인공’을 발표하려 했으나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혼란을 겪었던 시간들을 먼저 꺼내놓고 싶었다.


‘난 여기에도 저기에도 어디에도 섞이지 못해. 괴로움이 사무쳐서 노래를 부른다. 그리움에 파묻혀서 그대를 부른다.’


‘주변인’은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치다 결국 세상 속으로 뛰어들기 위한 여정의 끝자락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는 2010년 ‘주인공’을 통해 진정한 소통과 공감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3집 앨범 ‘주인공’ 중 ‘꿈의 대화’에서는 팬 40여명이 참여해 각자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녹음작업을 진행했다. 세상과의 소통은 그렇게 음악이 됐다.


그가 제시하는 소통의 수단은 음악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재 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처 치유 토크콘서트 ‘아파쇼’를 진행하고 있다. ‘외톨이’에서 ‘주변인’을 거쳐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자신의 삶을 통해 꿈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다 내려놓고, 아픔을 인정하고, 숨기는 대신 세상에 꺼내놓는 것이 중요하며 ‘아웃사이더’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아웃라이어’가 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토크콘서트‘아파쇼’는 또 다른 소통창구가 됐다.


그가 붙들고 있는 화두인 ‘소통’은 수행을 통해 더욱 깊어졌다. 그는 지난해 안국선원에서 화두정진을 했다.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과 ‘트위터 스타’ 혜민 스님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젊은 시절, 학문적 관심에서 ‘화엄경’과 ‘법화경’을 읽긴 했지만 스님들과 교유하며 직접 듣고 느낀 불교는 곧 그의 삶이 됐다. 그는 부처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했다. 군 복무기간 중 군종교구 홍보대사로 활동했고 군종교구장 자광 스님으로부터 ‘웅비’라는 법명을 받았다. 일면 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생명나눔실천본부 홍보대사로 위촉됐고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지난 4월16~18일 예산 수덕사에서 봉행된 ‘경허선사 열반 100주기 국제 선 수행대회-선양음악회’에서는 음성공양을 펼쳤으며 직접 만든 단주 1000여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진솔한 자세로 세상과 소통하며 이야기하고 노래해왔다. 그리고 6월 초 발매될 예정인 4집 앨범에서도 그의 이야기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에게 노래란, 그에게 이야기란 함께 경험하고 나누고 나아가기 위해 주어진 소중한 선물이다.


“부처님을 알기 전에는 채워 넣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비워도 꽉 차는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내가 배운 것들을 음악으로 풀어내서 듣는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제 음악으로 들어오길 바랍니다. 들어와서 소통하고 공감하고 공존하는 거죠. 저와 함께 걸어가지 않으시겠어요?”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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