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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과 근엄함 사이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3.06.10 15:50
  • 수정 2013.07.23 14:16
  • 댓글 0

7세기 신라의, 한가한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혜공과 원효가 시냇가를 헤집으며,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에 똥을 누었다.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장난을 쳤다. ‘여시오어(汝屎吾魚)’ 그로 해서 항사사(恒沙寺)가 오어사(吾魚寺)로 불리게 되었다.(晩年移止恒沙寺. 時元曉撰諸經疏, 每就師質疑, 或相調戱. 一日二公沿溪魚蝦而啖之, 放便於石上, 公指之戱曰, 汝屎吾魚, 故因名吾魚寺. 或人以此爲曉師之語濫也.)”


혜공(惠空)은 치료와 이적에 능했다고 한다. 늘 삼태기를 지고 얼근히 취해 노래 부르고 다녔다. “이때 원효는 여러 불경의 주소(注疏)를 짓고 있었는데, 언제나 혜공에게 가서 묻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유머는 깨친 자의 자연이고, 근엄함은 초보의 작법이다. 천하의 원효가, 스승 없이, 인디(indie)로 자란 그가 자문을 구했을 정도라면 혜공 학문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다. “절의 우물에 들어가면, 몇 달이나 나오지 않았다. 나올 때는 푸른 옷 입은 신동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그나저나 둘이서 주고받은 이 ‘물고기 화두’는 무엇을 알려주고자 하는가. 여시오어(汝屎吾魚)의 해석은 세 갈래이다. 1)“당신이 눈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일 거요!” 2)“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 3)“너는 똥이고, 나는 물고기다!”


첫 번째는 너무 평범하다. 어구상 ‘똥눈다(屎)’ 다음에 목적어도 영 어색하다. 2)의 해석이 자연스럽다. 아마도 둘이 눈 똥 주변으로 물고기들이 먹이인 줄 알고, 몰려들었을 수도 있다. 3)은 단도직입이다. 콩 심은데 콩나고, 아버지와 아들은 같다. 똥이기에 똥을 누고, 물고기라서 물고기를 누는 것, 활동(用)과 주체(體)는 한 몸이다.


그런데 혜공은 이 외침으로 무엇을 주장(?)하려 했을까. 그리고 ‘삼국유사’는 한사코 이 말의 주인공이 원효가 아니고 혜공이라고 오금을 박고 있는가. 설화를 너무 심각하게 따지고 든다고 핀잔할지 모른다. 죠셉 캠벨은 신화와 철학, 그리고 할머니 무릎에서 듣는 이야기까지 같은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고 귀띔한다. 그렇구나, 그래서 바다가 갈라지고, 용궁이 나타나고, 용왕이 ‘금강삼매경’을, 그것도 사신의 장딴지를 갈라 넣고 꿰매주었다고 뻥을 쳤구나. 동해의 낙산에서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난 이야기, 파랑새 한 마리가 원효를 “쯧쯧, 넥타를 마다한 화상아!”라고 나무라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었네. 아차, 그러고 보니 그 후에도 상식 밖의 이야기들을 선사들이 수없이 유포하고 있었지. 춘향이가 마셨는데 이 도령이 취하고, 불 속에서 연꽃이 피며, 바다 밑에 먼지바람이 우르르 일어난다는 진실(?)을 눈도 깜짝 않고 설파했구나.


‘화두’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와 ‘송고승전’도 신이(神異)를 빌린 화두 공안집으로 볼 수도 있다. 그 황당무계 속에 불교의 깊은 소식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그 책들은 읽혀지기를, 해독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형조 교수

다시 오어사로 돌아가서, 누구, 혜공의 기염이 담고 있는 뜻을 알려줄 사람이 없는가. 두리번거리고 있는 차에 저기 임제가 쓰윽 앞으로 나섰다. “너희 벌건 육신 안에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살고 있다! 보이느냐?” 다들 얼떨떨했을 것이다. “그게 뭡니까?” 임제가 선상(禪床)을 내려와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뭔지 말해봐, 어서!” 캑캑 더듬거리자, 임제는 그를 확 밀쳐 버렸다. “쯧, 무위진인은 어디 가고, 웬 말라붙은 똥막대기냐.”(一日上堂曰, 汝等諸人, 赤肉團上有一無位人, 常向汝諸人面門出入.未證處者看看. 時有僧問, 如何是無位人. 師下禪床把住云, 道道. 僧擬議. 師托開云, 無位人是什乾屎, 便歸方丈.)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idio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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