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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자격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3.12.02 13:51
  • 수정 2013.12.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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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을 읽다보면 수행자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안으로도 부끄러움을 알고, 밖으로도 부끄러움을 알며…”라는 두 가지 표현이 서로 대조를 이루어 정형구로 곧잘 등장한다. “안으로도 부끄러움을 알고”란 참(慚, hiri), “밖으로도 부끄러움을 알며”란 괴(愧, ottappa)라는 역어를 풀어 표현한 것이다. 이 둘은 악행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느끼는 부끄러운 감정이라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참이 악행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면, 괴는 악행에 대한 두려움 내지 불안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참은 악행을 혐오하는 것이 특징으로, 자신이 악행을 짓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너무 부끄럽고 양심에 걸려서 악행을 피하는 것이다. 한편, 괴는 수치심이다. 마치 좋은 가문의 규수가 타인의 시선을 중시 여겨 수치스러운 일을 기피하듯이, 자신의 악행을 보고 쏟아질 타인의 비난 등이 두려워 악행으로부터 떠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참과 괴를 각각 “안으로도 부끄러움을 알고, 밖으로도 부끄러움을 알며…”라고 표현한다. 참과 괴는 각각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하며, 악행의 철저한 예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그런데 최근 한 교계신문을 통해 보도된 조계종 지도자급 승려의 범계행위 사건은 무참·무괴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승려가 야밤에 여성과 호텔로 들어가는가 하면, 야심한 시각에 술집에서 여성과 단 둘이서 술을 마시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어디 인적 드문 한적한 시골도 아닌 도심 한 가운데서, 그것도 불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인사동 주변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 정도면 ‘참심(慚心)’은커녕, 자신을 바라볼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조차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그야말로 무참·무괴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발각 후에도 참회보다는 구구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하니,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


그런데 무참·무괴는 수행자만이 경계해야 할 조건은 아니다. 불교문헌에서는 참과 괴, 다시 말해 내외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이 두 가지 감정이야말로 출·재가를 불문한 모든 불교도가 계를 지키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자신이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또한 다른 사람이 그것을 봄으로써 쏟아낼 비난 등에 대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닐 때 비로소 계는 생겨나고 또한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곧 악행을 거리끼거나 멈추게 하는 동기가 되어, 궁극적으로 몸과 말과 마음의 청정이라는 형태로 계는 결실을 맺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참괴심은 모든 불교도가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하는 근본적 요건이다.


계를 지키게 하는 기반으로서 모든 불교도에게 강조되는 것이 참괴심이라면, 출가자는 말할 것도 없이 더욱 더 그 실천에 힘써야 한다. 수행자로서 악행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참심은 말할 것도 없으며, 특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이를 두려워함으로써 악행을 피하고자 하는 ‘괴심(愧心)’의 회복에 지금보다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종종 이 괴심을 비굴함으로 잘못 이해하여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무괴를 걸림 없는 무애의 경지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위를 오히려 수행자로서 부끄럽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려는 불손한 사고방식일 뿐이다. 가사를 걸친 출가자는 이미 개인이 아닌 공인(公人)이다.

 

▲이자랑 교수

일반인들은 ‘한 명의 승려=승려들(혹은 승가)=불교’라는 공식으로 개개의 승려를 바라본다.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이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승가의 일원으로서 자격 상실이다. 참괴심의 회복을 위한 뼈저린 반성과 개선이 종단 차원에서나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청정승가의 실현은 그저 한낱 구호일 뿐 생명력을 갖고 꽃을 피울 수 없을 것이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이지랑 연구교수 jarang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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