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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30년’ 장유정 미소원 이사장

  • 교계
  • 입력 2013.06.0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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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삶에도 ‘미소채널’에 고정된 마음은 행복 피운다

부산 자비원 봉사회 후원이 시작
자살 상담서 결핵환자 돕기까지
소규모 봉사단체 이끌며 자비행
남편과 사별 슬픔 ‘깨장’서 극복
봉사 위한 고마운 인연으로 승화

 

 

▲장유정 미소원 이사장은 스스로 고개가 끄덕여질때 움직였다. 봉사하면서도 화가 솟아오른다면 진심으로 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에게 봉사하는 ‘마음채널’이 상대방과 맞닿지 않으면 봉사는 헛수고였다.

 

 

부산 동구 범일동의 자유시장 앞거리는 물건을 싣고 내리는 상인들로 한창 북적거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장 바로 옆 상가 건물에서 목탁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이제 막 사시예불이 끝난 모양이었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선 이곳은 사단법인 미소원이다. 정갈한 불단의 관세음보살님이 방문자를 먼저 맞이하는 이 단체는 복지 사각지대를 위한 상담과 후원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올해 개원 3년차에 접어든 신생 기관이지만 내실만큼은 복지법인 이상이라고 불릴 만큼 탄탄한 활동을 자랑한다. 20여명의 전문 불교상담사들이 부산 구치소에서 살인, 강간 등의 강력범을 상대로 한 심리상담을 전개하고, 50여명의 봉사자들이 지역 차상위 계층을 위한 밑반찬 후원과 국립 마산병원의 무연고 결핵 환자 도우미를 맡고 있다. 그리고 300여 후원자들이 정성을 모아 제3세계 결핵 환자를 살리는 불사까지. 지역과 국적, 봉사의 경중을 떠나 인연이 닿는 어느 곳이든 찾아간다.


이 같은 현장형 봉사의 노하우는 장유정(58, 선덕화) 미소원 이사장의 30년 봉사라는 이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법당 겸 사무실을 찾아간 이날도 범일2동 동사무소에서 추천받은 20명의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밑반찬 준비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예불 직후 둘러앉은 주부 불자들 사이에서 장 이사장이 활기찬 목소리로 오늘의 메뉴를 소개했다.


“이번 주는 카레를 만드는 날입니다만, 이번에는 먹는 재미가 있도록 자장이 좋을 것 같습니다. 주 메뉴를 자장으로 하면 어떨까요?”


“좋습니다. 아까 시장을 지나오는데 마늘종이 싱싱하더군요. 마늘종 조림과 봄철 채소로 겉절이를 함께 만들면 딱 어울릴 거 같아요.”


한 회원의 맞장구에 그는 오늘의 삼색 반찬 재료를 술술 써내려갔다. 주부 9단, 봉사 30년 노하우는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넓은 조리대는 깨끗하고 많은 음식을 만들기에 충분히 넉넉해 보였다. 회원들이 반찬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사무국에서 이날의 일정을 점검했다. 등 뒤에는 2011년 12월28일로 기록된 법인 인가증과 지난 2004년부터 줄곧 이어진 각종 상장이 보였다. 가깝게는 지난해 대한민국 국민나눔대상 복지부장관상이라는 전국 규모의 큰 상도 있었다. “봉사를 시작한지도 어느덧 30년”이라는 그는 자연스레 자비원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부산 자비원 봉사회의 후원회장 출신이다. 1983년 회장을 맡았으니 공식 봉사만 30년 세월이 흘렀다. 비공식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향하던 손길은 감수성 예민한 10대때 부터였다. 육남매의 첫째로 동생들을 위해 학업을 포기했던 그는 낮에는 일하며 돈을 벌었고 밤에는 헌책방에서 빌린 책을 읽으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당시 그의 어린 날 일기장은 눈물로 얼룩진 기록이었다.


“철없던 시절이지만 더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도울 때 내 아픔도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보이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돕는 게 행복이었습니다. 20대 시절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장사를 시작하면서도 매일 1000원씩 모았어요. 틈틈이 절에 다녔고 그 돈을 모아 병고에 시달리는 스님들께 드렸지요. 모으는 금액을 늘리면서 더 구체적인 봉사를 찾게 됐고 그 때 만난 단체가 자비원입니다.”

 

 

▲ 미소원의 밑반찬배달은 많은 봉사 중 하나다.

 


현 미룡사 회주 정각 스님이 지도법사를 맡았던 자비원은 문화와 봉사 전문 단체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봉사에 대한 관심도가 적었던 시절, 불교매체를 통해 ‘적은 후원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간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후원회장을 자청했다. 물론 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장사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함께 돕자고 제안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 당당함은 자비원의 성장 촉매제가 됐다.

