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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샹그릴라’로 불린 은둔의 땅

기자명 법보신문

티베트불교라는 거목서 피어난 히말라야의 연꽃

칸첸중가가 굽어보는 시킴
1975년 인도의 주로 합병
영국인들 의해 개발됐지만
티베트불교 문화전반 주도


히말라야 마지막 불교왕국
외부문화 철저히 차단한 부탄
쇄국으로 고유 문화종교 지켜
장엄한 신심·유적 곳곳 산재

 

 

▲히말라야의 산자락을 따라 펼쳐져 있는 시킴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해발 8598m의 히말라야 고봉 칸첸중가를 우러러 볼 수 있다. 다만 만년설을 이고 있는 성산 칸첸중가의 선명한 모습을 대면하기 위해서는 하늘이 구름을 열어주어야만 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 이상향을 찾아 헤맸다.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그린 샹그릴라나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모어가 묘사한 유토피아, 중국의 시인 도원명이 노래한 무릉도원, 그리고 홍길동이 세웠다는 율도국 등은 바로 인간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상향의 대명사였다. 어쩌면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극락이나 기독교의 천국도 인간이 그리던 이상향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이처럼 지역과 시대, 문화에 따라 이상향의 이름과 그 묘사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상향에 대한 희망과 그리움이 사라졌던 시절은 단 한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이들 이상향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며, 또한 누구도 가본 적이 없다는 점은 모든 이상향들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공통분모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이나 풍요로운 땅을 발견하면 주저 없이 그곳에 이상향의 이름을 부여했다. 히말라야의 산자락, 그 깊고 고요한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은둔의 땅 역시 그와 같은 이유로 샹그릴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해발 8000미터를 넘나드는 히말라야의 고봉준령들이 이어지는 산자락 아래 자리하고 있는 두 개의 불교왕국 시킴과 부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시킴과 부탄. 두 곳 모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다. 시킴과 부탄은 모두 인도와 중국의 접경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 독립된 왕국이었으나 현재는 인도의 28개 주 가운데 하나로 편입돼 있는 시킴은 인도의 동북부 국경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중국의 티베트자치주, 서쪽으로는 네팔, 그리고 동쪽으로는 또 다른 불교왕국 부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남쪽은 네팔과 방글라데시 사이에 좁은 협곡처럼 이어져 있는 인도의 웨스트뱅갈주와 맞닿아 있다. 이 좁은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다르질링이 시킴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다르질링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 하던 시절 인도와 이웃하고 있던 독립왕국 시킴의 초입이었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이고 있는 8598m의 신비로운 고봉 칸첸중가가 굽어보고 있는 시킴 지역은 힌두교와 이슬람문화가 주를 이루던 인도와는 달리 티베트불교가 꽃을 피운 불교왕국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히말라야 산맥과 계곡 곳곳에 티베트불교사원인 곰파가 우뚝 서 있고 언덕마다 오색의 기도깃발이 휘날리는 낯선 땅. 시킴의 모습은 영국인들이 익히 보지 못했던 샹그릴라와 다를 바 없었다. 더욱이 여름철 섭씨 45도를 넘나드는 콜카타의 무더위와 빈번하던 풍토병에 시달려야했던 영국인들은 서늘한 온도와 풍부한 습기를 머금은 다르질링을 비롯해 해발 2500m를 넘나드는 산자락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져 있는 시킴왕국에 단번에 매료당했다. 영국인들은 회유와 협박, 그리고 군사력을 동원해 시킴왕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해나갔고 외세의 압력과 늘어나는 네팔계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진 시킴왕국은 마침내 1975년 실시한 국민투표에 의해 인도의 일개 주로 합병됐다.

 

 

 


오늘날 시킴에는 힌두교를 믿는 네팔계 정착민들의 비율이 약 70%에 육박, 티베트계의 원주민이자 티베트불교를 따르는 렙차족의 비율 30%를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15세기부터 이어져 온 티베트불교왕국의 전통과 역사는 여전히 시킴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수려한 자연풍광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이곳 시킴을 샹그리랄라라는 이름으로 각인시키고 있다.


시킴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불교왕국이라면 이웃한 부탄은 명실상부 살아있는 불교왕국이다. 티베트왕국을 비롯해 그로부터 분파돼 나온 히말라야 주변의 불교왕국 라다크와 시킴이 근대 제국주의의 격동에 휘말려 스러져갔다면 부탄은 마지막 남은 티베트불교왕국으로서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부탄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쪽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3면이 모두 인도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가다. 지난 2008년 부탄의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걀 왕축이 절대왕정을 스스로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로 정치형태를 바꾸었지만 여전히 국왕이 국가를 대표하는 왕정을 유지하고 있다.


1974년 처음 외국 여행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부탄은 오늘날까지도 한해 입국 가능한 여행자의 규모를 7000~1만명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어 여전히 은둔의 땅으로 여겨진다. 특히 1999년에야 텔레비전 시청이 허용됐고 국토의 60% 이상을 산림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헌법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세계 유일의 금연국가로 담배의 제조와 판매를 금하는 등 쇄국정치를 펼친 덕에 깨끗한 자연환경과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고유의 전통문화를 잘 보존할 수 있었다.

 

 

▲ 히말라야에 남아 잇는 마지막 불교왕국 부탄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티베트불교의 문화가 연꽃 가득한 호수처럼 고여있는 땅이다. 부탄의 역사와 문화를 하나로 엮어 만든 꽃다발과도 같은 푸니카종. 부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힌다.

 


물론 해발 70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무려 8개나 갖고 있어 전 국토가 히말라야의 품에 안겨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부탄은 1962년에 이르러서야 외부와 연결되는 산악도로가 개통되었을 정도로 산세가 험하고 부탄과 맞닿아 있는 인도의 아삼지역에 대해 인도측이 외국인들의 출입을 제한했던 것도 부탄이 오랫동안 고립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부탄은 오지여행을 즐기는 이들의 이상향, 지구상 마지막 샹그릴라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티베트불교의 전통을 오롯히 지켜가고 있는 마지막 불교왕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인도관광청과 부탄관광청의 지원을 받아 지난 5월12~27일까지 16일간 인도와 부탄 현지에서 진행한 본지의 불교문화답사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산골짜기’라는 샹그릴라의 뜻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 경이로운 순례의 길이었다. 지상에 떨어진 한 송이 연꽃의 씨앗이 아름답고 푸른 계곡을 따라 점점이 피어나 순백의 설산을 장엄하며 찬란한 티베트불교의 역사를 써내려간 곳. 호기심어린 이방인의 눈길을 보석같이 맑은 눈동자와 따듯한 미소로 대해준 그 순박한 땅의 주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띄우며 아름답고 가슴 벅찼던 16일간의 여정을 전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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