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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함께하는 도량, 낙산사에서 길을 묻다]3.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3.11.06 15:31
  • 수정 2013.12.26 12:55
  • 댓글 0

화마 속 꽃 핀 연꽃 도량은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

1. 이웃 복지가 미래다

2. 포교, 함께하는 이웃되기

3. 꿈이 이루어지는 홍련암
4. 불사는 희망 만들기
5. 이제 문화가 중심이다

백두대간 집어삼킨 화마
홍련암 앞에서 걸음 멈춰
관세음보살님 상주처이자
불 속에 핀 연꽃임을 입증

24시간·365일 정진으로
도량복원의 원동력 창출

“희망은 가까이에 있는 것
나 낮추고 이웃 바라보며
더불어 사는 마음 가져야”

 

 

▲ 홍련암은 푸른 바다 위에 핀 한 송이 붉은 연꽃이다. 백두대간을 집어 삼킨 화마조차 감히 범접하지 못한 홍련암은 그 누구라도 꿈을 품는다면 비록 불타는 사바에서도 그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세음보살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굳은 약속의 상징이다. 

 

 
 
2005년 양양에 산불이 일었다. 불길은 백두대간의 허리, 설악산 자락을 타고 동해로 치달았다. 수백, 수천의 나무가 불길에 스러지고 가옥이 불탔다. 천년고찰 낙산사도 한 입에 화마의 입 속으로 떨어졌다. 그러고도 부족했던가. 낙산사를 집어 삼킨 불길은 이제 바다를 삼키겠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동해를 향해 치달았다. 홍련암 턱밑까지 휘몰아쳤다.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이미 시커멓게 속을 태운 불자들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천년 넘게 이 땅 중생들의 귀의처가 되고 수많은 가피의 영험이 서린 홍련암을 우리세대에 이르러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누가 있어 저 불길을 막아설 것인가. 의지할 곳은 오직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뿐이었다. 자비의 감로수를 떨구어 홍련암을 지켜 달라 빌고 매달릴 뿐이었다. 그 간절한 마음과 기도가 관세음보살님께 닿았음일까. 불길이 걸음을 멈췄다. 범치 못했다. 홍련암은 불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화마 속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화중생련(火中生蓮. 불 속에 핀 연꽃)이구나.”

소설가 정찬주씨는 2005년 화재로 잿더미가 된 낙산사를 둘러보던 중 홍련암을 보고 이같이 말했다. 이 말은 본래 경허선사가 제자인 만공선사의 공부를 점검하고자 건넨 말이었지만 화마의 거친 불길도 감히 범하지 못한 홍련암의 굳건한 자태는 진흙 속에서도 티끌 하나 묻지 않고 꽃을 피운 연꽃 그대로였다. 경봉 선사는 후대의 일을 예견하신 것일까. 선사의 친필인 ‘홍련암’ 편액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화중생련’이라는 선사의 말씀과 함께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이곳에 머물고 있음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의 상주처인 낙산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굳은 발원이 되어 동해의 파도처럼 24시간 끊이지 않는 기도소리로 이어졌다.

화마의 큰 상처가 여전히 벌건 생채기를 드러내고 있던 11월, 낙산사의 복원을 발원하며 천일기도가 시작됐다.

 

24시간, 365일 끊이지 않는 기도정진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홍련암에서는 20여 명의 대중스님들과 40여 명에 달하는 기도동참대중들이 복원불사의 무사회향을 발원하며 기도했다.

‘믿음은 제근을 청정히 한다. 믿음은 힘이 견고하여 파괴치 못한다. 믿음은 능히 번뇌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버린다. 믿음은 능히 부처님의 공덕만을 지향하여 나아간다.’

‘화엄경’의 말씀처럼 시련은 더 큰 성취를 향한 관세음보살님의 약속임을 믿는 낙산사의 사부대중은 굳은 신심으로 복원불사를 진행하며 홍련암 주변도 말끔히 정비했다. 의상대에서 홍련암으로 이어지는 길을 푸근한 흙길로 단장하고 홍련암 입구의 콘크리트 포장을 걷어냈다. 그 자리에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돌계단이 놓였고 홍련암 앞의 낡은 콘크리트 난간도 새로 조성해 관음성지의 여법함을 되살렸다. 특히 홍련암으로 이어지는 길을 정비하면서 그 아래 절벽을 흉물스럽게 뒤덮고 있던 콘크리트 덮개를 말끔하게 제거하고 축대를 쌓았다. 자연 암반이 드러나자 푸른 바다를 연잎삼아 절벽 위에 피어난 한 송이 붉은 연꽃 같은 홍련암의 자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 번도 이곳을 떠나신 적 없었던 관세음보살님의 진신이 불 속에 핀 연꽃 홍련암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진신을 드러내심과 다름없었다. 그것은 불자들의 꿈을 이뤄주겠다는 약속이기도 했다.

 

 

▲ 푸른 바다를 굽어보고 계신 관세음보살님. 이곳이 관세음보살님의 상주처임을 말해주고 있다.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시는 곳, 홍련암은 어떤 곳인가.

1400여 년 전 의상 스님이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 이래 낙산사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관세음보살님의 상주처이자, 한국 제일의 관음성지로 손꼽혔다. 이곳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했다는 영험담은 한 둘이 아니다.

창건설화 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삼국유사’의 ‘낙산이대성’조에 실려 있는 창건설화를 살펴보면 이곳이 관세음보살님의 상주처임이 더욱 선명해진다.

