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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엔체이곰파

타르초 걸고 마니차 돌리고 버터등 불 밝히고
모양새 달라도 정성 가득한 기원이 신심의 오색꽃 피우다

1909년 라마 두룹돕 까르포 창건
시킴의 주도 갱톡에 위치해 있어
아침부터 순례·관광객들로 북적
티베트불교 신행 형태 모아 놓은
종합선물세트처럼 한데 어우러져

 

 

▲시킴의 주도 갱톡에 자리잡고 있는 엔체이곰파는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라마 두룹돕 까르포가 창건했다.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와야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갱톡의 명소다.

 

 

시킴의 주도는 갱톡이다. 시킴어로 ‘산꼭데기’라는 뜻이지만 첫 인상은 잘 정비된 현대의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다. 특히 중심 시가지는 마치 유럽 어느 작은 도시의 한 모퉁이를 옮겨 놓은 듯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상쾌한 아침 공기까지 더해져 갱톡의 아침 풍경은 더 없이 싱그럽다. 갱톡은 1975년 시킴왕국이 인도에 편입되기 전까지 왕국의 수도였다. 인도와 티베트를 이어주는 교역로 상에 위치하고 있는 중계지였지만 그리 큰 도시라 할 수는 없었다. 갱톡이 지금처럼 큰 도시로 발전한 것은 영국인들이 시킴에 드나든 19세기 중반 이후다. 하지만 티베트불교 4대 종파 가운데 하나인 까규파의 수장 까르마파의 공식 거처가 있는 룸텍 사원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갱톡을 거쳐 가야 하는 까닭에 시킴을 찾는 불자들이라면 꼭 한 번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갱톡 곳곳에도 꽤 규모가 큰 사원들이 있다. 엔체이곰파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갱톡 중심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약 3km 가량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엔체이곰파는 1909년 라마 두룹돕 까르포의 수행처가 있던 곳에 세워진 닝마파 계열의 사원이다. 두룹돕 까르포 스님은 하늘을 날아다닌 고승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엔체이곰파로 올라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하늘을 날아다닌 두룹돕 까르포 스님에게 이런 언덕은 별 문제가 안됐겠지만 고작해야 땅에서 한 걸음 밖에 뛰어오르지 못하는 범인에게는 이 비탈길도 만만치 않은 장애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오르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수려한 풍경이 수고로움을 보상해 준다. 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갱톡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도 곰파 입구에 늘어서 있는 침엽수들, 하늘을 찌를 듯 뻗어있는 나무들의 수려한 모습과 그 사이의 길을 따라 곰파까지 이어지는 마니차들이 티베트불교 사원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전 9시도 안 돼 곰파 입구에 도착했지만 벌써 사람들로 붐빈다. 대부분 티베트인들로 보이는데 전통 복장 차림의 이들이 많아서 한 눈에 보아도 쉽게 구분된다. 곰파 입구에 들어선 티베트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늘어선 마니차를 돌리는 것이다. 올라갈 때는 길 오른편의 마니차를 돌리며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왼편에 있는 마니차들을 돌리며 내려온다. 마니차는 항상 오른손을 이용해 시계 방향으로 돌리니 자연스럽게 우측통행이 이뤄지는 셈이다. 마니차 위로 쭉 뻗어있는 나무 사이에는 기도깃발 타르초가 겹겹이 걸려 있다. 제법 높은 나무 위에 어떻게 기도깃발을 걸었을까 궁금했는데 마침 티베트 남성 한 명이 기도깃발을 들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잠시 그의 행동을 관찰하니 궁금증은 쉽게 풀린다. 이곳저곳을 기웃 거리던 이 남성은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했는지, 마니차가 설치돼 있는 구조물을 발판 삼아 지붕 위로 성큼 올라간다. 그리고는 곡예 하듯 지붕 위를 이리저리 오가며 나무와 나무 사이에 타르초를 내건다. 불과 몇 분 만에 그가 내건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이기 시작한다. 기도깃발을 걸기 위해서라지만 마니차가 설치돼 있는 구조물을 밟고 올라서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라면 ‘불경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질 법도한데 이곳에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인다. 문화의 차이, 아니면 인식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엔체이곰파 입구. 곰파를 오가는 사람들의 마니차 돌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사원 안의 풍경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불자들의 일반적인 참배가 이뤄지는 큰 법당과는 달리 스님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는 작은 법당에는 아무나 출입 할 수가 없다. 법당 입구에서는 한 스님이 앉아 사람들의 머리에 좁쌀과 같은 곡식을 뿌리고 향로의 연기를 쏘여준다. ‘게트릭’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정화의식이다. 법당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스님의 정화의식을 거쳐야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무나 법당에 들어갈 수는 없다. 기도 의식을 요청한 사람과 지역 주민들만이 법당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꽤나 절차가 까다롭다. 미리 기도의식을 청하지 못한 일행은 입구에서 법당 안을 기웃거리다 발길을 돌린다.

