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 따시딩곰파

파드마삼바바 전설 켜켜이 쌓인 ‘신성한 물의 사원’

시킴왕조 세운 사닥 스님
신비한 빛에 이끌려 창건
구루린포체가 화살 쏘아
선택한 수행터라는 전설도


티베트력 정월 보름 때마다
‘붐추’라 불리는 축제 열려
1년간 보관해 두었던 물로
새해 운세 알아보는 의식도

 

 

▲따시딩곰파는 1716년 사닥 스님이 창건했다. 그러나 이 사원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 파드마삼바바가 수행터를 정하기 위해 쏘아올린 화살이 떨어진 장소였다고도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따시딩곰파는 시킴에서도 가장 신성한 곰파로 여겨진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잔뜩 찌푸린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듯하다. 해발 1800~2000m를 오르내리는 고산의 날씨는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동안 구름은 점점 더 짙어진다. 아무래도 한바탕 쏟아질 심산임이 분명하다.


욕숨에서 따시딩까지 19km, 서로 마주보고 있는 산봉우리 위에 각각 자리하고 있는 이웃마을이다. 이 마을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따시딩곰파는 욕숨에서 만나 시킴왕국의 문을 연 세 명의 라마 가운데 한 명인 사닥 셈파 첸포 푼촉 리진 스님이 1716년 창건한 곰파다. 동시에 시킴에서도 가장 신성한 사원으로 손꼽힌다.


전설에 따르면 구루린포체인 파드마삼바바가 명상할 장소를 찾기 위해 화살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떨어진 곳이 바로 지금의 곰파가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 곰파를 세운 사닥 스님이 욕숨에 있을 때 이곳 따시딩의 언덕 위에서 신비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찾아왔는데 와서 보니 빛뿐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향기가 풍기고 음악 소리도 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곰파를 세웠다고 한다.

곰파의 신성성을 강조하는 전설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곳 곰파에는 라동추라 불리는 물병이 소중히 보관돼 있다. 이 물병은 파드마삼바바가 인도에서 가져온 신성한 물과 흙, 그리고 보물로 만들었는데 파드마삼바바는 이 물병에 물을 넘치게 담아 홍수나 지진이 나게 함으로써 이 지역에 있던 악귀를 다스렸다고 한다. 이후 파드마삼바바가 떠나고 물병은 천신들에 의해 숨겨졌으나 따시딩곰파를 세운 사닥 스님이 이 물병을 다시 찾아 사원에 보관했고, 이후 매년 티베트력으로 1월 보름에 열리는 붐추 축제 때마다 따시딩곰파에서는 이 신성한 물병으로 새해의 길흉을 점치게 되었다. ‘붐추’는 ‘물통’이라는 뜻으로 신성한 물병, 즉 라동추를 의미한다. 따시딩곰파에서는 라동추에 신성한 물을 가득 담아 밀봉한 후 이듬 해 열리는 붐추 축제 때 개봉하는데 21개의 물 잔에 이 물을 나눠 담아 21개의 물잔이 가득 차면 풍년이 들지만 물이 부족해 21개의 물 잔이 가득 채워지지 않으면 기근이 들 징조로 해석한다. 또 물에 먼지 등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오염이 돼 있으면 분쟁이나 대립이 벌어질 징조라고 믿는다. 새해의 길흉을 점쳐보는 의식이 끝난 후에는 물병에 다시 깨끗한 물을 가득 채운 후 밀봉해 이듬해 열릴 붐추 축제 때까지 곰파 안에 보관한다.


이처럼 신비한 전설로 인해 따시딩곰파는 시킴지역에서도 가장 신성한 사원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펠링의 페마양체곰파와 상가초울링곰파, 욕숨의 둡디곰파와 노르부강 그리고 따시딩으로 이어지는 곰파 순례 트레킹 코스에서도 빠지지 않는 성지로 사랑받고 있다.

 

 

▲따시딩곰파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기도 깃발 룽다가 셀 수 없이 많이 세워져 있다.

 


입구에는 이곳이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려는 듯 기도깃발 룽다가 헤아릴 수없이 많이 서있다. 마치 산봉우리를 뒤덮을 듯 겹겹이 서있는 룽다의 숲, 그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곰파로 향한다. 길가 곳곳에는 경전을 세긴 돌 마니석과 오색의 기도깃발 타르초, 그리고 돌탑 초르덴이 서 있다.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탑을 조성하고 마니석을 만들었는지 따위는 기록하지 않고 있다. 탑도, 마니석도,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타르초도 끝없이 변하고 퇴색해 언젠가는 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이름 한자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비를 품은 바람이 기세등등하게 타르초를 훑고 지나간다.


