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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가초울링곰파

지진 상처 잊게 해 주는 동자스님들의 맑은 웃음

1697년 랍춘 남카 지그메 창건
시킴서 가장 오래된 곰파 중 하나


펠링시내 한 눈에 내려 보이는
빼어난 전망 시선 사로잡지만
2011년 발생한 6.9 강진으로
곳곳에 무너지고 갈라진 상처


곰파 입구 작은 학교 건물엔
십대 동자 스님 30여명 공부
변변한 교육장비 하나 없지만
밝은 웃음 소리엔 희망 가득

 

고대의 불교왕국 시킴으로 가는 길은 과거에도 쉽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웨스트뱅갈주에 속하는 다르질링에서 시킴주로 가기 위해서는, 비록 형식적이라고는 하지만 허가증이 필요하다.
시킴왕국이 1975년 인도에 편입된 후에도 중국은 이를 무시한 채 시킴을 독립국가로 대했다. 양국 간 긴장이 팽팽했지만 인도의 신경을 자극시킨 것이 오히려 시킴에는 도움이 됐다.
인도 정부는 도로, 전기, 수도 등 시킴지역의 기반시설 확충에 아낌없이 투자했고 면세 지역으로 지정했다. 덕분에 시킴은 인도 내에서도 부유한 지역이 되었고 빼어난 자연환경 덕에 손꼽히는 관광, 휴양지가 되었다.
그렇게 인도 속의 불교왕국으로 자리 잡은 시킴. 이곳에 발을 들이면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땅’ ‘꽃을 꺾지 맙시다’라는, 시킴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구호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인도를 넘어서는 ‘시킴인’의 자부심이다.

 

 

▲시킴에서 가장 오래된 곰파 가운데 하나인 상가초울링곰파는 잦은 화재와 지진으로 수 차례 보수와 복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2011년 시킴 지역을 강타한 지진의 피해가 아직 완치되지 못했다. 

 


허가증 발급은 어렵지 않다. 물론 무료다. 주 경계에 있는 사무국에서 여권과 사본을 제시하고 간단한 인적사항을 기재하면 여권에 조그만 도장 하나를 ‘콕’ 찍어준다. 서류를 넣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길 건너편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금연 지역인 시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킴주 내에서는 모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금지돼 있다. 인도의 다른 어떤 주에도 없는, 오직 시킴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리고 시킴에서만 가능한 규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흡연을 엄하게 단속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시킴 사람들의 인식이 다른 지역의 인도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시킴 지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도인에 앞서는 ‘시킴인’이라는 자부심. 그것은 비록 지금은 사라졌지만 수백 년을 이어 왔던 불교왕국 시킴이 남겨준 유산인 동시에 장엄한 히말라야가 키워준 호연지기와도 같다.


고작 도장 하나 받았을 뿐인데 시킴으로 들어서자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듯 설렌다. 하지만 다르질링을 출발해 시킴의 첫 번째 목적지인 펠링까지 150km를 이동하데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덕분에 뉘엿뉘엿 해저물녘이 다 되어서야 해발1875m에 자리하고 있는 펠링 시내에 들어섰다. 그리고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맞은편 산봉우리, 빼곡하게 불빛으로 뒤덮인 마을이 바로 다르질링이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기운이 쑥 빠지는 듯 허탈감이 밀려왔다. 저렇게 빤히 보이는 맞은 편 산봉우리에서 이쪽 산봉우리까지 오는데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단 말인가. 오르막과 내리막을 셀 수 없이 반복하며 꼬불꼬불 산을 넘어 다녀야 하는 이번 여정에 익숙해지는 것이 급선무다.


그나마 차량이동이 가능하다면 투덜거릴 것이 없다. 시킴에서의 첫 방문지, 상가초울링곰파는 도로 사정이 열악해 차량진입이 불가능하다. 약 4km 가량 산길을 걸어가야 한다.


상가초울링곰파는 시킴 지역에서도 가장 오래된 곰파 가운데 하나다. 1697년 랍춘 남카 지그메 스님에 의해 세워졌다. 상가초울링은 신성한 주문이라는 뜻이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곰파로 가는 길은 이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신비롭다. 겹겹이 이어지는 히말라야의 산자락들이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져 있는 탁 트인 시야의 능선을 지나면 길은 순간 울창한 숲으로 이어진다. 곧게 뻗은 침엽수림이 쭉쭉 뻗어있다. 금방이라도 옛 전설의 한 자락을 이야기해 줄 듯 신령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한 시간 남짓 걷다보니 숲 너머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깊은 산 속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웬일인가. 멀지 않은 곳에 곰파가 있다.

 

 

▲상가초울링곰파로 가기 위해서는 1시간 정도 산길을 걸어야 한다. 능선을 지나면 울창한 침엽수 숲길이 이어진다.

 


상가초울링곰파 입구에는 어린 동자승들을 위한 작은 학교가 있다. 재잘거리듯 들리던 소리는 동자스님들의 책 읽는 소리였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작은 마당을 앞에 두고 허름한 2층 건물 안에 교실 하나와 숙소, 그리고 조그만 부엌이 시설의 전부다. 마침 오전 수업시간, 교실 안에는 30여 명의 동자스님들이 앉아있다. 낯선 이방인의 갑작스런 방문이 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읽던 책을 멈추고 잠시 소란이 인다. 괜히 수업을 방해했나 싶어 “상가초울링곰파가 어디에 있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만다. 어린 스님들은 대답 대신 쑥스러운 웃음만 짓고 그중 조금 연장자인 한 스님이 학교 뒤편을 가리킨다. 미안한 마음에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발길을 돌린다.


