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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페마양체곰파

조화와 균형 품은 파드마삼바바의 세계는 강진도 이겨냈다

시킴지역 닝마파의 중심 사원
티베트혈통만 출가할 수 있어
새로 왕 즉위하면 이곳서 축복

 

세르덥 스님 7년간 혼자 만든
정교한 3차원만다라 상톡팔리
2011년 강진의 심각한 피해도
무사히 이겨내 눈길 사로잡아

 

 

▲페마양체곰파의 동자스님이 곰파 마당에 서 있는 기도깃발 룽다를 다시 걸고 있다.

 

 

시킴의 서부에 자리하고 있는 펠링은 작은 도시다. 도시라 부르기에도 좀 민망한, 우리 정서상 ‘읍내’나 될까 싶은 산등성이 마을이다. 그런 산골마을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다르질링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성큼 다가온 칸첸중가 봉우리의 웅장한 자태를 바라보며 히말라야 산자락을 거닐 수 있는 트레킹코스가 잘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또 티베트인들이 성지로 여기는 케체팔리 호수, 시킴왕조의 탄생지 욕숨, 그리고 앞서 지나온 상가초울링곰파와 지금 찾아가는 페마양체곰파가 모두 펠링 주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펠링 자체의 볼거리보다는 여러 유적과 여행지의 중간 기착지이자 출발지로서 펠링이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이다.


상가초울링곰파로부터 약7km 떨어진 펠링 시내의 동쪽 끄트머리에 페마양체곰파가 자리하고 있다. 여행의 목적이 트레킹에 있거나 시간을 넉넉하게 갖고 히말라야를 느끼고 싶은 이들이라면 천천히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시간은 부족하고 갈 길은 먼 일행에겐 허용되지 않는 사치다. 펠링시내를 오가는 내내 칸첸중가가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춰버린 것도 이런 조급한 마음을 들켜버렸기 때문인지 모른다. 마음이 내달리고 있으니 칸첸중가가 손바닥 안에 들어온들 보일리가 없다.


하지만 걸음을 재촉해서라도 페마양체곰파를 찾아가는 것은 시킴 순례에서 이곳을 절대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페마양체곰파는 시킴의 세 번째 왕인 쵸걀 차그도르 남걀이 통치하던 1705년 지그매 파오 스님에 의해 창건됐다. 원래는 상가초울링곰파를 세운 랍춘 남카 지그메 스님이 세운 작은 기도처였던 것을 지그메 파오 스님이 곰파로 확장한 것이다. 상가초울링곰파 못지않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현재 티베트 4대 종파 중 하나인 닝마파의 시킴 지역 본부다.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법당 듀캉 후면의 보수를 위해 대나무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티베트문화권을 순례할 때 반드시 지녀야 할 기초지식 가운데 하나가 티베트불교의 4대 종파에 대한 이해다. 물론 티베트불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티베트불교가 겔룩파, 샤카파, 까규파, 닝마파의 4대 종파로 구성돼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을 터다. 그리고 조금 더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티베트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인 달라이라마가 이 4대 종파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겔룩파의 수장이며 달라이라마와 함께 다람살라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지도자 까르마파가 까규파의 수장이라는 점도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닝마파는 그에 비해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닝마파 역시 티베트불교에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위상을 지닌 종파다. 닝마파의 개조는 구루린포체로 불리며 티베트인들에 의해 제2의 붓다로 추앙되는 파드마삼바바(8세기 후반. 생몰연대 미상)다. 인도의 수행자로 747년 티베트국왕의 초청을 받아 티베트에 들어간 파드마삼바바는 당시 불교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던 티베트 토속 신앙 본교를 제압하고 밀교를 전해 불교의 위상을 확립한 인물이다. 특히 티베트 외에도 인근 부탄, 라다크와 이곳 시킴의 많은 지역에서 그의 발자취, 즉 그가 수행한 장소나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사원들이 남아있는 등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한 티베트불교권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9세기 후반 티베트왕국이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구게왕국과 라다크왕국 등으로 분열된 후 티베트불교계에는 다양한 종파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서로 견제하거나 경쟁하며 개혁과 성장의 변화를 겪었는데 겔룩파를 비롯해 샤카파와 까규파 등이 이 과정에서 형성된다. 닝마파는 이때 파드마삼바바로부터 전해진 과거 밀교에 대한 계승과 동시에 반성과 재정비를 내세우며 성립된 종파였다. 특히 닝마파는 파드마삼바바가 티베트 곳곳에 숨겨놓았다는 비밀의 경전을 발굴, 다른 종파에는 없는 많은 밀교문헌을 전수했는데 우리나라에도 익히 알려져 있는 ‘사자의 서’가 그 가운데 하나다.

 

 

▲법당의 창문은 새단장을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창틀과 처마 등이 지진의 여파로 휘어져 있다.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티베트불교의 역사이지만 어쨌든 오늘날까지도 닝마파는 티베트불교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옛 시킴왕국에서 닝마파, 그리고 이 닝마파의 중심사원인 페마양체곰파의 위상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파드마삼바바를 개조로 삼고 있는 닝마파 사원으로서 페마양체곰파는 특별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페마양체라는 곰파의 이름이 ‘지고한 연꽃’ 즉 ‘더 없이 높고 고결한 연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점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티베트불교계에서 연꽃은 파드마삼바바를 상징하는 것이니 곰파 자체가 파드마삼바바를 지칭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페마양체곰파에서는 순순한 티베트혈통의 계승자만이 출가할 수 있었으며 이들 스님 가운데 도르제 로벤이라 불린 페마양체곰파의 수장만이 새로 등극하는 시킴왕국의 왕에게 성수를 부어 축복해 줄 수 있었다고 한다.


