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의불교는 끝나지 않았다
격의불교는 끝나지 않았다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3.07.01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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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전도 등 불교고유 용어
기독교계 적잖게 차용해 사용
용어는 시대와 소통하는 방편
역경승 고뇌 쉼없이 이어져야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용어들 중에 불교용어가 적지 않다. 야단법석, 이판사판, 자유, 인연, 자업자득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화두, 삼매와 같은 전문적인 수행용어도 일상어로 편입된 지 오래다. 그러나 불교용어가 일상생활에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불교보다 전래역사가 짧은 다양한 종교에서 적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가 가장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불교용어 중에는 아예 자신들의 용어로 탈바꿈시킨 성공적인 사례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장로(長老)와 전도(傳道)일 것이다. 장로는 본래 수행이 높고 나이가 지긋한 스님들을 이르는 존칭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개신교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직책의 하나로 사람들은 이해한다. 전도 연원이 부처님의 전도선언이지만 오히려 기독교의 교리를 전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아는 사람이 많다.


기독교의 불교용어 차용에 대해 불자들의 심정은 편안치 않다. “불교용어가 하나둘씩 기독교의 것이 되면 용어에 담긴 무형의 자산도 기독교의 것이 될 것이고 불교는 이 땅에서 설자리를 잃고 말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이런 시각에 동의하긴 힘들다. 불자들은 기독교의 이런 노력에서 오히려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 땅의 역사가 짧은 기독교는 지금도 여전히 격의(格義)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불교용어들을 기독교용어로 편입시키는 것은 자신들의 교리를 잘 설명하기 위한 치열한 격의과정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


격의로 치면 불교의 역사는 길다. 2000년 전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들을 중국으로 가져온 스님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중국의 주류 사상이었던 도교와 유교의 용어를 상당부분 차용했다. 그 과정에서 용어만 불교로 편입된 것이 아니라 그 종교의 신이나 사상 또한 불교에 편입됐는데, 옥황상제가 불교를 수호하는 천신의 하나인 제석천으로 변신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독교에서 ‘사랑의 하느님’을 어느 순간부터 사랑보다 훨씬 깊은 의미의 ‘자비로운 하느님’으로 쓰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국불교는 지금 새로운 격의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자로 된 경전을 우리의 말로 번역해야 하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고루한 한자로 된 용어를 고집하기보다 시대 흐름을 꿰뚫은 우리말로 풀어내야 한다. 현재 조계종은 반야심경을 비롯해 각종 의식까지 한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 비하면 그 치열함의 강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에 불평을 늘어놓기보다 그 에너지를 내부로 돌려 시대에 맞는 불교용어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김형규 부장

기독교가 불교용어에 주목했듯이 불교는 오늘날 과학기술, 철학, 문학 등과 관련된 새로운 언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용어 가운데 불교의 가르침에 적합한 용어를 받아들여 새로운 불교용어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불교인들에게 주어진 시대와의 소통이며 격의이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언어는 더욱 그렇다. 많은 용어와 개념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겨나고 사라지고 있다. 한국불교의 격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구마라습과 현장 스님 같은 위대한 역경승들의 고뇌가 이제 우리의 것이 돼야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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