곰파 입구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독경 소리가 들린다. 입구의 작은 법당 안에서 기도가 한창이다. 이곳 마을의 한 가정집에서 돌아가신 집안 어른을 위해 법회를 봉행하는 중이란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무렵 물기 머금은 안개가 가득한 곰파 안에 울려퍼지는 낮고 청아한 독경소리와 묵직한 북소리가 순식간에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제법 가파른 언덕길을 헐떡거리며 걸어 올라온 덕에 가뜩이나 무거워진 다리가 법당 처마 아래서 주저앉아 버린다.


잠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따시딩곰파도 곳곳이 공사 중이다. 이곳도 지진의 영향을 받았나보다. 그래도 중심 법당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입구와 마당의 마무리공사가 한창이라 법당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중심 법당을 지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줄지어서있는 초르덴을 만날 수 있다. 켜켜이 쌓여있는 마니석이 담장처럼 둘러쳐져있고 그 안에 여러 개의 초르덴이 군락을 이뤄 조성돼 있는데 그 중 가운데 서 있는 초르덴이 유독 눈에 띈다. 화려한 금빛 장엄물이 상륜부를 장엄하고 오색 띠가 걸려있는 이 초르덴의 이름은 똥와랑돌이다. 그저 보기만 해도 모든 죄업이 씻겨나간다고 하는데 보수공사를 하며 초르덴도 새로 단장했는지 새로 만든 탑처럼 말쑥해 보인다. 왜 똥와랑동에 이런 영험이 있다고 믿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오래도록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곰파 안의 초르덴군락. 가운데 있는 똥와라돌은 보기만해도 죄업이 사라진다고 한다.

 


초르덴과 마니석을 살펴보고 있는 동안 내내 찌푸려있던 하늘이 기어코 빗방울을 떨구기 시작한다. ‘후두둑’ 비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미처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금새 물이 고여 질척거리는 사원 마당을 지나 법회가 진행 중인 작은 법당 처마 밑으로 다시 몸을 피한다. 두꺼운 구름이 덮여 있어 해가 넘어갔는지 모르겠지만 곰파에는 이미 어둠이 뒤덮였다. 마침 우산도 없는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차량까지 돌아가려면 이 빗줄기를 뚫고 30여 분을 걸어야 한다. 오도가도 못하고 망연자실 앉아서 하늘만 쳐다본다. 아무런 대책이 없는데도 걱정이 앞서기보다 이 한가로움이 마냥 좋은 것은 법당 안에서 울려 퍼지는 독경소리가 빗소리와 어울려 곰파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이곳에 와서 다시 빗소리와 독경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렇게 앉아 있기를 20여 분, 법당 뒤편에서 누군가 걸어 나온다. 아마도 곰파의 보수공사를 거들고 있는 직원인 듯하다. 비가 그치기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무턱대고 도움을 청한다. “뭐든 좋으니 비를 피할만한 방법이 없겠냐”는 부탁에 친절한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우산은 없지만 잠깐 기다려 보라”고 한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한 5분 쯤 지났을까, 어디서 구했는지 커다란 비닐 두 장을 들고 돌아온다. 물에 떠내려가던 중에 동아줄을 붙잡은 기분이다.


할 줄 아는 영어를 모두 동원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비닐을 둘러쓴 채 하산을 서두른다. 그야말로 폭우다. 비닐을 우비처럼 두르고 걸음을 재촉했지만 물에 빠진 생쥐 꼴을 면하지 못했다. 차에서 일행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운전기사가 그런 우리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도 홀딱 젖은 일행이 안쓰러웠는지 따뜻한 차 한 잔을 권한다. 곰파 입구에 있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 차를 주문하니 사람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커다란 잔에 넘칠 듯 차를 담아 준다. 따끈한 온기가 금방 온 몸에 전해진다.

 

 

▲따시딩곰파 안의 작은 법당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집안 어르신을 위한 일종의 천도법회라는데 스님이 독경하는 동안 법회에 참석한 가족들은 쉼없이 절을 올리며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따시딩곰파에서 바라보는 주변 전망은 감탄을 자아낼만 하단다. 날이 맑을 때면 첩첩이 둘러서 있는 히말라야의 자락들과 멀리 칸첸중가의 위풍당당한 모습도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비에 잠긴 곰파에 울려 퍼지던 독경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그 소리의 한 자락을 잡고 산을 내려가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인도 따시딩=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