곰파는 동자스님이 가리킨 학교 뒤편, 산등성이 위에 당당히 서있다. 하늘을 찌를 듯 높다랗게 서 있는 기도깃발 룽다가 곰파로 올라가는 길을 앞장서 안내해준다.


상가초울링곰파에서는 히말라야의 산맥들과 멀리 펠링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펠링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일출장소라더니 그 전망이 장관이다.


그런데 곰파는 온통 공사 중이다. 마당엔 여기저기 돌무더기들과 사원 보수에 사용할 목재들이 쌓여 있다. 텅빈 법당 안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처님은 먼지가 뽀얗게 낀 유리창 안에서 헛헛한 미소만 짓고 계신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왜 하필 이런 때 왔는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상가초울링곰파 법당 옆 초르덴들도 지진의 여파로 대대적인 보수작업 중이다. 초르덴에 기대있는 마니석들이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

 


상가초울링곰파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보수 공사도 잦은 편이다. 창건 이래 여러 차례 화재가 났고 지진도 많았다. 그때 마다 사원은 정성스럽게 복구됐다. 지금 벌이고 있는 보수 공사는 아마도 지난 2011년 9월 시킴지역을 강타한 규모 6.9의 강진 여파가 아닐까 싶다. 당시 이 지진으로 시킴뿐 아니라 웨스트뱅갈주와 네팔 등에서 총9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법당 곳곳에서 보이는 갈라진 흔적들은 그때 입은 상처일터다. 법당 내부는 구루 파드마삼바바를 비롯해 여러 불보살들을 그린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와 섬세한 목조각들로 장식돼 있었으나 찾아볼 길이 없다. 특히 법당 전실에는 닝마파의 상징인 과일과 기타 위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천녀의 프레스코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보이지 않는다. 프레스코화를 지킬 수 없을 만큼 이곳 곰파도 큰 피해를 입었음이다. 법당 옆에 줄지어 서 있는 초르덴 역시 상륜부의 아름다운 장식도, 눈부실 만큼 하얀 겉칠도 없이 돌무더기를 쌓아올린 속살 그대로다. 이 역시 무너진 것을 다시 쌓는 중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곰파  안에는 작업 중인 인부들만 분주히 오갈 뿐 이 사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줄 만한 스님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뿐이다.


상가초울링곰파는 인근에 있는 부티아족과 렙차족 마을 주민들의 화장터로도 사용되며 특히 여성 수행자를 받아들이는 시킴 지역의 몇 안 되는 사원 가운데 하나다. 어서 사원 복원이 마무리돼 주민들 곁으로, 그리고 여성 수행자들의 수행 도량으로 다시 문을 열길 바란다.


곰파에서 내려와 처음 들렸던 동자승 학교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수업이 끝나고 점심공양시간이다. 공양을 마친 동자스님들이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그래도 잠시 눈인사를 나눈 사이라고 처음 볼 때 보다 훨씬 살가운 미소를 보여준다. 이 학교에서는 다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의 동자스님 3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수업은 주로 티베트어와 영어로 진행하는데 성인이 된 후 더 공부하기를 원하는 스님들은 갱톡에 있는 큰 사원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하게 된다.


“수업은 오전 7시30분부터 10시까지, 그리고 점심 공양 후 1시부터 3시30분까지 두 차례로 나눠서 합니다. 경전 공부도 하고 영어나 티베트어도 배웁니다.”

 

 

▲곰파 입구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는 30여 명의 동자스님들이 티베트어와 영어를 배우고 있다. 열살 남짓한 동자스님들에게 우리나라식 공기놀이를 가르쳐 줬더니 금새 따라한다.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학생 스님이 학교생활을 간단히 설명해주는 동안 동자들이 모여든다. 열 살 남짓한 동자승들은 변변한 놀잇감 없이도 돌멩이 몇 개를 주워들고 뭐가 그리 신나는지. 어린 시절 공기놀이 솜씨가 꽤나 괜찮았는데 오랜 만에 실력발휘 좀 해 볼까 싶어 동자스님들에게 공기놀이 방법을 알려준다. 한두 번 시범을 보여주니 금방 따라한다. 십여 분 남짓 동자스님 예닐곱 명과 흙바닥에서 공기놀이 대결을 펼친다. 아무래도 솜씨가 예전같지 않다. 그래도 박수를 치며 응원해주는 동자스님들 덕분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상가초울링곰파에는 ‘교육에 통달한 섬’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깊은 숲속에 외롭게 떨어져 있는 곰파지만 학교가 있고 그곳에서 울리는 동자승들의 밝고 건강한 웃음. 이름 속에 담긴 뜻은 아마도 이런 미래를 예견한 선지자의 선택이었나 보다.


곰파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예불을 모시러 법당으로 올라가던 동자스님들이 손을 흔들어 배웅해준다. 그들의 작은 손이 오래 동안 별처럼 반짝인다.


인도 펠링=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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