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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와 불교

시대 경책하던 글들 남긴 채
‘별들의 고향’으로 되돌아가
가톨릭 신자면서도 불교 사랑
경허 스님 삶 조명으로 ‘반향’

 

소설가 최인호. 그는 ‘별들의 고향’을 비롯해 무수한 히트작을 냈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시대와 역사, 사람들의 삶을 함께 아울렀다. 암울했던 유신시절 소설을 통해 억눌렸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했고 옥죄던 서슬이 풀리자 과거의 위대한 역사를 불러내 웅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틈틈이 시대를 앞서간 초인들을 불러내 우리의 삶에 맑은 달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그런 그가 9월25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68세. 2008년 침샘 부근에 발병한 암으로 투병을 하다 끝내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그는 항암치료로 손톱과 발톱이 모두 빠진 상태에서도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고무골무를 손톱 빠진 손가락에 끼우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조각을 씹으며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불태웠다. 그래서 사람들을 그를 ‘영원한 청년작가’라고 상찬했다.


불교계는 특히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임종 직전까지도 기도와 묵상으로 조용히 죽음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불교를 사랑했던 인물이다. 1993년 경허 스님의 삶을 소설로 구성한 대하소설 ‘길 없는 길’을 펴내 세간에 선불교 신드롬을 불러왔다. 한 대학교수가 아버지의 유품 중에서 경허 스님의 물건을 발견하고 경허 스님의 행적을 좇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150만부가 넘게 팔리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행의 극한을 향하는 치열함 속에서 마침내 자유를 얻었던 경허 스님을 통해 세파에 찌든 인생들에게 툭 터진 맑은 하늘을 선물했다. 어렵기만 하던 화두와 불교수행을 쉽고 아름답게 풀어내 ‘시대의 대장경’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무심코 손에 잡힌 경허 스님의 법문집을 읽던 중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無事猶成事)’이라는 선시구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때의 심정을 “심혼의 불이 당겨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길 없는 길’을 연재하는 동안 승복을 빌려 입고 도시의 밤거리를 활보하며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출가수행의 삶을 연모했다. 특히 법정 스님을 남달리 존경해, 스님의 입적 이후에도 스님이 다려주던 정겨운 녹차 맛을 잊지 못했다. 그는 올해 5월 경허 스님과 그의 제자인 수월, 혜월, 만공 스님의 삶을 다룬 불교소설 ‘할’을 펴냈다. 경허 스님 열반 100주기의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아랫물이 맑으면 윗물도 맑다는 진리를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가만히 열어보는 심정으로 밝혀 보았다.” 서문에 붙인 그의 말이다. 이 책은 공교롭게도 그의 유고작이 됐다. 그의 삶은 열린 종교인의 참 모습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비와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편을 가르는 시대에 그의 글은 온몸으로 내리치는 죽비였다. 가톨인 신자이면서도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게 불교의 가르침을 그려낼 수 있었는지, 가톨릭과 불교의 벽을 어떻게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는지 그의 걸림 없는 마음이 궁금하기만 하다.

 

▲김형규 부장

그는 떠났다. 천국으로 향했을 것이다. 생전에 밥 한번 먹자는 김수환 추기경의 부탁을 뿌리친 것을 못내 미안해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법정 스님과 종교를 초월해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다. 그는 피안의 세계에서 녹차 한잔을 마주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의 만남에 초대됐으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가 삶을 통해 보여준 참다운 종교인의 의미를 불자들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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