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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티베트난민자활센터

고향 떠난 티베탄들 희망 고여있는 그리움의 둥지

달라이라마 망명 후 15만명 탈출
지역 자선 단체 도움으로 설립
기부·구호 의지 않고 자활 목표
카펫·조각 등 전통수공품 생산
수공예 장인 1600여 명 양성해


난민 1세대 고령으로 대부분 사망
전통 계승하며 정체성 지켜나가


곳곳의 티베트 소신공양 포스터엔
“얼마나 더 많은 목숨 잃어야 하나”

 

 

▲ 양털로 실을 만드는 작업장. 이곳에서 만든 양털실로 카펫을 만든다.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1951년, 히말라야의 고도 라싸도 전쟁에 휘말렸다. 3만여 명의 중국 인민해방군이 참도를 시작으로 티베트침공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치열한 남북공방으로 수많은 피를 뿌리데 비해 인민해방군은 라싸로 사실상 무혈입성 했다. 티베트에는 3만여 명이나 되는 무장군인에 대항할 여력이 없기도 했지만 상대에게 총칼을 겨눠 피를 흘리게 한다는 것은 불살생의 가르침을 목숨처럼 지키는 티베트인들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티베트정부는 국제연합(UN)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은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959년 라싸에서는 새해를 맞이하는 신년축제에 맞춰 대규모 독립시위가 일어났다. 결과는 비참했다. 비공식 통계 120만여 명의 티베트인들이 살해 또는 실종됐고 6000여 개의 사원이 파괴됐다. 그해 3월18일 티베트 라싸에 있는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 노블링카에서는 한 젊은이가 조심스럽게 출입문을 나서고 있었다. 궁을 감시하고 있던 인민군의 눈을 속이기 위해 승복대신 군복을 입은 24세의 청년 텐진 갸초. 14대 달라이라마였다.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한 티베트민중들의 독립시위를 무차별학살로 진압하는 인민군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자신을 어딘가로 피신시키는 일 뿐이었다. 달라이라마가 라싸에 남아있는 한, 티베트민중들은 라싸를 떠나지 않은 채 온몸으로 총칼을 받아낼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티베트의 영혼 달라이라마’가 그 총칼에 스러진다면 구심을 잃은 티베트와 민족의 운명 역시 장담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구하는 것, 그것은 절명의 위기에 빠진 티베트를 위해 그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었고 유일한 일이었다. 라싸를 떠나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히말라야를 넘어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망명했다. 인도에 도착한 달라이라마는 1년여에 걸친 인도정부와의 협상 끝에 마침내 1960년 인도 북서부 히마찰프라데시주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 카펫을 짜는 공동 작업장에서 한 달을 꼬박 작업해야 카펫 한 장을 만들수 있다.

 


달라이라마의 결단은 티베트민중의 대이동을 촉발시켰다. 그를 따라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라싸와 티베트를 떠나 히말라야를 넘었다. 무려 15만여 명. 달라이라마의 뒤를 따라 티베트를 떠나온 티베트인들, 이제 난민이 된 그들은 티베트와 가까운 히말라야 기슭 곳곳에 자리를 잡고 서글픈 난민의 삶을 시작했다.


다르질링, 그들의 고향 라싸까지 이어지는 히말라야의 한 자락인 이곳에서도 그렇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티베트 난민들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다르질링의 중심가 초우라스타에서 북쪽으로 약 1km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티베트난민자활센터는 그들의 고향 티베트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머물고 싶어 하던 티베트인들이 모여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그리움의 둥지다.


달라이라마의 망명과 함께 시작된 자활센터 달라이라마의 망명 이후 티베트에서 탈출한 난민들이 유입되며 다르질링에서는 이들을 돕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다르질링 지역의 티베트인들과 여러 자선단체들이 주축이 돼 티베트난민들의 정착을 위한 기금을 조성했다. 자선행사와 전시회, 심지어 자선 축구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기금을 바탕으로 현재의 위치에 4에이커 가량의 부지를 임대해 1959년 티베트난민자활센터가 문을 열었다.


