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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풍실추 중징계 당연

‘그대가 이미 출가했으니 수도인(修道人)이라 불린다. 임금에게도 신하 노릇을 하지 않는다. 온 천하가 머리를 조아려 정성스레 공경한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도안 법사가 후학을 위해 남겨 놓은 이 말은 승가의 당당함을 피력 하려 할 때 종종 인용된다.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우선 내가 머리를 숙여야 하는 법이다. 하심이나 겸손과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른 거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낮춤이다. 이 낮춤이 도를 넘으면 비굴, 굴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납자는 명예나 부귀를 구하지 않기에 임금 앞에서도 신하 노릇 할 이유가 없다. 적어도 ‘출가한 사람은 걸음을 옮겨 나아감에 세상을 뛰어넘으며 마음과 몸을 세속과 달리한다’는 위산 영우 스님의 출가정신을 올곧이 행하고 있는 납자라면 말이다. 바랑 하나 짊어지고 산길을 홀로 걷는 스님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처연(悽然)함과 당당함이 뒤 섞여 일어나는 묘한 감정이 배어 있다. 수행인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 그 끝없는 고독 속으로 밀어 넣은 건 다름 아닌 바랑을 매고 있는 스님 자신이기에 애달파 보인다. 그럼에도 당차 보인다. 세상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것도 없이 자신이 정한 길을 가겠다는 초인적 의지마저도 느껴진다.

무엇이 이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분명 바랑 때문이다. 산길을 걷는 스님이라도 바랑을 매지 않았다면 정진 후의 포행이나 한가로운 산책을 연상할 것이다. 어딘가 머무르다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바랑은 말없는 법문 한 토막을 전해준다.

길 떠나는 목적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바랑에 담기는 건 가사, 목탁, 발우, 경전, 세면도구 정도의 필수품목이다. 예나 지금이나 법을 구하는 납자는 ‘바랑하나면 충분’하다 했다. 이는 곧 세간의 살림은 아예 담지도 않겠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소욕지족의 삶, 무소유의 길을 걷겠다는 말없는 법문을 바랑은 들려주고 있다.

2005년 교계 단체와 법보신문사가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 당시 항목 중 하나가 승가의 청빈의 삶 실천이었는데 응답자 절반 이상이 부정적 견해를 내놓았다. 승가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로부터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승가는 변했을까? 같은 설문을 했을 때 응답자 절반 이상이 ‘청빈의 삶’을 살고 있다고, ‘소욕지족의 삶’을 살고 있다고 답변할까? 최근 조계종 종단쇄신위원회가 제안한 청규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 한 절반 이상이 또 다시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게 확실하다.

도박, 유흥업소 출입, 고급승용차나 외제차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20년 전에도 있었다. 승가 내 자성의 목소리도 한두 번 나온 게 아니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각성하며 자정하겠다’ 했지만 ‘외침’에 비해 ‘변화’의 폭은 적었다.

 

아니 더 심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전국에 분포한 스님들의 삶이 청빈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조계종 1만 2천여 명의 스님 중 1만여 명이 청빈의 삶을 살고 있다 해도 2천여 명 아니 2백여 명의 스님이 고급승용차를 이용하면 승가에 대한 인식은 부적정일 수밖에 없다. 1만여 명이 대중생활을 하고 2백여 명이 호화토굴에 살며 ‘발은 진흙을 밟지 않고, 손엔 물을 퉁기지도 않는다’면 그 어느 누가 ‘스님은 인천의 사표’라는데 동의하겠는가. 그러기에 ‘도박해서는 안 된다 정도로는 종도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종단쇄신위원회 위원장 밀운 스님의 일언은 설득력 있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중징계가 따라야 한다. 청규를 어겼을 경우 산문 밖으로 내쫓은 옛 스님들의 추상의 지혜가 다시 발현되어야 한다. 그래야 바랑 맨 스님이 부끄럽지 않게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대가 이미 출가했으니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서는 안 된다’는 도안 스님의 말을 알아야 ‘공경’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할 때다. 그래야 바랑이 전하는 법문도 청량하게 퍼지지 않겠는가.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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