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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화장용 장작

기자명 법보신문

시체 태우다 남은 장작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출가 뒤 세속 삶 바라면
누구도 반기지 않게 돼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현재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가 이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까? 아마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공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가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면서, ‘빵을 만드는 제빵사가 되었으면 훨씬 행복했을 터인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교수는 아마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것이 즐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늘 제빵사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결단을 내려 제빵사가 되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빵을 만드는 것이 잘 되지 않고, 가르쳐주는 스승에게 혼만 난다. 그러자 그는 대학에 있었을 때를 생각하며, 지금의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은 교수와 제빵사 두 가지 영역에 걸쳐 있는 사람이다. 그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교수의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제빵사의 일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럼으로써 교수의 일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제빵사의 일에서 느끼는 기쁨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어느 쪽 일에도 마음껏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초기경전 가운데 소부경전(Khuddakanikāya)에 ‘이띠부따까’라고 하는 경전이 있다. 여기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설법 가운데 ‘시체 화장용 장작(chavālāta)’이란 표현이 나온다.


인도에서는 시신을 화장하는 풍습이 고대로부터 일반적으로 행해졌다. 장작에는 화력이 좋도록, 그리고 오래 타도록 쇠똥을 발라 둔다. 그런데 그 장작이 타다가 남기도 한다. 그것을 경전에서는 “양쪽이 불이 붙다만, 그리고 중간에 쇠똥이 발라진 장작(ubhato padittaṃ majjheguthagata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장작을 누가 갖다가 쓸까. 마을에서도 숲에서도 이런 장작은 쓸모가 없게 된다. 부처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제자들을 경책하기 위해서다. 생계 수단으로 가장 천한 것이 ‘탁발’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저주할 때 “손에 발우나 들고 돌아다녀라”라는 말을 한다고 하면서, 수행자들이 이 일을 선택한 것은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한 선택임을 강조하신다.


그런데 그러한 삶의 끝(antaṃ jivīkanaṃ), 즉 가장 천한 생계 수단을 택한 제자들이 세속적 욕망에 빠져 살고, 분노에 사로잡혀 타락하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출가란 재가의 삶을 버리고 선택한 삶이다. 그런 만큼 재가 삶의 특징인 욕망에 빠져 사는 삶, 분노에 사로잡힌 삶, 어리석음에 물든 삶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재가의 부정한 특질을 버릴 때, 출가 본연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런데 출가의 상태에서 재가의 삶을 부러워하거나, 그러한 삶을 향유하고자 하는 것은 마치 시체를 태우다가 타다 남은 장작처럼, 누구도 그것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제대로 출가의 즐거움도, 재가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이필원 박사

출가이든 재가이든,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남의 떡을 부러워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떡을 맛있게 먹는 일이 가장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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