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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진불선원장 설우 스님

‘나도 불성 있다’ 정견 없는 선수행 지옥문 열 뿐

효봉 모신 대보살 모친
포교원력 주지 소임 맡자
‘생사 해결 못한 스님이
누구 인생 길 열어주나’


선원 개원 3개월 만에
신도 300여명 대 운집

 

 

▲설우 스님

 


“농부가 독수리 알을 주워 와 암탉에게 품게 했습니다. 거기서 뭐가 나왔겠어요? 어느 날 황금 독수리가 병아리 노니는 마당 위를 날았습니다. 한 병아리가 독수리한테 걸리면 제삿날이니 서둘러 닭장으로 피하자 외칩니다. 독수리 새끼도 병아리 무리를 따라 닭장 안으로 숨습니다. 만약, 농부가 독수리 새끼한테 ‘너는 암탉이 품긴 했지만 본래 황금독수리 새끼’라는 사실을 일러줬다면 어땠을까요? 어미 독수리를 보자마자 창공으로 날아올랐겠지요.”


최근 설우 스님이 펴낸 ‘행복한 금강경 이야기’의 일부분이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을 비유한 이 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다. 단언컨대 필자에게는 ‘법화경’에 등장하는 ‘사자 비유’보다 ‘독수리 비유’가 더 확연하게 다가왔다.


이 한 구절을 따라 창원 진불선원으로 향했다. ‘무명에 가려 해탈하지 못하고 있을 뿐(無明覆故 不得解脫)’이라 했는데 무명을 어떻게 걷어낼 것인가? 누구든 창공을 나는 위풍당당한 독수리가 되고 싶지 땅위만 평생 걸어 다니는 닭이 되고 싶진 않을 터. 설우 스님이라면 ‘묘책’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조계종 승가청규위원장인 동시에 승가고시위원인 설우 스님은 조계종 ‘간화지침서’ 편찬을 이끈 수좌로서 승가에서는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법인정사가 있는 청주와 진불선원이 있는 창원 지역 외의 일반 재가불자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다. 전국 사찰의 법석에서 법문하기 보다는 법인, 진불선원에 주석하며 재가불자 지도에 진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원에 자리한 진불선원 전경.

 


설우 스님의 출가인연은 참 독특하다. 은산철벽을 깨 대자유인이 되겠다? 아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는 더더욱 아니고, 사춘기 시절의 방황 끝에 찾은 산문도 아니다.


설우 스님은 불심 돈독한 가정의 7남매 중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평소 작지만 큰 바람이 하나 있었는데 다름 아닌 7남매 모두를 승가에 귀의시키고 싶다는 것. 하지만 인연은 그리 닿지 않아 누구도 출가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 본 설우 스님이 ‘내가 출가 해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며 고등학교 졸업 직후 출가를 단행했다.


설우 스님의 모친은 대원정(大圓淨)보살. 당대 큰스님을 두루 모셨던 모친은 승가에서도 불심 깊은 보살로 정평이 나 있었다. 대원정 보살이 모신 대표 선지식 한 분 꼽으라면 단연 효봉 스님이다. 상주 원적사를 찾아가 원명 스님을 찾아뵙고 ‘상좌인 설우 스님을 곧바로 선원으로 보내 달라’ 청한 것도 모친 대원정 보살이었다고 한다.


설우 스님이 내는 차 한 잔 음미하며 출가인연이 남다르다 하자 스님은 만면에 웃음을 보였다. 적어도 설우 스님에게 모친은 자신의 ‘신장’이었다며 일화 한 토막을 전했다. 성주 대흥사와의 인연과 은사 동명 스님의 ‘언명’이 있어 잠깐 주지 소임을 보려한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택시 한 대가 대흥사 일주문 앞에 섰다. 모친이 내렸다. 택시는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꾸중 듣겠구나!’ 하는 직감이 왔다. 마음 단단히 먹었다.