 

 

▲법당 입구에서는 스님이 불자들에게 게트릭이라 불리는 정화의식을 해준다.

 


법당 옆 도량 한쪽 구석에 서 있는 하얀 굴뚝에서는 연기가 쉼 없이 피어오른다. 이 역시 정화의식의 하나로 시킴 사람들은 화로 같은 역할을 하는 이 굴뚝을 ‘상’이라고 부른다. 상은 곰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일반 가정에 작은 상을 만들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정화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밀가루, 고춧가루, 버터, 쌀, 찻잎 등을 상에 넣고 태우면서 연기를 사방으로 퍼지게 하는데 공기를 정화하고 맑은 기운을 부른다고 믿는다. 특별한 날에만 행하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신행활동의 하나인 셈이다. 마침 한 모녀가 집에서 가져온 쌀가루와 찻잎을 상에 넣으며 무언가를 발원한다. 궁금해 물어보니 “세상에 맑은 기운이 가득해지길, 그래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기원했다”고 한다. 소박하지만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그들의 여유로운 마음이 세삼 부러워진다.

 

 

▲탑처럼 생긴 화로 ‘상’에 쌀가루 등을 태우며 기도하는 티베트 불자들.

 


법당 뒤편에는 버터등을 공양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도 마련돼 있다. 얼핏 보아서는 작은 판잣집으로 보이는데 그 안에는 수많은 버터등이 밝혀져 있다. 이곳 관리소임을 맡은 듯 한 스님 두 명이 상주하며 불자들의 등공양을 돕고 있다. 불이 꺼진 램프에 버터를 보충해 넣거나 불씨를 옮겨 다시 불을 밝히는 것도 스님들의 몫이다.


엔체이곰파는 갱톡 시가지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어 늘 사람들로 붐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그들 각자가 행하는 신행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열심히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도 있고 오른쪽 방향으로 법당을 돌며 옴마니반메훔을 외우거나 쉼 없이 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사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그저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얼핏 보아서는 무질서해보이지만 누구도 타인의 신행을 방해하지 않고 자신의 신행 방법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불자들이 공양한 버터등이 작은 건물 안에 빼곡히 놓여 불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곰파 안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지만 엔체이곰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천진난만한 동자스님들의 모습이다. 엔체이곰파에는 약 50여 명의 동자스님들이 있다. 햇살이 잘 드는 법당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장난을 치거나 우루루 마당을 뛰어다니는 동자스님들의 모습이 그대로 곰파의 한 조각처럼 자연스럽다. 전통적으로 시킴에서는 스님들을 티베트 라싸 등으로 보내 교육시켰는데 근대 들어 인도와 중국의 경계가 명확해진 후에는 스님들의 티베트 유학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덕분에 시킴 지역의 곰파들도 자체적인 교육 시설을 갖출 수 있게 됐지만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티베트를 갈 수 없게 된 아쉬움은 적지 않을 터. 그래서인지 많은 스님들이 평생에 한 번이라도 티베트와 라싸를 순례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저 어린 동자스님들은 아직 아니다. 개구쟁이 티를 벗지 못한 동자들은 도반들과 장난을 치며 법당 마당을 뛰어다니기에도 하루해가 짧을 것이다. 저 동자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갱톡에 활기를 불러왔던 교역로를 따라 다시 한 번 티베트까지 이어질 날을 그려본다.


인도 갱톡=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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