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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선학원 설립

日강점기 전통 회복·청정승가 구현 중심지

1921년 11월30일 문 열어
일본 식민지불교 추진에 반발
한국불교 전통회복 염원하며
사부대중 십시일반으로 건립

 

 

 

 

1921년 11월30일 세간의 이목이 불교계로 쏠렸다. 일제가 한국불교의 식민지화를 차곡차곡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불교를 대표하는 수좌들이 조선총독부가 훤히 보이는 서울 종로 안국동에 선학원을 건립했기 때문이다.


선학원 건립은 조선불교계의 항일의식에서 비롯됐다. 일제는 1911년 사찰령을 공포하고 사찰의 재산과 인사권을 장악했다. 그런가하면 당시 한국불교계가 설립한 원종과 임제종을 폐지하고 30본산제를 시행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설립된 30본산은 자연 친일 성향을 띌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보니 한국불교는 차츰 왜색불교화가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수행전통이 훼손됐을 뿐 아니라 계율정신이 퇴색돼 스님들 사이에서 ‘대처식육’이 일반화됐고, 일제로부터 신임을 받은 본말사 주지들의 전횡으로 사찰운영에 있어서도 산중공의의 전통이 사라졌다.


그러자 만공, 남전, 도봉 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은 일제가 추진한 사찰령에 구속받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조선불교의 전통을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 만공 스님은 1921년 5월15일 서울 사간동 석왕사 포교당에서 “지금 조선불교는 완전히 총독부의 관할 밑에 들어가 조선 중들이 자꾸만 일본 중처럼 변질되고 있다”며 “이제 우리는 사찰령과는 관계가 없는, 순전히 조선 사람끼리만 운영하는 선방을 따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만공 스님의 이 같은 발언은 선학원 태동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석왕사 포교당에 모인 스님들은 즉석에서 개인 자금의 출연을 약속했고, 범어사 성월 스님은 인사동 포교당을 처분해 건립자금으로 지원했다. 또 남전, 도봉, 석두 스님을 비롯해 재가신도들이 각각 십시일반으로 2만7000원을 모금하고 그해 11월30일 마침내 선학원이 건립됐다.


선학원은 출범과 동시에 기존 교단운영과 달리 민주적인 방식으로 지도부를 선출했을 뿐 아니라 재정 집행에 있어서도 평의원들의 의결로 결정하는 등 합리적인 방식으로 운영됐다. 현재 불교계가 안고 있는 최대 숙원과제인 재정투명화와 합리적 인사제도가 1920년대 선학원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마땅한 재원 대책이 없었던 선학원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다. 사무실 운영조차 어렵게 되자 선학원은 직지사로 사무소를 이전했고 그마저도 어렵게 되자, 결국 1926년 5월1일 선학원의 문을 닫고 범어사 포교소로 전환됐다.


1931년 적음 스님이 이를 인수하면서 선학원은 다시 문을 열었다. 재건된 선학원은 대중포교와 선수행 보급 등을 통해 불교대중화를 추진했다. 특히 만공 스님을 비롯해 탄옹, 만해, 유엽, 남전 스님 등이 나서 대중들에게 참선과 교학을 지도했으며 불교잡지 ‘선원’을 발간해 한국불교의 전통을 널리 알려나갔다. 또 1931년 3월 ‘전국조선수좌대회’를 열어 청정 비구승 양성에 주력했다. 이런 노력은 선학원 출신의 비구승들이 1950~60년대 정화운동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선학원 내부에서는 1920년 재정적인 여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던 과거의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 마련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적지 않았다. 이로 인해 만공 스님 등 9명의 수좌들은 수좌대회를 열어 선우공제회를 재단법인 선리참구원으로 전환하기로 발기하고, 수덕사 정혜사 선원 등 5개 선원을 그 재원으로 기부했다. 재정적 안정을 찾은 선학원은 이후부터 한국불교 부흥과 선 전통 회복을 위해 앞장섰다. 특히 선학원은 한국불교의 청정 승풍을 진작하고 전통계맥 정비를 위해 1941년 2월 유교법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지방 선원에서 수행하는 납자들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해 수행기록인 방함록을 처음으로 작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선학원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의 기간을 거치며 한국불교의 전통 계승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스님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킨 성지와 같은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선학원은 자신들의 재산권 보호에만 급급해 사실상 조계종과의 결별을 시도하면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선학원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스님들은 선학원이 조선불교를 바로 세우겠다는 스님들과 불자들의 원력으로 십시일반 보시금을 모으고 땅을 팔아 건립됐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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