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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화 속 마을 같은 다르질링

2287m 히말라야 중턱에는 장난감 열차가 달리고 있다

 

▲시킴의 관문이자 해발 2287m에 자리하고 있는 고산마을 다르질링. 영국 식민지배 당시 영국 군인들의 휴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다르질링은 서늘한 기후를 이용한 차재배지로 각광 받았다. 오늘날에도 세계적 명차로 손꼽히는 다르질링차가 이곳서 생산된다.

 

 

19C 영국군 휴양지로 개발

차·군인 운송위해 개설된

폭 61cm의 ‘토이트레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칸첸중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알록달록한 고산마을 모습은

동화 속 무대처럼 아름답지만

네팔고르카족 갈등 남아있어

 

섭씨 32도. 후끈하고 끈적거리는 열대의 공기가 온몸에 철썩 들러붙는다. 델리에서 비행기로 2시간30분. 인도 동북부 웨스트뱅갈주 북쪽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실리구리 바그도그라공항의 날씨는 델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바그도그라공항은 시킴의 관문 다르질링에서 남쪽으로 불과 85km 떨어져 있다. 서울을 떠나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며 푹푹 찌는 인도 델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서둘러 바그도그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다. 비행기 문이 열리면 청명한 히말라야의 공기가 맞아줄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델리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승객의 대부분이 내국인, 즉 인도인이었던 것도 그런 희망에 더욱 부채질을 했다. 더위에 지친 델리의 시민들이 찾아가는 피서지이니 분명 시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뜩 달궈진 바그도그라공항 활주로에서 희망은 한여름 땡볕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하릴없이 녹아버렸다.

 

“여기 해발이 얼마나 되지?”

“100m 조금 더 될 걸.”

 

인도성지순례 전문여행사 인디아레전드의 한국지사 매니저이자 이번 여정의 리더, 유일한 동행이자 대학 후배이고 친구이기도 한 민선예 씨의 대답에 힘이 쭉 빠진다. 그 말은 ‘이제부터 해발 2287m 다르질링까지 2000m 이상을 단번에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 다르질링 기온이 섭씨 13~14도에 불과하다는 현지 차량 운전기사의 설명에 다시 한 번 희망을 붙들고 북쪽을 향해 출발한다.

 

바그도그라공항에서 다르질링까지 이동시간은 차로 약 3시간. 거리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그 만큼 길이 험하고 굴곡이 심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항주변이라 그런지 시야 끝까지 이어지는 풍경은 온통 차밭이다. 이곳부터 인도의 동쪽 끝 아삼주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유명한 차생산지라더니 눈을 돌리는 곳마다 차나무다.

차밭 곳곳에서는 찻잎을 따는 아낙들이 꽃잎처럼 흩어져 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머리에 우산을 동여맨 여인들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활짝 핀 꽃잎 같다. 하지만 낡은 우산이 만들어주는 한줌 그늘에 의지해 쉼 없이 손을 움직이며 찻잎을 따는 여인들의 삶이 어찌 꽃처럼 아름다울까. 검게 그을린 얼굴에 그림자가 더욱 두텁다.

 

30여분도 달리지 않은 듯 한데 차는 곧장 산기슭을 타고 오른다. 고산으로의 진입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좌우로 오가며 힘겹게 오르기를 1시간 반 가량, 좁은 길 옆 가파른 산기슭에 매달리듯 서있는 집들이 듬성듬성 이어진다. 가정집뿐 아니라 식당, 상점, 차량정비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일상을 이어가는 것도 신기하지만, 더욱 신기한 것은 그 사이 뚝 떨어진 기온이다. 어디서 몰려왔는지 안개가 모인다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발아래로 구름이 보이고 온도가 쑥쑥 떨어진다. 후텁지근한 열기는 멀찍이 사라지고 시원한 공기가 기분 좋더니 그도 오래가지 못해 선뜩한 찬 기운이 몰려온다. 그 뒤로 고산마을 쿠르시옹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허리를 따라 촘촘하게 집들이 들어서있는 쿠르시옹의 시가지는 좁고 가는 길로 이어진다. 산비탈을 따라 들어선 마을이니 길이 넓을 리 없다. 그런데 그 좁은 도로 위로 철로가 놓여있다. 다르질링까지 이어지는 인도의 명물 토이드레인의 철로다. 토이트레인은 인도 내에서도 소수만 남아있는 산악열차다. 정식명칭은 다르질링 히말라야 철로. 그러나 모두들 토이트레인으로 부른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돼 있는 이 작고 신기한 열차는 레일 폭이 61cm에 불과해 마치 장난감열차 같이 보인다. 그 별명이 고유 명칭이 되어버린 것이다.

 

 

▲웨스트뱅갈주 바그도그라공항 주변의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는 여인들.

 

 

토이트레인은 다르질링에서 생산되는 차를 실어 나르기 위해 1881년 영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증기기관차다. 실리구리의 NJP역에서 다르질링까지 이어지는 이 열차는 한때 이 산간오지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세계 최고 철도기술력의 집합체였다. 총연장 88.48㎞, 두 종착역 사이에 11개의 정차역을 두고 세계 최고 품질의 다르질링차와 영국 군인들을 실어 날랐다. 전성기에 비해 운행 편수는 많이 줄었지만 이 철로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수증기의 힘으로 열차를 끄는 증기기관 방식도 예전 그대로다. 다만 이 열차를 이용해 실리구리부터 다르질링까지 가려면 꼬박 7시간이 걸리니 오늘날은 운송목적보다 여행객들을 위한 관광 상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다르질링까지 이어지는 좁은 도로 사정을 감안해보면 출퇴근 시간에는 제법 유용한 교통수단이 됨직하다.

