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의 문화예술 활동
스님들의 문화예술 활동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3.08.2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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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스님들의 노래·춤 ·음악

불보살 공양하는 방편 삼아

무분별하게 증가한 예술활동

돈벌이의 수단 전락 우려돼

 

신문사에서 음반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됐다. 노래하는 종정 스님 ㅇㅇ 선사의 무상한 장미. 음반의 제목이다. 장미꽃을 배경으로 중절모를 쓴 스님의 사진이 이색적이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로트풍의 음반이었지만 한참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행의 사표이며 법의 상징인 종정 스님이 노래를 부르고 음반을 내다니, 혹시라도 음반을 접한 대중들이 착각을 할까 낯이 뜨거웠다. 종정, 선사라는 문구에서 수행의 향기를 맡기는 쉽지 않았다.

 

돌아보면 주변에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스님들이 많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하는 스님들도 있다. 또 정식 가수로 데뷔하거나 전문적인 화가로 활동하는 스님들도 적지 않다.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 직업 예술인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듣는 스님들도 있다. 시대는 갈수록 다변화되고 문화예술의 영역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서 스님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스님들의 활동을 바라보는 교계의 시각이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계율적인 측면에서 스님들의 문화예술 활동은 수행자의 본분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비 승려인 사미들이 지켜야 할 계율 중에 불가무관청계(不歌舞觀廳戒)가 있다. 노래하고 춤추는 행위를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뜻이다. 춤과 노래를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하는데 직접 하는 행위가 계율에 어긋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스님들의 본분은 수행이다. 따라서 감정의 기복을 일으키는 가무(歌舞)를 금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불교는 오랜 세월 노래와 춤, 음악과 함께 해 왔다. 아름다운 운율의 예불, 노래와 춤, 악기 등이 어우러진 범패와 영산재가 그것이다. 석굴암과 고려불화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예술 활동은 천년의 역사를 넘어 이어져왔다. 유무형의 문화재를 포함, 우리 문화재의 60% 이상이 불교문화재다. 스님들의 문화예술 활동은 이미 오래된 전통인 것이다. 오늘날 스님들의 문화예술 활동도 전통에 비춰 크게 어긋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옛 스님들의 문화예술 활동에서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옛 스님들의 활동은 오로지 불교를 향하고 있다. 옛 스님들의 문화예술은 부처님을 찬탄하고 불보살을 공양하기 위한 것이다. 노래든 춤이든 그 자체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도구 삼아 수행과 포교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원칙에서 이탈한 스님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세속화의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스님의 신분이 출세의 발판이 되고 재능이 돈벌이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문화의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포교의 한 방편으로 문화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출가자의 본분을 잃고 승복 입은 예술인으로 사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이를 방편으로 불자들을 부처님 품으로 인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방편이 본질이 돼서는 안 된다. 스님의 본분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치열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일이다. 그리고 중생의 교화와 여러 방편도 이런 수행력이 바탕이 됐을 때 가능하다.

 

▲김형규 부장

원효 스님이 저자거리에서 무애무(無碍舞)를 추고, 용성 스님이 풍금을 연주한 것은 춤과 노래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중생을 교화하고 어린이들을 포교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방편은 방편에서 그쳐야 한다. 녹은 쇠에서 생겨나지만 결국 쇠를 집어 삼킨다. 스님들의 무분별한 문화예술 활동이 불교의 세속화를 부추기는 단초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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