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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소생론

기자명 법보신문

예수의 가장 큰 이적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
집착의 단절을 강조하는
불교에선 어리석은 행위

 

예수가 행한 이적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죽은 자들을 다시 소생시킨 사건이다. 신약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불치병 환자들을 완치시키는 것은 물론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는 능력을 보였다. 그 가운데 나사로라는 아이를 나흘 만에 부활시킨 일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린 일은 가히 기독교인들의 신앙심을 북돋게 하는데 손색이 없다.

 

야이로의 딸을 살린 이야기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등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을 만큼 비중이 크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에게 자신의 딸이 죽었으니 집으로 가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이에 예수는 죽은 딸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소녀야 네게 이르노니 깨어나라”고 명령을 한다. 그러자 죽었던 야이로의 딸이 일어나더니 아무 일 없는 듯 걸어 다닌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는 이일을 함부로 발설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 같은 사건에 대비할만한 일화가 ‘법구경’에도 나온다. 어느 때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끼사꼬따미라는 여인이 그의 외아들을 잃게 된다. 그녀는 죽은 아이를 안고 의사를 찾아가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의사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면서 혹 부처님은 당신의 아들을 살릴 수도 있으니 부처님께 가보라’고 권한다. 그녀는 곧 죽은 아이를 안고 부처님을 찾아간다. 그녀를 본 부처님은 아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을에 내려가 겨자씨 한 되를 구해오라고 말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녀에게 겨자씨를 얻어 오되 한 번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서만 얻어 올 것을 요구한다. 한 가닥 희망을 안고 겨자씨를 얻으려 했던 그녀는 한 되는커녕 한줌의 겨자씨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계신 정사로 돌아오는 도중 한 여인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다가 물동이를 놓쳐 깨지면서 물이 흘러 점차 바닥으로 스며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모습에 그녀는 큰 교훈을 얻게 된다.


부처님을 찾은 그녀는 겨자씨를 얻어오라고 한 의미가 어디 있었는지를 깨닫고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듣게 된다. 부처님은 여인에게 “그대의 슬픔은 아들의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아들에 대한 집착과 존재에 대한 결박 때문”이라고 훈계하면서 그 슬픔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길을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은 끼사꼬따미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수행 끝에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물론 존재와 비존재 즉 삶과 죽음의 집착과 족쇄로부터 멀리 벗어나 일체로부터 해탈을 얻는다.


이 일화를 보면 부처님은 예수처럼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모든 법을 깨달은 성인일지언정 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나고 죽는 길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알아도 죽은 사람을 직접 살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불교에서는 누구도 죽음을 막을 수 없으며 죽은 자를 소생시킬 수 없다고 본다.


또 설령 예수처럼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불교에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부처님은 죽음을 해결하는 법은 육체의 재생이나 부활에 있지 않다고 보았다. 오직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망과 집착을 파괴했을 때 죽음의 문제는 해결된다고 가르쳤다. 삶과 죽음에 묶여 있는 미혹한 범부들에게는 예수의 이적이 훨씬 매력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의 소생 이적은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어리석은 행위가 될 수 있다. 예수의 소생 이적은 죽음에 대한 슬픔과 번민을 연장시켜 준 것이지 해결시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열 법사

야이로의 딸은 또 한 번 죽어야 하고 그들의 이별은 다시 찾아온다. 그러나 끼사꼬따미에게는 두 번째 이별은 없으며 삶과 죽음의 결박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어떤 이별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에 따른 슬픔은 당하지 않는다. 불교의 소생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의 연장이 아니다. 집착과 번뇌의 단절이 진정한 소생이라 할 수 있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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