‘스님, 여기 왜 계십니까?’ ‘청소년 포교 하려 합니다.’ ‘스님 인생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누구 인생길을 열어준단 말입니까?’ 뭔가 ‘쿵’ 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완성된 경지서 교화하자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 나누며 함께 수행하고자 합니다.’ ‘말만 잘하는 수도승 되지 마세요!’ 더 이상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그 다음 날, 설우 스님은 걸망 매고 선원으로 향했다.


대원정 보살의 불심과 선기가 한껏 느껴진다. 선원에 걸린 선우 스님의 친필이 힘 있어 보였다. 스님은 또 한 번 미소를 보인다.


“토굴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붓글씨에 관심 있어 나름 연습을 좀 한곤 했습니다. 어느 날 보살님이 이 광경을 보시고는 한 마디 해요. ‘스님, 붓글씨 왜 씁니까?’ ‘신도님 오실 때 부처님 말씀 써 드리면 좋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스님 찾아오는 건 마음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거 아닙니까? 붓글씨는 세인들이 더 잘 씁니다!’ 더 할 말이 없지요.”

 

 

▲진불선원은 선교겸수를 지향한다.

 


진불선원을 연 첫 달에 100여명의 신도가 몰려 왔다. 두 달째에는 200명, 3개월 만에 신도는 300여명으로 늘었다. 진불선원이 자리한 위치가 좋아서일까? 아니다. 지금의 진불선원은 최초의 진불선원에서 이전한 것이다.


설우 스님이 처음 선원을 열었을 당시의 건물에는 노래방과 식당이 있었는데, 강의 중에도 고기 굽는 냄새, 개고기 삶는 냄새에 꽤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노래방에서 울려 나오는 소음 또한 새벽까지 이어졌으니 잠 한 번 제대로 청하기 어려웠을 터. 그럼에도 스님은 강의와 참선지도를 멈추지 않았다.


“놀라운 건 신도님들의 열망이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새겨보고자 하는 그 마음 한 자락, 눈빛을 통해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설우 스님이 진불선원에서 선불교대학을 운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모든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선문에 들라’하지 않던가. 스님은 ‘정견’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라 단언한다.


“정법, 정견을 모르고 공부하면 알음알이로 인해 고통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능엄경’에서는 그런 공부를 ‘지옥 가는 종자’라 했습니다. ‘상(相)’을 떨어트려야 하는데 오히려 더 큰 ‘상(相)’을 붙이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은 번뇌를 낳고 그 번뇌는 또 다른 고통을 불러옵니다. 그 고통,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임제 스님도 언급했습니다. ‘아직 거친 풀에 호미질도 안한 상태다.’ 거친 번뇌의 망초를 손보지도 못한 주제라는 겁니다.”

 

선어록에 담긴 부처님세계
제대로 간파해야 수행도움
연생연멸의 무상 체득하면
실상·실체 바로 알아 ‘행복’


수행한다 ‘상’ 일어난 순간
마음 변화 없어 고통 뿐
번뇌는 없애는 게 아니라
집착 않고 다스리는 것


설우 스님은 중국 우두법융 선사 일화를 꺼냈다. 법융 선사가 수행하는 자리 옆에는 날짐승들이 꽃을 물어다 놓고 네 발 달린 짐승들이 과일을 물어왔다고 한다. 밤이 되면 선사 몸에서는 빛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도신 선사가 법융 선사에게 옷 한 벌을 주니, 법융 선사가 말했다.


‘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내 옷을 평생 입어도 떨구지 못하니 이런 조작으로 만든 옷은 입을 필요 없습니다.’ 도신 선사가 묻는다. ‘부모가 그 옷을 주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는가?’ 이에 꽉 막혀버린 법융 선사는 도신 스님이게 법문을 청했다.


이후 법융 선사가 수행하는 자리 곁에는 꽃도, 과일도 없었다. 빛 또한 사라졌다. 법융 선사는 도신 스님 머무르는 쪽을 향해 절을 올렸다. ‘은혜가 너무도 큽니다.’


“법융 선사도 수행한다는 ‘상(相)’을 일으켰던 겁니다. 상을 일으키니 에너지가 발산되고 그 에너지를 좇아서 짐승들이 따르고 빛이 났던 겁니다. 혹자는 이것도 대단한 경지에 있기에 가능하다 찬탄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이게 정법은 아니라는 겁니다. 도신 스님이 법융 선사에게 무엇을 설했겠습니까? 정법안장입니다.”