 

매월 2000원의 정기 후원금을 보내는 사람이 늘어났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들을 비롯해 불우 청소년 장학금 지급, 장애인 시설인 성우원 후원 등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봉사활동과 복지 사업을 펼쳤다. 특히 1989년부터 매월 국립 마산병원의 가족 없는 결핵 환자들을 찾아가 위로하는 시간은 지금까지 이어올 정도다.


두려움도 없이 봉사에만 매진하던 열정이 주춤한 것은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연을 다할 때였다. 세 아이와 자신을 두고 떠난 남편이 원망스러웠고 남편 없이 살아갈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봉사에 대한 열정은 덧없이 느껴졌다.


그런 그를 다시 봉사의 현장으로 일으킨 것은 정토회 ‘깨달음의 장’이었다. 정토회원인 동생의 추천에 의해 막연한 마음으로 찾아갔던 깨달음의 장은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나게 했다. “남편이 떠나간 것이 아니라 봉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다녀간 고마운 인연”이라 받아들였고, 남편을 향한 원망을 감사와 존경으로 바꿨다. 다시 현장을 찾았다. 봉사를 함께해 온 뜻있는 도반들과 함께 가정법회도 시작했다.


“마음의 채널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꿨다고 할까요? 전에는 좀 더 많은 후원을 받기 위해서, 좀 더 봉사를 잘하기 위해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화가 나도 그저 참기만 했어요.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나의 거울로 삼게 됐어요. 그리고 진심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문도 반복했습니다.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때 움직였습니다.”


그는 ‘마음의 채널’을 봉사와 상담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했다. 80년대 부산 구치소 법회에 동참하기 시작한 이후 2000년 교정위원으로 위촉된 그는 강력범죄자에 대한 상담에서도 항상 염주를 건네며 마음의 변화와 수행을 당부했다. 죽고 싶다는 사람들의 자살위기 상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며 당장 죽겠다는 전화가 걸려왔어요.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저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고요. ‘빨리 죽으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결국 죽기 마련이다. 어차피 죽는 목숨인데 힘들여 죽을 필요가 있느냐’ 반문했습니다. 죽겠다고 난리를 치던 목소리가 잠잠해졌어요. 마음채널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밑반찬배달 전 마음나누기 법회를 갖는 미소원.

 


상담과 봉사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그는 활동공간이 간절했다. 밤낮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할 상담실을 갖춰야 했고,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에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하려면 여러 사람이 들어가도 넉넉한 주방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시장 상인들이 오가며 참배할 법당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쉽게 용기 낼 수 없었다. 막막함에 처해 있을 때 부산 대광명사 주지 목종 스님의 격려는 큰 힘으로 작용했다.


“스님께선 원력만 있으면 된다며 망설이지 말고 추진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도반들과 매일 1080회 광명진언 기도를 이어오면서 후원금을 모아 법당을 마련했어요. 마음이 가는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요. 개원 때부터 이전에 도움을 받았다며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이곳을 다녀가시면서 후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랜 도반들도 절에 가듯이 들리고는 봉사를 함께하고 젊은 불자들도 찾아와 공부와 봉사를 희망하는 경우도 늘어났어요. 봉사자들이 미소원의 주인이 된 것이지요. 저는 관리만 할 뿐입니다.”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미소원도 10년이 되면 미련 없이 후임에게 넘겨주고 싶다는 그. 회향 이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요. 봉사를 하면 할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 다가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주방에서 호출 신호가 왔다. 모든 음식이 준비됐다는 표시였다. 커다란 냄비 가득 만들어진 자장이 하얀 김을 연거푸 내뿜고 있었다. 그 향기가 공양간 가득 진동하자 봉사자들이 너도나도 웃었다. 마늘종 조림과 봄동 겉절이 역시 덩실덩실 자장 장단에 맞춰 춤을 추듯 완성됐다. 그도 서둘러 앞치마를 맸다. 모든 반찬을 도시락 통에 담고 도시락을 나눠줄 동사무소로 출발하기 직전, 봉사자들 간의 마음 나누기로 이날의 법회가 마무리됐다.


“오늘 자장은 향기만 맡아도 정말 푸짐합니다. 처음 하는 요리 같지 않게 잘 만들어졌어요. 어르신들에게 빨리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한 회원의 미소 가득한 마음 나누기에 그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맞아요. 우리가 먹고 싶은 이 마음 그대로 어르신들도 반찬을 드시고 싶을 겁니다. 어르신들과 마음의 채널을 함께 하는 거지요. 매순간 우리 마음이 행복에 머문다면 우리 사회 모든 이웃도 함께 행복할 겁니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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