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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거센 물결

기자명 법보신문

쾌락·고정 관념의 물살
저항하기 어려운 현실
휩쓸리면 집착에 침몰
벗어나는 지혜 갖춰야

 

올해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긴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장마도 예전과 많이 달라져, 국지성 폭우의 패턴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뉴스를 통해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계곡으로 놀러 갔다가 갑자기 내린 폭우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 있다가 구출되는 경우도 있다. 무사히 구출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나, 그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을 것을 생각하면 그 또한 안타깝다.


이런 경우 ‘비가 내려 봤자 얼마나 되겠어?’라고 하는 안일한 생각이 원인이 된다. 급작스럽게 불어난 물은 모든 것을 휩쓸고 내려간다. 저항한다고 해도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일이 이렇게 되면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는다. 요즘처럼 국지성 폭우가 많이 내리는 때에는 가급적 계곡과 같이 위험한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보다 안전한 곳으로 가족과 함께 놀러가는 것이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 제1권의 첫 번째 내용이 ‘거센 물결(Ogha)’이다. 이를 한역 ‘잡아함경’에서는 사류(流), 즉 빠르게 흐르는 물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은 천신(天神)이 부처님께 질문하면서 나온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어떻게 거센 물결을 건너셨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벗이여, 나는 머물지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거센 물결을 건넜습니다. 벗이여, 내가 머무르려고 하면 가라앉습니다. 내가 애쓰려고 하면 (물살에) 이끌리고 맙니다. 벗이여, 이와 같이 나는 머물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거센 물결을 건넜습니다.” 라고 답하셨다.


우리가 거센 물결에 휩쓸렸을 때에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면 곧 힘이 다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물결에 마냥 있을 수도 없다. 어찌해야 하겠는가. 여기서 거센 물결은 생사가 거듭되는 윤회나, 감각적 쾌락,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 견해의 고집, 무지 등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어느 것이나 결코 빠져나오기가 만만치 않은 것들이다. 한 번 휘말려 버리면, 아득해져 빠져나올 날을 기약하기 힘들다. 그러한 거센 물결을 부처님께서는 건너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건넘이 곧 세상에 대한 집착(visattika- )을 뛰어넘어 열반에 도달하는 것임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감각적 쾌락을 결코 얕보아서는 안 된다. 육체는 쾌락적 특징에 곧 익숙해지고, 선호하는 경향을 갖는다. 일례로 운동을 하고자 할 때 육체는 힘들면 곧 강한 거부감을 표현함으로써 운동을 지속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절제하지 못하고 계속 음식을 탐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우리가 감각적 쾌락에 일단 빠져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결코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견해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고정관념이 생겨나면 사소한 그 생각하나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좁고 협소한 관념에 갇혀 평생 세상을 바라보며, 그것이 전부인양 알고 살게 된다.

 

▲이필원 박사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미 부처님을 비롯한 앞선 선지식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감각적 쾌락과 무수한 견해들 속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 그것들에 휘말리지 않고, 안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쾌락과 견해가 나쁘다고 모든 것을 내버리고 산으로 들어가야 할까? 그렇다고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이것들과 마주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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