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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올가미

기자명 법보신문

폭력·분노·욕망 등은
우리들의 삶 속박하는
마음속 똬리 튼 올가미
온 힘 다해 벗어던져야


‘상윳따 니까야’ 제1권에는 ‘마라 상윳따’라고 하는 품이 있다. 이 품에는 말 그대로 악마인 마라(Māra)와 부처님 혹은 부처님 제자와의 문답을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악마 마라는 끝없이 부처님께 대항하고, 제자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악마는 곧 그 정체가 탄로 나면, “‘세존께서는 나에 대해 알고 계신다. 선사께서는 나에 대해 알고 계신다’라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면서 그곳에서 사라졌다”라는 정형구로 끝난다. 참 흥미로운 표현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악마(사탄)와 불교의 악마(마라)는 결정적으로 다른 것 같다. 그리고 결론에서 악마 마라가 낙담하며 슬퍼하는 모습에서 불교적 악마는 결국 패배자의 모습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라를 물리치는 방법은 그의 정체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것에 있음도 알 수 있다. 바르게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러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마라품’에 나오는 비유 가운데 ‘올가미(pāsa)’라는 비유가 나오는데, pāsa는 ‘덫, 족쇄’ 등의 의미도 갖는 말이다. 마라는 이 비유를 부처님께 사용한다. 즉 “그대는 악마의 올가미에 묶였다. 온갖 하늘의 올가미든 인간의 올가미든, 악마의 속박에 묶였다. 사문이여, 그대는 나의 올가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말하는 가운데 사용된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나는 악마의 올가미에서 벗어났네. … 죽음의 신이여, 그대가 패했다”라고 응대하신다. 여기에서 나오는 올가미란 늙음과 죽음으로 대표되는 온갖 번뇌를 말한다. 따라서 올가미에서 벗어났다는 말은 해탈을 성취했다는 말이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 삶이란 바로 이러한 올가미에 속박된 삶이 아닐까 싶다. 내가 속한 사회는 온갖 폭력의 올가미, 거짓의 올가미, 욕망의 올가미, 투쟁의 올가미 등으로 가득 찬 사회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뉴스는 온통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외적인 올가미들이다. 나의 내면을 돌아보면 어떨까. 그 안에도 폭력, 분노, 위선, 우울, 욕망 등의 올가미들이 얽혀 있다.


이 뿐일까. 애증으로 얽혀 있는 가족관계나 친구 등 대인관계 역시 올가미이다. 어쩔 수 없는 관계에 얽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를 보면, 참으로 애증의 관계만큼 강력한 올가미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들은 온갖 사유와 이미지들에 묶여 있다. 온갖 언어와 환상의 이미지들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 거센 사유와 이미지의 물결은 사회적 흐름 혹은 유행이란 것으로 포장되어 나를 기만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올바로 사유하고 올바로 정진해서 위없는 해탈에 이르렀으며, 최상의 해탈을 증득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대들도 그렇게 하라”고 권하신다. 올바로 사유하고 올바로 노력하는 것만이 온갖 종류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바르게 사유하는 것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과는 반대이며, 대상과 나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내 안에 똬리 틀고 있는 폭력과 분노와 위선과 욕망을 바로 알고 보아 그것을 극복하고자 바르게 노력할 때, 내가 속한 사회의 폭력과 분노와 위선도 극복될 것이다.

 

▲이필원 박사

요즘처럼 폭력과 욕망이 난무하는 세상은 우리들 개개인의 내면에 폭력과 욕망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회란 ‘나’라는 개개인이 모인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안의 잔혹함을 제거하는 일이 세상의 온갖 잔혹함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치고 계신 것이리라.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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