사실 이곳은 전에도 티베트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땅이었다. 1910년 중국의 사천군과 티베트군 간 충돌이 벌어져 당시 13대 달라이라마가 2년간 인도로 피난을 와있었다. 그때 달라이라마가 머물던 곳이 바로 이곳 언덕이었다.
티베트난민자활센터는 초기부터 기부나 구호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설립 초기 이곳 자활센터에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기능인은 단 4명 뿐이었다. 이후 50여 년간 이곳에서는 꾸준히 전통공예기술을 전수해 장인들을 양성했다. 지금까지 이곳 자활센터가 배출한 티베트 전통공예 기술자는 약1600여 명에 달하며 그 사이 이곳 센터를 거쳐 간 티베트인들의 수는 약1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특히 전통공예 기술자들 가운데 약 1200여 명은 인도 뿐 아니라 전 세계로 나아가 티베트공예기술을 전하고 있다. 현재 자활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은 약65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자활센터 내에는 난민 3세대와 4세대를 위한 탁아소와 초등학교가 있다. 대부분의 인도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힌디 대신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언어인 티베트어를 고수하고 있다. 이제 고작 대 여섯 살에 불과해 보이는 어린 아이들도 힌디 대신 티베트어로 인사를 건넨다.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지만 티베트인들은 공동체의 삶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계승하고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은둔자의 오두막처럼 한적한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티베트난민자활센터는 결코 무기력한 난민들의 피난처가 아니다. 달라이라마가 티베트민중을 위해 스스로를 구했듯 티베트인들은 이곳에서 고향 티베트로 돌아갈 날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다음세대를 위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강인하게 스스로의 삶을 일궈나가고 있는 것이다.

 

 

▲카펫을 만드는 일은 주로 여자들이 담당한다. 실을 만드는 일부터 마지막 마무리 작업까지 모든 과정이 분업화 돼 있다.

 


한땀 한땀 손길로 지켜나가는 희망 티베트난민자활센터의 외관은 남루하다. 페인트칠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회색의 콘크리트건물 몇 채에 법당과 작업장, 그리고 난민들을 위한 생활공간과 학교, 탁아소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에서 티베트인들은 공동 작업을 통해 전통수공예품을 생산 판매한다. 카펫과 의류, 목조각과 미술품 등 다양한 제품들이 티베트인들의 손끝에서 생산된다. 자활센터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곳도 바로 이들의 공동작업장이다. 유목민의 후예인 티베트인들은 전통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여러 물건들을 직접 만들어 사용해 왔다. 그 오랜 역사의 솜씨가 오늘날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활센터에 들어서자 지붕 위에서 양털을 말리고 있던 한 할아버지가 반갑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지붕이 그리 가파른 편은 아니지만 오래돼 낡아 보이는 양철이 혹시라도 무너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어르신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지붕 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양털이 햇빛을 골고루 받도록 펴고 매만진다.


“이 양털을 잘 말려서 실을 만든 후 그 실로 카펫을 짠다”는 할아버지는 ‘작업장을 볼 수 있겠냐’는 질문에 일손을 멈추고 지붕에서 내려와 앞장선다. 원래 할아버지의 전공분야는 목조각이다. 나무를 활처럼 휘어 철사를 걸어 만든 간단한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조각칼 몇 개로 그 나무에 각종 문양을 조각해 멋진 장식품을 만든다. 할아버지의 작업장에는 조각 중이던 용 문양 벽걸이 장식품이 얌전히 놓여있다.


할아버지의 작업실 옆, 또 다른 작업장에서는 할머니들이 모여 양털로 실을 만들고 있다. 하루 종일 물레를 돌려 실을 만드는 아주머니는 올해 55세다. 아기 때 아버지의 등에 업혀 고향을 떠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티베트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평생 이곳에서 살았지만 그녀는 고향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라싸라고 대답한다.

 

 

▲완성된 카펫의 표면을 고르게 다듬는 일은 남자의 몫이다. 한올 한올 손으로 엮어 만든 카펫의 판매 수익금은 이곳 자활센터 뿐 아니라 인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티베트인들을 지원하는데 사용된다.

 


이곳 자활센터에 정착한 난민 1세대는 대부분 고령으로 사망하고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수공예품 생산도 이제 대부분이 2, 3세대의 몫이 되었다. 그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운 전통방식에 따라 카펫을 짜고 조각품을 만든다. 한 사람이 작은 카펫 하나를 완성하려면 대략 한 달이 걸린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수공예품들은 자활센터 내에 마련돼 있는 상품진열실에서 판매되고 그 수익금은 이곳 자활센터 뿐 아니라 인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티베트 공동체를 위해 사용된다.


불타는 티베트, 소신공양을 바라보는 슬픈 눈 고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세연을 접고 있지만 티베트에 대한 그리움과 독립의 의지까지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즘 그들의 시선은 티베트를 향해 고정돼 있다. 티베트의 독립과 달라이라마의 귀환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의 소신공양 소식이 연일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티베트에서 잇따르고 있는 독립 요구 소신공양 소식을 알리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다.

 


자활센터 곳곳에는 소신공양을 단행한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담은 포스터와 사진들이 붙어있다. 붉은 화염에 휩싸인 육체, 타들어가고 남은 검붉은 뼈와 살. 포스터 속 사진들은 마치 화염에 휩싸인 채 몸부림치는 티베트의 오늘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 사진들 위에 걸려있는 슬픈 꽃다발은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잊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목숨을 불길에 내던지며 티베트의 자유와 독립, 달라이라마의 귀환을 외치는 안타까운 현장의 사진들 위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라는 티베트인들의 절규가 생생히 흐른다.


인도 다르질링=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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