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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대상의 우두머리

기자명 법보신문

상인 집단 이끄는 상주
‘화엄경’서 보살 비유
크겐 대통령 작겐 가장
연민·자비 없으면 폭정

 

고대 인도에서는 일찍이 상인 계급이 성장하여, 인도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들 상인은 인도를 넘어 중앙아시아, 유럽,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와 무역을 하였다. 다양한 무역로 가운데 동아시아와 지중해를 이어주는 무역로를 실크로드라고 한다. 이 실크로드를 따라 수많은 인도의 상인들이 물품과 문명을 다른 나라에 날라 주었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불교의 전파였다. 특히 중앙아시아 제국과 중국으로 대승불교가 전해지는 데는 이들 상인들의 공이 적지 않다.


이들 상인들의 무리를 대상(隊商, caravan)이라고 하는데, 사막과 같이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험난한 지역을 여행할 때는 곳곳에 도적들이 출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혼자 혹은 소규모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들 상인들의 집단을 이끄는 인물을 상주(商主)라고 한다. 상주, 곧 대상의 우두머리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력은 물론이거니와 산재해 있는 위험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상인들을 무사히 목적지로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혜로워야 했다.


‘화엄경’ 59권에서는 보살을 대상의 우두머리에 비유한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보살은 대상의 우두머리가 되어, 모든 군생(群生)들을 두루 살피어 보고, 그들이 죽고 사는 광야와 험악한 번뇌가 있는 곳에 머물면서, 마귀와 도적에 붙잡혀 어리석고 눈이 어두워 바른 길을 잃은 그들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어, 두려움 없는 성에 들어가게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상의 우두머리에 비유된 보살은 ‘연민심’을 지니고 있으며, ‘용기’와 ‘지혜’를 갖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뭇 생명들을 두루 살피어 보고, 그들이 태어나고 죽는 험악한 세상에 머문다는 것은 ‘연민’ 즉 ‘자비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마귀와 도적에 붙잡힌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바른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덕목은 모든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내용이다. 대상의 우두머리는 오늘날 표현으로 하면 기업 사장이나 회장이 될 것이며, 국가로 비유하자면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될 것이다. 작게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될 것이다. 이들 지도자들에게 ‘연민’의 마음이 없으면 폭정을 일삼게 된다. ‘나만 믿고 따르라’는 것은 특별한 경우에 정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경우에 무조건 자신을 따를 것을 요구하게 되면 독재와 폭정이 된다.


가족을 연민하는 마음, 자신의 회사에 속한 사람들을 연민하는 마음, 국민들을 연민하는 마음이 없으면 ‘강력한 지도력’은 말이 좋아 지도력이지 사실은 폭력이 된다.


보살은 어떠한 경우에도 쉬운 길을 찾지 않는다. 오로지 바른 길만을 찾는다. 그것이 비록 지난한 일이라 할지라도 편법을 쓰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억압하지 않고, 오로지 연민의 마음으로 지혜롭게 사람들을 이끈다. 그러기에 보살인 것이다.

 

▲이필원 박사

우리는 말로만 관용을 말하고, 말로만 타협을 말하며, 말로만 공존을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살은 행동으로 관용을 보여주고, 행동으로 지혜로운 타협을 이끌어내며, 행동으로 공존의 모범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단 하나의 목적만이 있을 뿐이다. ‘저 고통에 빠진 생명들을 두려움 없는 곳으로, 안락한 곳으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오늘날 보살의 연민심과 지혜가 새삼 필요한 것은 지금 세상이 너무나도 거칠고 위험한 사막과 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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