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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의 품격

기자명 법보신문

품격이란 언행, 사고방식 등으로 드러나는 사람의 성격을, 그 성격의 높고 낮은 정도를 뜻한다. 품격이나 품위가 있다함은 그 지위에 걸맞는 어떤 언행이나 태도, 사고방식 등을 한다는 말일 게다. 그러나 단지 그게 다는 아니다. 가령 상인이란 지위에 걸맞는 태도란 계산하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이지만, 이런 상인을 두고 품격이 있다거나 품위 있다고는 하지 않는다. 배고픈 이가 그에 걸맞게 걸신들린 듯 행동하는 것 또한 그렇다. 품위가 있다함은 오히려 상인인데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계산 없이 어떤 선행을 하는 경우에, 배가 고파도 껄떡대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행동할 때 사용한다. 그걸 보면, 품격이란 자신이 처한 지위나 조건을 넘어서 어떤 독자적인 가치를, 혹은 좀더 ‘고상하다’고 보이는 어떤 가치를 추구할 때 사용되는 말이라고 하겠다.

 

어느새 잊혀졌나 싶지만, 굳이 검찰총장이 아니어도, 결혼하지 않은 여인과의 사이에서 애를 낳아 몰래 기르는 것을 품격 있는 행동이라 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며 유전자 검사를 자청하는데, 그걸 확인도 하기 전에 무턱대로 비난하며 그걸 이유로 공직에서 ‘잘라내는’ 것이 품격 있는 행동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사실이 아니라면 문제가 된 여인을 왜 고소하지 않느냐며 다시 비난하던데,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자신을 흠모하던 여인의 사적인 행동을 고소부터 하고 보는 행동은 어떻게 보아도 찌질하고 비겁하다. 차라리 누명을 뒤집어쓰고 피해를 감수하는 한이 있어도 그 여인을 보호해주려는 태도가 훨씬 더 품격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비난과 오명, 피해를 감수하는 어떤 ‘넘어섬’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혼외자식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그렇다. 만약 바람을 피우고 혼외자식을 가졌지만 법적인 공정성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기 목을 걸고 수사를 하는 검사와, 가정적으론 모범적이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그런 검사가 있다면, 누가 더 품위 있는 이라고 해야 할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가장의 품위’가 아니라 ‘공직자의 품위’임을 안다면 답은 분명하다.

 

‘신발에 술을 부어 마셨다’는 이유로 공직자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면서, 권력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걸고 마땅히 해야할 수사를 하겠다던 이를 비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식이라면 룸살롱 가서 여자를 옆에 끼고 술을 먹는, 아마 그런 비난을 했던 분 역시 예외가 아니었을 그런 행위야말로 품위 없는 행위 아닐까? 신발로 술을 마시는 것이야 모여 앉아 술을 마시는 이들의 위생이 문제가 되고 끝나겠지만, 여자를 끼고 마시는 것은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한 대단히 편향적인 태도, 그래서 공직에 필요한 평등성의 감각을 의심하게 하는 문제가 아닌가?

 

정작 공직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건 신발로 술을 마시는 검사나 혼외자식이 있다는 소문에 시달리는 검찰총장이 아니라, 자신의 맡은 바 공직과 무관하게 특정 개인의 선거를 위해 일삼아 집단적으로 댓글을 다는 국정원 직원들, 정의를 세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실제론 자신의 안위를 위해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정의를 짓뭉개는 짓을 반복하는 검찰청 간부들,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공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대운하나 강의 개발사업을 위해 문화재의 수몰을 방치하거나 공모하는 문화재청 공무원 등이 아닐까?

 

▲이진경 교수

품격이나 품위란 단지 겉으로 보기 좋은 모양새를 뜻하지 않는다. 그런 거라면 얼굴표정마저 관리해야 하는 서비스직 사무원들이 훨씬 더 훌륭하다 할 것이다. 때로 거칠게 보이고 어쩌면 막무가내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정말 해야 할 것을 위해서 자신의 소중한 어떤 것을 걸고 주어진 어려움을 넘어설 줄 아는 태도야말로 품위 있는 것이다. 공직자로서의 품위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이진경 교수 solaris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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