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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호리병박

기자명 법보신문

누렇게 바싹 마르고
생기 없는 호리병박
영원하지 않은 ‘젊음’
집착하면 여유 잃어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노약자석’이란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나, 어린아이 혹은 임산부를 위해 마련된 자리이다. 요즘은 연세든 노인분들께서 앞에 서 계셔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양보하는 미덕’을 강조하는 ‘포스터’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합시다’라는 계몽구의 포스터가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은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지켜야 하는 사회적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70~80년대만 해도, 자리 양보하자는 포스터는 없었다. 어르신들이 타시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굳이 ‘자리를 양보해 주세요’라는 말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이든 부모를 모시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의 삶은 참으로 안타깝다. 누구나 사정이 있는 법이겠지만, 홀로 지내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뉴스를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은 편하게 지내면서 늙으신 부모를 모시는 않는 사람은 천한 사람이다’라고 하셨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예전보다는 확실히 늙으신 부모를 방치하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늙는다.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인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늙음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며, 미리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청춘일 것만 같은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늙음이 찾아오는 셈이다. 더구나 요즘은 각종 건강식품과 의학의 발달로 70~80대라 하더라도 50~60대의 건강을 유지하시는 분들이 많다.

 

말하자면 예전보다 10년에서 20년은 육체적으로 보다 젊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젊음은 더욱 오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늙음을 다소간 늦출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늙음은 쓸쓸함이며, 바싹 마른 생기 없는 나무에 비유하기도 한다. 늙음은 기력이 쇠잔해져서 신체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그로 말미암아 정신까지도 희미해지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늙음은 바로 죽음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늙음을 고통이라고 통찰하신 것이다.


‘담마빠다’에 “가을에 버려진 이 호리병박들처럼”이란 비유가 있다. 이 비유는 ‘늙음의 품’에 나온다. 박과 식물에 속하는 호리병박은 속을 파내어 잘 말리면 물이나 술을 담는 호리병이 된다. 누런색의 바싹 마르고 딱딱하게 굳은 호리병은 유연성은 물론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들의 인생이 결국 맞이하게 되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품에 “보라, 아름답게 꾸며진 형상(bimba)은… 영원하지도 견고하지도 않다. 이 형상(ru-pa)은 늙고 쇠퇴하고 질병의 소굴이며 쉽게 파괴되는 것이다.… 삶은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된 모습이라고 해도 그것이 영원히 유지되지는 않는다. 시간 앞에 스러지는 것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여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은 좋은 삶의 자세일 수 있다.

 

▲이필원 박사

하지만 그 무상한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시간을 거역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추해지게 된다. 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겸손해지며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리고 ‘젊음’의 무상함을 아는 사람은 이미 늙어 삶의 후반기에 접어든 분들을 싫어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보듬어 안을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맞이하게 될 미래의 모습임을 그는 알기 때문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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