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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과 비움의 조화로 바라본 사찰 건축

기자명 법보신문
  • 불서
  • 입력 2013.11.27 10:43
  • 댓글 0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2’ / 김봉렬 지음·관조 스님 사진 / 컬처그라퍼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2’

절집을 일러 채움과 비움이 조화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허한 곳은 보완하고 필요 없는 군더더기는 덜어내며 자연과의 조화를 가장 중요시하는 옛 절집의 건축 정신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추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사찰 건축물에서 이런 조화로움을 찾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최대, 동양최대, 세계최대를 외치며 짓고 세운 건물과 불상에서 그런 덕목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덧없는 일이 됐다. 때문에 건축학을 배우고 가르쳐온 김봉렬 교수(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는 그 안타까움을 드러내 11년 전 중창불사라는 미명으로 종종 훼손됐던 전국 곳곳의 사찰들을 책임지는 스님들에게 건축적 가치를 깨닫게 하려는 목적으로 글을 썼다. 그때 글을 엮어 펴낸 책이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그래서 책에는 훼손되는 절집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했고, 계몽적 내용이 담겼으며 회유에 가까운 문체가 흘렀다. 그리고 그 마음을 함께 했던 이가 지금은 고인이 된 관조 스님이다. 스님은 김 교수의 글에 맞춰 직접 사진을 찍었다. 그때 스님은 김 교수에게 “다음에는 내 사진에 맞춰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었다.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2’는 첫 번째 책을 선보인 이후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던 관조 스님의 발길이 닿았던 사찰들을 김 교수가 둘러보며 그 감상을 글로 옮겼다. 이번에는 자기 고백에 가까운 형태다. “삶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지고 세상을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알기를 바라는 지식보다는 그 복잡다단한 세계를 꿰뚫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내면으로 침잠해 끝없는 자기 물음이 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래서 책은 사찰 건축을 대상으로 삼았음에도 보이는 것을 설명하거나 거기에 숨겨진 의미를 벗겨내 해석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대상들이 저자에게 던지는 물음들에 스스로 답을 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그 답이 틀리지 않았는지 끝없이 의심한다. 그래서 사유의 깊이와 문장의 솔직함을 엿볼 수 있다.


“선가의 관점에서 보면 건축이란 세우고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이다. 개심사 대웅전의 마당이 바로 그렇다. 개심사의 마당은 바라볼 수는 있지만 들어가기는 어렵다. 마치 마음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을 열기는 무척 어려운 것과 같이.”


“유적과 폐허는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태도이다. 유적은 남겨진 현재를 최대한 전승하여 미래의 유산으로 남기려 한다면, 폐허는 사라진 전성기 때를 유추하고 최초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과거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 면에서 충주 미륵대원은 유적지라기보다 폐사지라 불러야 마땅한 폐허이다.”

 

 

▲ 그리 넓지 않은 평편한 골짜기에 석탑 21기와 돌부처 80기가 여기 저기 놓여 있다. 이 유적들 사이에 어떤 숨은 질서가 있는 것일까. 화순 운주사를 놓고 숱한 가설들이 나왔지만 비밀은 밝혀도 비밀로 남을 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금강산 보덕암, 만폭동의 사암들까지 모두 21곳을 소개하고 있다. 사찰 건축에 대한 애정을 담았고, 건축학자로서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사찰에 담긴 문화적·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가며 우리 가람의 참다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덕분에 곳곳에서 “삼라만상이 본래 부처의 모습인데/ 한줄기 빛으로 담아 보이려 했다네/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말라/ 동서남북에 언제 바람이라도 일었더냐”는 임종게를 남긴 관조 스님의 자취도 새삼 느낄 수 있다.
비울수록 채워지고 채울수록 비워 내야 하는 어려우면서도 단순한 진리를 저자의 설명을 따라 사찰 건축을 바라보는 동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2만원.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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