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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배움의 자세

기자명 법보신문

삼귀의계, 삶의 지침으로 습관 들여야

평소 효성이 부족한 이는
스승 공경하는 마음 부족
스승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휘둘리면 배움 인연 약해져


순천 송광사에서 훈장노릇을 하고 있는 나는 교육일선에 있는 학교 선생님들을 만날 기회가 가끔 있다. 아마도 내가 처음 출가한 스님들에게 선생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들과 학생교육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어서 인성교육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선생님들이 많이들 힘들어 한다.


선생님들은 말한다. “가정에서 준비가 안 된 학생의 학교 인성교육은 거의 실패로 돌아갑니다. 학교는 인성을 다듬는 역할을 해야지 토대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인성과 관련한 속담이 많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세살 버릇에서 여든을 본다.’ 속담에서 보듯이 옛날의 어른들이 인성교육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시기는 사람의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다. 어렸을 때 행동과 습관을 보고 짐작한다. 실제로 5살 이전에 인성의 기본 틀이 완성된다. 아직 학교 교육을 받고 글자를 배우기 이전인 어린 나이에 말이다. 전적으로 부모와 가족의 삶의 모습을 모방하며 자신의 인성 틀을 만드는 것이다. 정행품 경문을 보자.


“크고 작은 스승을 찾아 뵐 때면, 중생들이 스승을 공경히 섬기고 스승의 좋은 법 익히기를 발원해야 한다.”


승가람에 들어가서 ‘크고 작은 스승을 찾아 뵐 때면’ 이미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을 하려는 것이다. 크다 작다 하는 말은 상대적인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이 큰 스승이고 보살, 연각, 아라한 등은 작은 스승이 된다. 부처님 열반 후에는 다시 도량에 있는 스승에 따라 아라한이 큰 스승이 되고 작은 도과를 얻은 스님들이 작은 스승이 된다. 한 도량 안에서는 큰 스승의 커다란 교육 방침에 맞추어 작은 스승들이 후배들을 지도한다. 예를 들면, 학교의 교장이 교육 목표와 방향성 그리고 방법을 정하고, 이런 과정을 현실적으로 수행해 줄 선생님들을 초빙해 역할을 나누어 준다. 선생님들은 부여받은 역할의 교육을 책임감 있게 수행해 주는 것과 같다.


불교 경전에서 ‘선남자 선여인’이란 말을 자주 보게 된다. ‘관무량수경’에 의하면 선남자 선여인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1) 세속에서 살아가는 선남자 선여인이다. 세속에서 부모님에게 효도 봉양하고 스승과 선배를 잘 받들어 모신다. 자비심을 기르고 살생하지 않으며 십선업도를 실천적으로 닦는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의 누가 보아도 선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사람들의 모범이 된다. 인성이 올바르게 잘 닦여진 사람이다. 2) 소승의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선남자 선여인이다. 앞의 일 단계를 원만히 닦아 기초가 튼튼해야 감당할 수 있는 단계다. 삼귀의계를 삶의 큰 틀로 받아들이고, 각자 자기의 계품을 익숙하게 연습하여 생활화 한다. 그리고 국가의 법이나 사회적 관습, 도덕, 윤리 등과 생활의 매너도 익숙하게 익히고 잘 지킨다. 청정하고 화합하며 수행하는 생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세속 사회의 귀의처가 된다. 3) 대승의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선남자 선여인이다. 앞의 첫 번과 두 번째의 단계를 원만하게 성취한 사람이 보리심을 발하여 성불을 목표로 수행하는 단계다. 보리심을 발하고 인과를 깊게 믿으며 대승경전을 늘 독송 실천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와 같은 수행에 동참할 수 있도록 권하고 격려한다.


‘중생들이 스승을 공경히 섬기고’에서 스승을 섬기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 봉양하는 기초가 있어야 한다. 스승을 잘 모시고 잘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그 인품이 본래도 효도하는 사람일 것이다. 평소에 효성을 다하지 못한 사람이 불법 배우기를 진심으로 발원한다면, 효도와 사도를 동시에 닦도록 해야 한다. 효도는 부모를 모시고 배우는 법이고, 사도는 스승을 모시고 배우는 법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설사 배우더라도 배움의 뿌리가 견고하지 못해서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가 어렵다. ‘스승을 공경히 섬긴다’는 말에서 우리는 주의를 할 것이 있다.

 

이 세상에 역사상 아무리 훌륭한 스승도 다른 사람의 비난을 면한 사람이 없다. 비난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난일 것이다. 스승은 인품, 행위, 학식이 뛰어나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을 수 있다. 사람들의 오해나 시기 질투를 받기 쉽다. 스승은 우리를 인도해 줄 능력이 있는 분이다. 스승의 좋은 것을 열심히 따라 배우면서, 스승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비평하는 것은 흘려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단점을 새겨듣는 순간에 배움의 인연이 약해진다.

 

▲도암 스님.

‘스승의 좋은 법 익히기를 발원해야 한다’에서 익히는 방법은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로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이란 어느 날 어느 순간에 한두 번 해보는 것이 아니다. 상황과 기회가 주어지면 늘 실천하여 배운 것이 습관이 되도록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습하고 연습하면서 스승의 탁마를 달게 받아들여야 가르칠 수 있다. 스스로 능동적으로 배우고 수정하며 연습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스승도 가르칠 수 없다. 잘 배울 수 있기를 발원하는 것은 겸손하고 진실하며 정성스럽고 꾸준하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취가 있을 것이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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