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 세속화의 주범 건당(建幢)
승가 세속화의 주범 건당(建幢)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3.09.02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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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당에 담긴 본래 옛 의미는
스승이 인가한 법맥이란 뜻
승가 세속화 부끄러움 없이
재력 따라가 은사 바꾸기도

 

교계신문을 보면 상좌가 은사 스님과 인연을 끊는다는 광고가 가끔씩 보인다. 이연(離緣)광고다. 세속으로 치면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뜻이다. 혈연으로 묶여있는 세속의 부자(父子)관계를 사제(師弟)관계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불가에서 은사와 상좌 관계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서 있다. 세간과의 인연을 끊어버린 출가 수행자에게 은사란 아버지이며 또한 스승이다. 혈연의 자리를 법맥(法脈)이 대신하고 문중으로까지 확장되면 세간의 가문 못지않은 끈끈함을 발휘한다. 이런 이유로 옛 사람들은 상좌가 은사 스님을 버리는 일을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일로 여겼다.


그러나 최근 은사 상좌 간에 인연을 끊는 광고들이 느는 것을 보면 승가도 세속을 닮아가는 느낌이다. 스승의 말과 가르침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던 전통이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부모를 버리거나 부모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요즘 세태에 승가도 시나브로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스승과의 인연을 끊는 이연의 이면에는 건당(建幢)이 있다. 사람들은 건당을 은사를 바꾼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옛 은사 스님과 인연을 끊고 마음에 맞는 스님을 찾아 그 스님의 상좌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건당을 부끄럽게 여겼다지만 지금은 무감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건당에 담긴 본래 뜻은 전혀 다르다. 결코 가볍지가 않다. 스님들에게 건당은 수행에 한 획을 긋는 통과의례와 같다. 수행이 깊어져 다른 사람에게 불법을 전할 정도의 깨달음을 이뤘을 때 스승에게서 법호(法號)를 받고 법맥을 이어받았음을 인가받는 것이 건당이다. 그러니까 건당은 스승의 법을 이었다는 증표인 셈이다. 건당의 이런 올바른 의미가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법은사(法恩師)에 대한 잘못된 이해때문이다. 법은사는 말 그대로 불법을 전해주는 스승으로 옛 스님들은 은사 외에도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는 법은사를 따로 모시는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 찾기도 하지만 제자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은사 스님의 배려이기도 했다. 법은사 아래에서 열심히 수행해 마침내 건당식을 갖게 되면 그 법맥을 이어 후학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옛 스님들이나 나이가 지긋한 스님들의 건당은 이런 전통적인 의미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지금의 건당은 마음대로 스승을 바꿀 수 있는 면죄부와 같다. 눈 밝은 스승을 찾아가 깨달음을 얻겠다는 생각보다 재력과 권력을 쥔 스님이나, 그런 절을 찾아 건당이라는 이름으로 은사를 바꾸는 스님들이 늘고 있다. 본사 주지 스님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건당하는 희안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건당은 상좌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관리도 못하면서 건당을 받아주는 스승도 문제다.

 

이렇게 건당상좌가 늘어나다보니, 스승 열반 후에 상좌들끼리 돈 다툼, 자리다툼을 벌이는 볼썽사나운 일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모든 건당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수행을 계속해야 하는데 은사 스님이 열반에 들거나, 환속함으로써 부득이 건당을 해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김형규 부장

그렇더라도 건당으로 인한 승가의 세속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만은 없다. 이해에 따라 수시로 스승을 바꾸면서도 부끄러움마저 잃어버렸다. 이런 일이 계속 방치되다가는 혹여 부처님마저 버려지는 환부역조(換父易祖)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김형규  kimh@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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