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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무료치과진료소 운영 양현봉 의사

“부처님 만나니 ‘피부색 다른 환자’도 ‘한 명의 사람’ 됐죠”

화계사에 무료진료소 설치
이주노동자 3000여명 방문

 

우연한 계기로 불법 접해
정토회서 본격적 불교공부
거리모금·경전반 진행 등

 

 

▲2010년부터 매주 화계사에서 이주민노동자 무료치과진료를 펼치고 있는 양현봉 원장. 그는 일상이 곧 수행이라는 믿음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자신만의 작은 기적을 일궈냈다.

 

 

매주 토요일,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는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낯선 한국에서 때로는 차별로, 때로는 소외감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무료치과진료소가 문을 여는 것이다. 가벼운 충치치료에서 보철치료까지, 치과를 찾기 힘든 여건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낯설고 물설은 타국생활의 어려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보석 같은 공간이다. 진료를 마친 사람들은 언제나 밝은 미소로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봉사자들 역시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다. 2010년 문을 연 이래 무료치과진료소를 방문한 이주노동자는 3000여명. 한 주도 거르지 않는 꾸준함과 정성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화계사 무료치과진료소의 중심에는 양현봉(51, 희명) 강북다인치과 대표원장이 있다.


“나를 위한 수행이라고 생각하기에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죠. 물론 힘들기도 해요.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화계사로 향하기 전에는 ‘꼭 가야하는 것일까’ 고민도 하죠.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다보면 어느새 진료소로 들어서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해요. 그렇게 매주 수행하는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양 원장에게 매 순간은 수행과 다름이 아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 그가 마주하는 공간, 그가 바라보는 풍경들 모두 내면을 풍요롭게 만드는 화두가 돼준다. 화계사무료진료소 운영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정토회 거리모금을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모두 ‘일상이 곧 수행’이라는 그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그는 정토회 법륜 스님에게 배운 부처님 가르침을 마음에 담으며 일상의 순간들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가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한 것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서였다. 어릴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의 마음에 내재돼 있던 불연의 씨앗이 만개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어느 날이었다. 당시 그는 방송통신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국문학 공부는 오랜 시간 이어온 치과업무가 지루하게 느껴질 무렵, 삶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는 시를 공부하며 동호회에 가입하고 모임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모습인지를 깨닫게 된다.


동호회 사람들이 경험에서 끌어올린 가치관을 말할 때 그는 단지 감정을 전달하는 수준에 머무를 뿐이었다. 살아온 삶에 대해 반성했고 살아갈 삶에 대해 생각했다. 깊이에 대한 고민은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다. 오래전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불교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인연이 닿아 법보신문을 구독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접했다. 법문을 듣기 위해 이곳저곳 찾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매주 세 번씩 야간근무를 해야 하는 터라 불교대학에 다니는 것은 어려웠다.


그때 또 한 번의 인연이 찾아왔다. 지인으로부터 정토회와 법륜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그는 무작정 서초동 정토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법당을 둘러보며 그는 뜻밖의 편안함을 느꼈다. 여느 사찰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그의 눈에 불교대학 시간표가 들어왔다. 불교대학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진행되고 야간근무는 월·수·금요일에 있었다. 묘한 인연이었다.


불교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흐릿했던 것들이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호기심으로 청화 스님의 책을 읽어보긴 했지만 잘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했던 그였다. 그러나 법륜 스님의 강의를 들으면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앞에 드러나고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들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홀로 불교를 공부할 때 느꼈던 답답함 대신 부처님과 스님에 대한 감사함이 마음을 가득 메웠다.

 

 

▲지금까지 300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화계사 무료진료소를 방문했다.

 


불교대학에 이어 경전반까지 졸업한 그는 경전반 진행을 맡으며 신심을 다졌다. 정토회 거리모금에도 동참했다. 화계사 무료치과진료소를 만든 것도 정토회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나서부터다. 그는 북한 동포와 미얀마 난민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진행하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일을 해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장소는 법보신문과 공동으로 이주민돕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화계사로 정했다. 당시 주지였던 수경 스님의 협조로 진료를 시작했다. 몸이 힘들어질수록 마음은 단단해졌다. 불교를 접하고 그의 삶은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가로막고 있던 벽을 뛰어넘었다는 것은 가장 큰 기쁨입니다. 사람 앞에서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곤란했던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던 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고 정토회 거리모금에 동참하며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됐죠.”


거리모금에 참가했지만 ‘1000원이면 굶주린 북한 어린이가 두 끼를 먹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건넨다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하지만 ‘매 순간이 수행’이라는 화두를 부여잡고 거리에 나서자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도, 모임에 나가서도 걸림이 없었다. 일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환자들을 대할 때 말과 웃음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놀라운 변화였다.


“화계사에서, 거리모금에서 환자나 사람들을 대할 때, 내가 행복하면 그들도 행복해하고 내가 불행하면 그들도 불행해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은 다가옵니다.”


그는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을 정토회 불교대학 입학과 화계사 무료치과진료소 운영으로 설명했다. 특히 화계사 치과진료는 그의 삶에 변곡점이 됐다. ‘환자들’을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하기까지 그는 그곳에서 많은 인연을 거쳐야 했다. 치료를 미뤘던 환자가 결국 중풍으로 쓰러져 진료소를 찾지 못했던 일, 치아틀 제작에 착오가 생겨 이주민노동자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갔던 일 등의 경험은 세상을 올곧이 바라보고 스스로의 나태함을 경계하는 힘이 됐다.


이제 그는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이 그랬듯, 화계사 진료가 그랬듯, 그리고 거리모금이 그랬듯 또 다른 시작도 자신에게 변화를 가져다주리라 믿고 있다.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는 새로운 출발을 예감하며 설렘을 느끼고 있다. 물론 화계사 진료는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무료치과진료소가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어요. 지금까지는 몽골사람들이 주로 찾았지만 이제는 다양한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이 화계사를 방문하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저는 단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지만 치과치료가 절실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이주노동자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처럼 행복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진다. 매 순간을 수행이라 여겼기에 한 순간도 허투루 살 수 없었고, 한 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으려 노력하니 매 순간이 행복이었다. 그는 지금 그 어느 순간보다 행복하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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