수행한다는 상은 또 다시 상을 만들어 궁극에는 자아도취나 아집이라는 사슬에 얽매인다는 사실을 설우 스님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설산동자가 몸을 던져 법을 구한 연유가 무엇입니까? 정견을 세우고자 했던 겁니다. 법에 대한 견해가 바로 서야 발심할 수 있고, 그런 발심이라야 퇴전하지 않습니다. ‘좋다는 데 한 번 해볼까?’는 것은 발심이 아니고 관심이고 흥미일 뿐입니다.”

 

 

▲설우 스님의 설법을 듣는 진불선원 불자들.

 


선불교대학에서는 선어록반이 꽤 인기 있다. ‘대승기신론’과 ‘육조단경’ 등을 거쳐 현재 ‘서장’을 강의 중인 지금도 250여명의 재가불자가 운집해 있다. 어록반은 졸업이라는 게 없다. 평생 간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또 든다. ‘수행하는 사람은 어록을 보지 말라’하지 않았던가?


“맞습니다. 선어록을 파헤쳐 이런저런 논리로 꿰맞춰가다 나도 ‘알았다’하면 착각도인이 되는 겁니다. 선지식들은 이 점을 염려했던 겁니다. 하지만 선어록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화두 드는 이유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교리든, 선리든 교학이 부처님 마음으로 향하는 로드맵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설우 스님은 조사선과 화두선의 진면목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알아야 한다고 일렀다.


“어떤 스님이 운문 스님에게 여쭈었습니다. ‘부처가 나온 것이 어디입니까?’ ‘동산(東山)이 물 위를 걸어간다.’ 운문 스님은 부처의 세계를 바로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서 끝나는 겁니다. 이게 조사선입니다. 여기서 깨닫지 못하고 ‘왜 동산이 물 위를 걸어간다 했을까?’하는 의심을 가져 수행에 임하면 간화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선지식들이 모두 부처님 세계를 보여줬다는 사실입니다. 분별망상이 떨어진 자리, 양극단을 여읜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님 세계입니다.”


부처의 세계를 간파하라는 뜻이다. 문자, 말에 현혹되지 말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스님은 무명 걷어낸다고 수행한다 하지만 정견이 없으면 이 또한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고 한다.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자꾸 없애려고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아는 머리불교 수준의 알음알이를 불법인 줄 잘못 알고 집착하다 보면 얻는 건 법에 대한 아만, 법상 뿐입니다. 둘 마음의 변화는 없어 늘 번뇌와 괴로움에 잠 못 이룹니다. 연기중도에 대한 지견이 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번뇌망상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걸까?


“번뇌 하나가 일어나도 거기에 집착 않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번뇌는 우리의 업식에서 오는 것일 뿐입니다. 밤길에 놓인 새끼줄 보고 뱀이라 놀란 적 있지 않습니까? 그 새끼줄이 언제 단 한번이라도 뱀인 적 있습니까? 이 또한 업식에서 온 겁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고 놀라지 않지요? 비켜섰을 때 거울에서 내 모습이 없어졌다 해서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실상이 아니요,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기법을 알면 세상의 실상을 바로 보고 실체가 없는 줄 알게 됩니다. 연생연멸이고 찰나생 찰나멸의 변화 즉 무상만 있을 뿐입니다.”


무명을 걷어낸다는 것. 그건 무명이 어디서 어떻게 온 건인 줄 아는 것부터 시작된다. 다만 바르게 알아야 한다. 어쩌면 수행은 그 다음인지도 모른다. 전국 제방선원에서 35안거 성만한 설우 스님의 일갈은 ‘깨달음은 정견에서 싹 튼다’는 것이다. 설우 스님의 일언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견의 핵심은 ‘나도 불성이 있다’는 것이고, 신심의 핵심은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닭인지 독수리인지 모르겠다면 진불선원으로 행해보라 권하고 싶다. 확연하게 트일 것이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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