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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기울어진 마음

기자명 법보신문

삶이 고통스럽다면 마음 삐뚤어졌단 증거

몸 기울면 통증은 필연적
집착 하지 말라는 가르침
인연 원만하게 만드는 것
관계와 단절로 알면 오해

 

잘 아는 분이 말했다. “골반이 한쪽으로 돌아가 몸이 불편해졌습니다. 돌아간 쪽으로 저림 현상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몸을 반듯하게 하고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상태로 살아간다. 기울어진 상태로 오래 앉아 있으면 기운 쪽으로 골반이 돌아가게 되어있다. 기울어진 정도가 기울어진 시간에 비례해서 문제로 자각되는 것이다. 반대 방향으로 기울여서 좌우 대칭을 맞춰주면 가벼운 증상은 쉽게 해결된다. 몸이 기운 것은 몸이 통증으로 경고를 해 준다.


우리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한쪽으로 치우친 상태로 살아간다. 우리 마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한쪽으로 치우쳐있다. 평소 생활에서는 문제를 느끼지 못하지만 문제가 발견이 되도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몸에 문제가 발생하면 의사에게 물으면 되지만, 자신의 마음과 생활의 습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인정하기도 어렵다. 누적된 문제가 문제를 키워가면서 삶을 고단하게 한다. 이때는 고통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그들을 원망하게 되기도 한다. 인생은 마음이 기운 것을 통증으로 경고해 준다. 정행품 경문을 보자.


“몸을 바르게 하고 단정하게 앉을 때면, 중생들이 깨달음의 자리에 앉아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없기를 발원해야 한다.”


‘몸을 바르게 하고 단정하게 앉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몸 전체를 유연하게 유지해야 한다. 몸이 경직되어있으면 바르게 앉기도 어렵고 오래 지속하기도 어렵다. 억지로 바르고 단정하게 하면 실제로는 몸을 많이 긴장시켜 몸에 통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바르고 단정하게 앉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 들여서 몸을 전체적으로 유연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몸이 유연해지면 바르고 단정하게 앉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바르고 단정하게 앉는 것이 익숙하면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된다. 긴 시간 앉아서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니 인생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깨달음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수행자의 마음자세이니, 수행의 목표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이다. 앉을 때마다 깨달음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앉을 때마다 항상 ‘보리심’ 즉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발한다는 말이다. 보리심을 구성하는 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깨달음의 상태를 믿고 이해하며, 깨닫고자하는 마음을 늘 간절하게 유지한다.


둘째 깨달음의 상태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나아가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켜간다. 끊을 것은 끊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는다. 연습해서 익숙하게 해야 할 것은 익숙하게 연습한다. 이렇게 일체의 공덕을 닦고 모으는 일을, 깨달음을 이루는 그 순간까지 멈추거나 물러나지 않는다. 셋째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일체 중생을 도와서 그들이 모두 깨달음을 얻도록 한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일체의 중생들을 따뜻하게 도우려는 마음이 분명해야 한다. 이런 마음 이런 원력이 있어야, 깨닫고 난 후에 일체중생을 위하는 진정한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불교 수행의 궁극의 목표다. ‘화엄경’에서는 “일체중생이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건만, 망상과 집착 때문에 본래 가지고 있는 지혜와 덕상을 증득할 수 없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지혜와 덕상은 다른 말로 하면 불성이 된다. 우리 모두는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불성을 증득하여 부처님이 되고, 누군가는 엄연히 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리석은 중생노릇을 하고 있다. 우리는 본래 지혜와 덕상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더 얻을 필요는 없다. 다만 가지고 있는 망상이나 분별 집착을 내려놓아 더 이상 우리의 삶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우리의 불성이 현실적인 작용을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이 상태를 성불이라고 한다.


‘금강경’에서도 “일체의 집착을 모두 여의면 부처님이라 불리게 된다”고 한다. 집착하지 말라는 것은 사물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사물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관계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관계를 버리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모든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말은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고 일과 관계를 모두 원만하게 하자는 말이다. 이것은 매우 높은 경지다. 몸과 말과 마음의 업이 깨달음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미혹하지 않고, 몸과 말과 마음의 업이 올바르고 단정해서 삿되지 않으며, 몸과 말과 마음의 업이 깨끗해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경지다.

 

▲도암 스님

최종 목표를 이곳에 두고 같은 방향에서 우리는 현실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경직되어있으면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알아차리고 바로잡아야 한다. 몸도 마음도 유연해야 하고 건강해야 한다. 그 결과 우리의 삶과 우리의 관계가 건강하도록 해야 한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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