‘예전에 의상법사가 당나라에서 공부한 뒤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대비진신(관세음보살)이 해변의 굴속에 계시기 때문에 낙산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 대개 서역에 보타낙가산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소백화라고 하고 백의대사(관세음보살)의 진신이 머무는 곳이기에 이를 빌려서 이름 지은 것이다. 의상은 엄숙하게 수행한 지 7일 만에 자신이 앉았던 좌구를 물 위에 띄웠더니 천룡팔부의 시종이 그를 굴속으로 인도하였다. 들어가서 (천룡팔부를) 침례하니 공중에서 수정염주 한 벌을 주기에 의상은 이를 받아서 물러 나왔다. 동해용이 또한 여의보주 한 벌을 주어 이것도 받아서 물러 나왔다. 다시 7일 동안 수행하여 드디어 (관세음보살의) 진용을 뵈었는데 말씀하시기를 ‘이 자리 위의 꼭대기에 대나무 한 쌍이 돋아날 것이니, 그곳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법사가 그 말을 듣고 굴에서 나오니 과연 땅에서 대나무가 솟아났다. 이에 금당을 짓고 흙으로 불상을 만들어 봉안하니, 그 원만한 모습과 아름다운 자질이 엄연히 하늘에서 난 듯했다. 대나무는 곧바로 없어졌으므로 바로 이곳에 관음보살께서 지내심을 알았다. 이로 인하여 그 절을 낙산사라 하였고 의상법사는 받은 구슬을 성전에 모셔두고 떠나갔다.’

 

 

▲ 홍련암 앞에 피어난 둥근 구름 한 조각이 의상 스님께서 받았다는 여의보주 같다.

 


‘낙산이대성’이란 낙산사에 왔던 두 명의 성인이라는 뜻이다. 한 명은 의상 스님, 나머지 한 명은 바로 원효 스님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며 의상 스님이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했다는 소식을 들은 원효 스님이 이곳을 찾아 소나무 아래서 파랑새를 만났다. 관세음보살님이 노파나 파랑새의 모습으로 원효 스님 앞에 모습을 나타냈으나 원효 스님께서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다고 하니 아마도 ‘의상 스님이 친견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금은 앞선 마음을 관세음보살님께서 간파하시고 원효 스님을 시험하신 것이 아닐까. 이후에도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상에 참배한 뒤 사리가 나눠지는 이적이 벌어졌다.

관세음보살님은 종종 파랑새로 비유되곤 했다. 파랑새는 유럽의 동화에서도 행복의 상징이다. 그러니 중생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이 파랑새로 현신하신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닐 듯하다. 어찌 됐든 파랑새로 현신하는 관세음보살님의 영험담은 의상 스님과 원효 스님을 거쳐 고려·조선시대까지도 계속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시대인 1197년 ‘병마사 유자량이 관음굴에 군향 배례하니 파랑새가 꽃을 물고와 머리에 떨어뜨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후대인들은 이 파랑새 또한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이라 칭했다. 조선시대에는 숙종이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인 파랑새를 주제로 시를 쓰기도 했다.

그 파랑새가 2010년 4월 홍련암에 출현했다. 화마가 낙산사를 덮친지 꼭 5년이 되던 해였고 2차 복원불사의 회향으로 조선시대 단아했던 도량의 모습을 되찾은 낙산사가 맞이하는 희망의 첫 봄이었다. 참배객들의 카메라에 포착된 이 새는 부리가 뾰족하고 등이 온통 파란색이었다. 이 파랑새의 출현에 많은 사람들은 홍련암의 영험담을 떠올리며 관세음보살님께서 변함없이 홍련암에 머물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 이후에도 파랑새는 참배객들 앞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믿음을 갖고 이곳을 찾는 이의 꿈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세음보살님의 약속처럼. 조선시대 편찬된 시문선집 ‘동문선’에는 낙산사를 노래한 한편의 시가 전한다.

“바다 벼랑 지극히 높은 곳, 그 가운데 낙가봉이 있구나. 큰 성인은 머물러도 머문 것 아니고, 넓은 문은 봉해도 봉한 것이 아니리. 명주(明珠)는 내가 욕심 내는 것 아니며, 파랑새는 이 사람이 만나는 것일세. 다만 원하노니, 큰 물결 위에서 친히 만월 같은 관음보살의 모습 뵈옵는 것.”

꿈은 품은 이의 것이다. 나의 꿈을 누구도 대신 품어줄 수 없고, 나의 꿈을 누구도 대신 이뤄줄 수 없다. 그러기에 누구나 꿈을 품고 그 꿈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홍련암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룰 것이라는 신심과 원력만 있다면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비록 세상이 번뇌와 괴로움으로 불타는 사바라 해도 그 불꽃 속에서 꽃을 피운 홍련암을 보면서 우리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현실이 아무리 고단하고 척박하더라도 사바의 불꽃 속에서 우리의 꿈도 한 송이 연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홍련암은 역사를 통해 그것을 보여주었고 그 역사는 또 다시 홍련암이라는 증인으로 우리곁에 변함없이 서 있다.

 

 

▲ 홍련암서 기도하는 불자들의 원력과 신심이 낙산사·홍련암 복원의 원동력이 됐다.

 


설악산 신흥사 조실 무산 오현 큰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정념 스님의 복원불사 백일기도 발원문이 진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들이 모시는 염주 하나의 관세음보살님, 저희들이 연송하는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님, 저희들의 묵언 속에 함께 하시는 관세음보살님의 미소가 희망이고 즐거움입니다. 자신을 놓아 버리고 관세음보살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기도의 공덕입니다. 많은 욕심도 버리고 잦은 분별도 놓아 버리고 타인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저희들의 기도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의 마음 나눔을 확인해 봅니다.”

시련과 좌절을 더 큰 희망과 꿈으로 꽃피워 낸 낙산사와 홍련암은 이곳이 진정 꿈이 이루어지는 도량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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