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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썩은 씨앗

기자명 법보신문

썩은 씨앗 뿌려 놓고
열매 바라면 도둑놈
분노·위선 습관 되면
마음은 연꽃 못 피워


우리가 집에 꽃을 심거나, 혹은 농사를 지을 때 중요한 것이 여럿 있겠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 가지 있다. 하나는 좋은 씨앗이며, 둘은 좋은 토양(흙), 셋은 적절한 수분이다. 이 가운데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씨앗일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꽃을 피우는 것이며,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토양이 있다고 해도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그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토양과 적절한 수분은 씨앗이 싹을 틔우는데 필요한 조건일 뿐, 그것들 자체가 결과물을 산출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토양과 적절한 수분을 공급했더라도 씨앗이 썩은 것이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비록 척박한 환경이라도 씨앗이 훌륭하면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썩은 씨앗이라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도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떤 씨앗을 뿌리는가가 중요하게 된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썩은 씨앗’이라는 비유가 나온다. 비유를 전하는 시의 내용은 이러하다. “분노(kodha)와 위선(makkha)을 중시하는, 이익(lābha)과 존경(sakkāra)을 중시하는 비구는 바른 가르침 안에서(saddhamme) 성장하지 못한다. 마치 썩은 씨앗이(pūtibījaṃ) 비옥한 밭에서 자라나지 못하듯이.”


바른 가르침, 즉 정법은 분노와 위선, 이익과 세간의 존경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분노와 위선을 버리고 세상의 이익과 존경을 버릴 때, 정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분노에 사로잡혀 살고, 거짓되게 선량한 체 하며, 세상의 온갖 이익을 탐하고 어울리지 않는 존경을 받고자 하는 이는 정법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들에게 정법을 알려주어도, ‘쇠귀에 경 읽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경전의 가르침은 부처님께서 출가제자인 비구들을 대상으로 하신 것이지만, 어디 스님들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재가자에게도 해당되는 가르침인 것이다.


분노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결과, 분노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경우이다. 위선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의도를 갖고 남을 속여서라도 잘 보이고자 치장하는 마음이 습관이 되면 위선을 떨게 된다. 그러면 사소한 이익을 탐하게 되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존경을 받고자 하는 마음도 아울러 갖게 된다. 이는 ‘파멸의 문’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삶 속에서 기능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삶은 분노와 위선에 사로잡혀서, 크고 작음을 불문하고 이익을 탐하고 쓸데없이 존경을 받으려고 안달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둘은 같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을 하여야 한다. 정법을 선택할지, 아니면 분노와 위선의 삶을 선택할지를 말이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든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며, 책임이다. 그 선택이 올바르면 좋은 씨앗이 뿌려지는 것이고, 그 선택이 바르지 못하면 썩은 씨앗이 뿌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 역시 내가 받아들이고, 향수(享受)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뿌린 대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필원 박사

썩은 씨앗을 뿌려놓고 좋은 과실을 얻으려는 마음은 도둑의 마음이며, 실현될 수 없는 헛된 환상에 사는 것과 같다. 내가 어떤 삶을 살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읽을 수 있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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