페마양체곰파는 시킴왕국의 두 번째 수도였던 랍덴체왕궁 유적 뒤편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다. 곰파 입구의 높다란 출입문과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헤아릴 수없이 많은 룽다가 사원의 규모와 위상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곰파는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듀캉이라 불리는 중앙법당 건물은 보수를 위해 설치한 대나무 지지대로 포위당한 모습이다. 이곳도 상가초울링곰파와 마찬가지로 지난 2011년 9월 발생한 진도 6.9의 강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곰파는 1913년과 1960년에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그 때마다 보수됐지만 이번 지진은 꽤나 깊은 상처를 남겼다. 법당 외벽 곳곳에 갈라진 흔적이 여전히 선명하다. 다행히 내부는 크게 파손되지 않아 보수가 마무리됐지만 법당 뒤편 외벽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보수가 마무리된 입구 쪽은 새로 칠한 푸른 빛 페인트가 말끔하지만 지붕과 창문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이 휘어져 있어 당시 지진의 피해가 얼마가 컸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 페마양체곰파 입구를 장엄하고 있는 기도깃발들.

 


법당 내부에는 파드마삼바바의 여덟 가지 현신을 비롯해 다양한 티베트불교의 벽화들이 남아있다. 다행히 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건물을 보수할 때 교체한 것으로 보이는 법당의 옛 나무기둥과 장식 조각들이 곳곳에 쌓여있다. ‘18세기 제작된 옛 기둥’이라는 명패가 붙어있지만 곰파의 역사를 품고 있는 유물들이 별다른 보호 시설도 없이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 안타깝다.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는 법당 내부를 눈에만 담으며 돌아보다 발길이 멈춘 곳은 맨 위층이다. 법당 지붕까지 닿을 듯 커다랗게 제작된 유리 벽 안에 보관돼 있는 정교한 솜씨의 나무조각. 만다라를 조형으로 표현한 일명 ‘3차원 입체 만다라’다. ‘상톡팔리’로 불리는 이 목재 조형물은 파드마삼바바가 머무는 세상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불교의 세계관인 삼계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같은 뜻을 조금 다르게 표현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조형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부처님과 보살, 신장 뿐 아니라 산과 강, 나무와 동물들이 7층으로 표현된 세계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수많은 탑과 법륜 외에도 구슬장식과 연꽃 등으로 장엄돼 있는데 화려하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고 있어 감탄을 불러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조형물을 단 한 사람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3차원 만다라는 이 사원의 스님이었던 세르덥 룬드럽 도르제 스님이 1971년 완성했는데 무려 7년 동안 혼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스님은 이미 입적하셨지만 스님이 남긴 이 조형물은 페마양체를 대표하는 성보가 되어 소중히 보관되고 있다.

 

 

▲법당 맨 위층에 설치돼 있는 3차원입체만다라 상톡팔리.

 


세르덥 스님이 왜 오랜 시간 이 조형물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하나 대충 만들어진 것이 없는, 각각의 조각들 모두에 정성이 가득 들어있는 모습을 보니 세상에는 주연과 조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주인공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 그것이야 말로 세상을 유지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아닐까 싶다.


페마양체곰파에서는 양력 2월이나 3월에 돌아오는 티베트 설날 로싸르에 화려한 축제가 열린다. 이때가 되면 3층 법당인 듀캉의 높이만큼 커다란 괘불을 마당에 걸고 스님들이 가면을 쓴 채 짬이라는 춤을 춘다. 나팔과 북, 징 등의 연주에 맞춰 열리는 이 축제는 새해를 맞이하는 신년 행사로 페마양체곰파 외에도 시킴지역의 여러 곰파에서 이 시기 비슷한 행사들이 많이 열린다. 그 가운데서도 페마양체곰파의 로싸르축제는 가장 으뜸으로 손꼽힌다. 법당 앞 넓은 마당은 1년 내내 이 축제를 기다리며 덩그러니 비워져 있는 듯하다.


오락가락하던 비가 잠깐 그쳤다. 동자승 두 명이 마당 중앙에 서 있는 기둥에 기도깃발 룽다를 다시 걸고 있다.

 

 

▲ 보수를 마친 중심법당 듀캉 입구는 말끔하게 새단장 돼 있다.

 

 

어린 스님들은 자주 하는 일이라는 듯 비에 젖은 낡고 빛바랜 룽다를 잡아당겨 거둬낸다. 이제 곧 새 기도깃발을 걸면 선명하게 새겨진 부처님의 가르침이 또 다시 바람을 타고 세상으로 퍼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빛이 바래고 낡아 종국에서 소멸한다. 그 과정에서 지진이나 폭우 같은 자연재해, 아니면 화재나 전쟁과 같은 인간의 실수 등 좀 더 위협적인 무엇인가에 의해 더 빨리 소멸의 길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낡은 룽다를 거둬내고 새 기도깃발을 거는 저 동자스님들처럼 부지런한 손길과 마음만 있다면 지진으로 무너진 곰파를 다시 세우고 가꾸는 것도 지나가는 역사의 한 과정일 뿐이다. 오늘 우리가 만난 페마양체곰파는 여전히 지진의 상처를 덮어쓰고 있지만 오래지 않아 이 상처도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내년 로싸르축제 때는 상처없는 말끔한 모습의 페마양체곰파에서 또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릴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가 만난 상처입은 페마양체의 모습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려는 어리석음만 경계하면 된다.

 

인도 펠링=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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