 

이 작고 귀여운 열차를 타보기 위해 서둘러 다르질링으로 향한다. 다행히 40여분 만에 다르질링역에 도착, 굼을 지나 실리구리까지 내려가는 오늘의 마지막 열차에 가까스로 몸을 실었다. 열차는 만석이다. 그래봐야 기차 한 칸에 승객은 25명 남짓, 객차는 4칸이 고작이다. 속도도 어찌나 느린지 늦게 도착해 열차를 놓쳤다 싶었던 승객이 달음박질 쳐 가뿐히 열차에 뛰어오른다. 작고 느린 기차지만 기적소리는 제법 우렁차다. 그 소리에 맞춰 증기기관의 굴뚝에서 수증기 섞인 뽀얀 연기가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좁은 협궤를 따라 달리는 기차 옆으로 길가의 건물들이 손에 닿을 듯 이어진다. 달리는 기차와 길가의 건물 사이가 불과 50cm나 될까 싶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기웃거렸다가는 길가 건물에 머리를 부딪치게 생겼다. 그래서인지 객실에 올라탄 차장은 연신 승객들에게 주의를 준다. 하지만 기찻길 옆에서 놀고 있는 창밖의 아이들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듯 승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30여분을 달리던 기차가 잠시 멈춘 곳은 다르질링역과 굼역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바타시아 루프(Batasia Loop)다. 루프는 경사가 급한 산악지형을 오르기 위해 철로가 360도 회전하는 모양으로 놓여있는 곳을 뜻한다. 지금은 이곳에 잘 가꿔진 정원과 전쟁기념탑이 조성돼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르질링의 전경과 그 뒤로 병풍처럼 펼쳐지는 칸첸중가의 조화가 일품이다. 하지만 오늘은 잔뜩 구름 낀 하늘이 칸첸중가를 품속에 깊이 숨겼다. 그리고도 부족한지 산마루를 따라 올라오며 다르질링까지 끌어당기고 있다.

 

중간 정차역인 굼역은 해발 2258m에 위치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기차역이다. 이곳에는 굼박물관이라는 이름의 다르질링 히말라야 철로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안에는 20세기초반 다르질링의 험한 산자락을 씩씩하게 달리던 토이트레인의 흑백사진과 당시 사용했던 열차관련 유물들이 소박하게 전시돼 있다. 그다지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난감처럼 보이는 이 귀여운 꼬마열차가 13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장이라는 점이 세삼 신기하다.

 

장난감 같은 것은 토이트레인만이 아니다. 다르질링의 좁고 높은 집들은 놀이동산의 동화마을처럼 분홍, 노랑, 보랑, 연두 등 예쁜 색들로 칠해져 있다. 유럽풍의 제법 멋들어진 건물 창문에는 하나같이 건물 색과 대조돼는 형형색색의 커튼이 드리워져있고, 창밖에는 활짝 꽃핀 화분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그런 건물 사이 도로는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지만 그 옆으로 ‘장난감열차’가 지나다니니 영락없는 놀이동산 동화마을이다.

 

하지만 이곳 다르질링의 역사는 토이트레인보다 더 오래되고 굴곡져있다. 인도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인 칸첸중가를 비롯해 히말라야의 산맥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다르질링은 19세기 초 영국인들의 휴양지로 개발되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8세기 초까지 이 지역은 불교왕국 시킴의 영토였다. 그러나 1706년 부탄왕국에 칼림퐁 주변을 빼앗기고 1780년에 이르러서는 다르질링을 비롯한 시킴왕국 영토의 대부분을 네팔에서 침입해온 고르카족에게 내주었다. 고르카족의 지배는 19세기 영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중단됐으나 영국인들 역시 시킴왕국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 시킴은 또 다시 영국의 지배하에 놓이는 처지가 되었다. 이즈음 다르질링의 역사도 시작된다. 캘커타를 비롯한 웨스트뱅갈의 평야지역에서 무더위에 시달리던 영국인들은 두 명의 장교가 지금의 다르질링 지역에서 사원을 발견, 그 주변에 휴양지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을 다르질링이라는 이름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차를 수입해야했던 영국인들은 다르질링의 서늘한 기후를 이용, 이곳에서 차를 재배했고 다르질링은 세계적인 명차의 생산지로 이름을 얻었다.

 

 

▲다르질링 시내를 달리는 토이트레인.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지금도 다르질링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고르카랜드(GorkhaLand)’라는 구호는 다르질링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다르질링을 지배하기 시작하며 영국인들은 저택 공사와 벌채, 그리고 차 재배에 필요한 인력을 조달하기 위해 네팔의 고르카족을 이 지역으로 대거 유입시켰다. 덕분에 한때 다르질링의 인구는 1만여 명까지 늘어났고 인도 독립 후 이들은 정치세력이 됐다. 정치적 독립을 원하는 네팔 고르카족과 인도정부의 대립은 점점 격해져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폭동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1988년 ‘고르카민족 해방 전선’과 인도 정부 사이의 타협이 이뤄지고 주정부로부터 상당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 받아 안정에 접어들었지만 독립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고르카랜드’라는 구호는 이러한 역사에서 기인했으며 ‘이 땅의 주인은 고르카족’이라는 주장인 동시에 아직도 분쟁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동화 속 마을처럼 예쁜 다르질링. 하지만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의 단골 마무리를 현실에서 찾아보기란 쉽지않다. 그렇기 때문에 동화는 더 아름답고, 다르질링은 ‘해피앤딩’이 약속된 동화같은 마을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도 다르질링=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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