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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관계

기자명 법보신문

만남은 인연 따라 생겼다가 사라진다

다양한 모임 갖는 사람들
소속감·안락함 등 느끼며
모임이 실체란 착각 빠져
무상함 보는 지혜 갖춰야

 

사람은 개인으로도 살아가지만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 다양한 단체나 모임에 가입해 살아간다. 때로는 한적한 공간과 시간을 즐기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 속에서 즐거움과 안전함을 느끼기도 한다. 개인으로서의 삶도 중요하고 단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개인으로 자아실현의 과제가 있고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생의 과제가 있다. 혼자서 자기의 삶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 내가 다른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주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물질적인 면도 서로 의지해야 하고 정신적인 면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특히 존재감 같은 것은 관계 속에서 주어진다.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더 높이려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회생활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 의지도 하고 경쟁도 한다. 삶의 관계를 이루는 단체나 사회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가정, 친족 같은 것도 있고 살아가면서 만드는 것도 있다. 우리는 그 속에 살면서 그 성질을 잘 알고 있을까. 정행품 경문을 보자.


“대중이 모일 때면, 중생들이 여러 가지의 모인 법을 버리고 일체지를 성취하기를 발원해야 한다.”


‘대중이 모일 때면’이란 현대의 사회는 사람과 사람의 왕래가 매우 긴밀해지고 있다.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모임이나 동창회 모임, 동호인의 모임 등 다양한 모임으로 왕래를 한다. 특히 연말이 되면 각종 모임으로 스케줄이 빠듯한 사람들도 많다. 바쁘다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모임을 즐기고 있다. 사람이 모이고 단체가 움직이면 단체가 마치 생명력이 있는 실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체가 주는 소속감과 안락감 그리고 구속력과 의무감 등이 함께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의 위치와 역할로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우리가 참여한 모임은 늘 일시적이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흩어지게 되어있다. 모인 것은 반드시 흩어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사람이 모일 때 모임만 보는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것 까지가 하나의 과정이다. 흩어진 자리의 모습에서 모임의 모습을 관찰하고, 모인 자리의 모습에서 흩어진 뒤의 모습을 관찰해보는 것이 좋다. 이것이 전체의 모습이며 하나의 과정이다. 모든 모임과 관계는 일시적으로 조건이 만나면 모이고, 그 조건이 사라지면 흩어지게 되어있다. 그 속에서 주어졌던 소속감과 안락감 그리고 구속력과 의무감 등이 모두 일시적인 것이다. 일시적인 것을 지속적인 것으로 알면 착각이 발생한다. 착각 이후에는 집착이 따르고 집착에는 고통이 따른다.


‘중생들이 여러 가지의 모인 법을 버리고’에서 먼저 ‘버린다’는 말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임의 관계를 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모든 관계를 버리고 사람이 없는 데로 들어가 고립되라는 것이 아니다. 모임과 흩어짐을 다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보는 지혜를 얻어, 흩어짐 위에서 모임을 보고 모임 위에서 흩어짐을 보아서 관계에 충실하면서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 관계의 외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지혜로운 관찰을 하기를 바라는 원이 들어 있다.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에서 일체의 현상이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을 관찰하는 지혜를 성취하기 바라는 것이다. 사람의 관계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이 모이면 존재하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들이다. 자연환경이나 물질환경 그리고 인간관계의 환경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예외는 없다. 모두가 조건이 지속되는 만큼 유지되다가 조건이 사라지게 되면 함께 사라지는 무상한 것들이다. 무상한 것의 생겨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전체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마음자세는 지혜를 낳는다. 무상은 있던 것을 사라지게도 하지만 새로운 것을 생겨나게도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생겨나게 하거나 조건을 유지시켜 환경을 지속시키는 것도 무상함 속에서 조건들을 다루는 지혜가 된다.


‘일체지를 성취하기를 발원해야 한다’에서 ‘일체지’라고 하면 세 가지 지혜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세 가지란 일체지, 도종지 그리고 일체종지다. 일체지는 자연과 물질 그리고 인간환경의 현상이 모두 인연화합으로 생긴 것으로 그 성품이 본래 공함을 알아차리는 지혜다. 이미 생겨난 현상 즉 결과의 입장에서 인연의 본성을 보는 것이다. 모든 현상의 본질을 직관함으로써 일체의 집착을 넘어가는 작용이 있다. 도종지란 보살의 경지에서 수행하는 지혜다. 본래 일체가 공함을 체득한 바탕에서,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인연을 올바르게 모을 수 있는 지혜다. 즉 일체의 집착을 내려놓고, 일체의 공덕을 올바르게 쌓아가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지혜다.

 

▲도암 스님.

일체종지란 근본지인 일체지를 바탕으로 후득지인 도종지를 닦아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부처님이 된다. 근본지인 일체지와 후득지인 도종지가 합쳐져 완전한 성취를 이룬 최고의 경지가 일체종지인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환경을 이루는 모든 것도 모이고 흩어지는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모두가 알아차리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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