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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살모살부(殺母殺父)

기자명 이필원

갈애·자만 부모와 같아

내 존재의 원동력이지만

번뇌·윤회 원인이기도

끊어내야 해탈에 이르러

 

당나라의 선승 임제 의현 스님이 어느 날 법상에 올라 “살불살조(殺佛殺祖) 살부살모(殺父殺母)”라는 법문을 했다. 즉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인다”는 의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임제 스님의 이 법문은 사실 ‘담마빠다(법구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 근원으로 한다.

‘담마빠다’에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두 명의 크샤뜨리야 출신 왕들을 죽이고 나서, 왕국과 신하를 없애고 나서, 바라문은 두려움 없이 간다”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한역 ‘출요경’ 쌍요품에도 나온다. ‘출요경’은 ‘법구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서 시 형식의 경구를 뽑아 해설한 경전이다. 여하튼 임제 스님이 ‘법구경’ 혹은 ‘출요경’에 나오는 ‘살모살부’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해서 그 유명한 ‘살불살조’의 법문을 남겼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불살생(不殺生)을 계율의 제 1칙으로 삼는 불교에서 ‘살모살부’가 말이 되는가. 벌레 한 마리라도 실수로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불교에서, 어찌 부모를 죽이는 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는 명확하게 비유임을 알 수 있다. ‘담마빠다’에 나오는 이 시의 배경은 이러하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비구들과 함께 계시는데, 마침 그 주변을 라꾼따까 밧디야 장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 다른 비구들에게 밧디야 장로를 가리키며,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이고 해탈하여 거닌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에 비구들이 그 의미를 몰라 의아해 하며, 부처님께 상세히 설명해 주실 것을 청하자 이 비유의 시를 읊으셨다고 한다.

 

이 주석서의 설명에 따르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곧 ‘해탈’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역시 주석서에서 그 의미를 밝히고 있는데, 어머니는 갈애를 그리고 아버지는 자만을 의미한다. 아울러 두 왕은 허무주의와 영원주의를 의미하고, 왕국과 신하는 12처(十二處)를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갈애는 모든 번뇌가 이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번뇌이며, 나아가 무명과 더불어 윤회의 원인이기도 하다. 자만은 ‘아상(我相)’, 곧 내가 있다는 생각의 근원이다. 결국 갈애와 자만을 제거하면 해탈을 성취한다는 것이 이 시가 갖는 의미인 것이다.

 

한편 임제 스님은 아버지를 무명, 어머니를 애착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살불살조에서 부처와 조사는 수행자가 수행할 때 그 어떤 대상에도 집착해서는 안 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강력한 번뇌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표현한 것일까. 갈애와 자만, 혹은 무명과 애착은 현실적으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원인이자,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필원 박사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욕망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상실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우리 중생들이 갖고 있는 커다란 착각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원인, 그것이 바로 갈애이며, 자만이며, 무명이며, 애착인 것이다. 그렇기에 부처님께서는 이것들을 부모에 빗대어 설명하신 것이리라.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여, 스스로 부처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갈애와 자만을 끊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갈애와 자만 등이 안겨주는 속박과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바로 그 길을 가르쳐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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