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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대선사 열반 10주기를 맞는 회상

기자명 법보신문

사촌 형님이자 출가의 스승
인간일대사 큰 인연 맺고도
그림·글 현혹돼 기회 놓쳐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억념은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는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것으로의 현격한 갈래로 나누워지기 마련이다. 하루 길동무에서부터 이성간의 사랑 사업 학자 전문인 등 종국에는 영원성을 구하는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리라고 본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이순(耳順)의 중반을 넘긴 지금 까지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다 소중한 인연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만남들에는 생명이 다하는 날 까지도 잊지 못할 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워버리려 해도 번뇌로 남는 쓸모없는 업연(業緣)이 있다. 필자의 생애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은 ‘청화 큰스님’이다. 스님은 속연으로 나와 사촌간인 종형님이며 동시에 중학교 때 은사였다. 불연으로는 출가시절 도반으로 받아들이고 수계하여 법을 설한 계사 법사이기도 하다.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서 도반의 일원이 된 필자에게 경(經) 율(律) 론(論) 선(禪) 등과 행주좌와의 모든 가르침을 행으로 보여주신 큰 스승이었다. 잘못을 해도 꾸중 한 번 없는 그 어진 눈빛 앞에 자신이 부끄럽고, 스님의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을까하는 미안스러운 마음이 깊이 자리 잡혀 참회의 길이 되곤 했다. 대중들 보다 먼저 기상해 불상이 모셔진 탁자를 닦고, 예불이 끝나면 먼저 사원 뜨락과 마당과 길 청소를 단 한 번도 거른 날이 없는 분이다. 게다가 손수 빨래는 물론 방에 불 지피는 것 까지도 아래 사람에게 허락 하지 않는 철저한 수행자의 모든 훈습을 몸으로 보인 분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그날은 식사를 하지 않았던 중국 백장선사의 일상이 연상되리만큼 단호한 모범을 보였다. 금년 11월21일이 타세(他世)로 가신지 벌써 십주기인데 많이 보고 싶다.


불가의 가르침은 하루 길 동무가 되는 것도 전생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하물며 부부가 되거나 형제자매가 되고 부모자식이 되려면 얼마나 더한 인연이 있어야겠는가? 길동무에 비교될 수 없는 다생겁의 인연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가장 큰 인연은 사제의 연이라고 한다. 그 연유는 부모의 곁을 떠나 부모의 슬하서 살아온 시간의  3~4배나 되는 긴 인생의 시간을 살아가는데 등불이 되고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라는 뜻이 숨어있다. 이토록 사제가 되는 일이 지중하지만 어려서부터 성년이 되기까지 진정한 사제의 연은 말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다. 예컨대 같은 나무라도 목수를 만나면 재목에 따라 필요한 곳에 쓰임세가 결정 되지만, 땔나무꾼을 만나면 아무리 좋은 목재라도 땔감으로 밖에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스승을 잘 만나는데 따라 자신의 재목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간다. 해서 진정한 스승을 만나는 지중한 인연이 다생겁의 성숙 없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인식케 한다.


내게 청화 큰 스님과의 인연은, 부처님의 십대제자이자 25년여를 다문(多聞)한 사촌동생이었던 아란존자와도 같은 큰 행운을 만난 것인데, 인간일대사의 큰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 아픔이 있다. 그것은 지금의 내가 되어있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만들고 깎는 일에 현혹되어 실기한 일이다. 필자는 생사를 부셔 없애는 큰 욕심을 감당하지 못하고 작은 욕심에 매달려 보잘것없는 화가(畵家)라는 이름을 갖게 된 바보다.


▲강행원
잊지 못할 스승의 큰 덕은 우주의 대생명으로 개합코자 50여년을 일종식에 장좌불와로 일관한 수행력이다. 한국불교사의 큰 에너지가 아닐 수 없다. 후학들에게 이 무량한 본을 가르쳐 보인, 스님께서 선양(宣揚)한 ‘실상염불선’의 보리방편도(菩提方便道)가 인연되어진 대중들의 마음속에 도종인(道種印)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큰 스님의 열반 십주기를 맞는 필자의 회상은 다시 스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 큰 회환이 가슴깊이 남아 있다.

 

화가 강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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