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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돈화시 발해광장과 육정문 [끝]

기자명 법보신문

동아시아 역사 왜곡하는 중국 동북공정 대표 상징물

발해 건국 상징적 공간에
중국적 이미지로 탈바꿈한
20m 높이 거대한 문 건립


중국 고대신화 곳곳에 조각
발해의 중국사 편입 일환
일반인 교육에도 적극 반영

 

 

▲발해를 중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중국 측 입장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육정산문. 이 문에는 ‘장백산’ 지역의 선사인류인 안도인을 시작으로 중국고대 신화와 관련한 조각과 발해의 건국, 발해와 당과의 교류(조공, 책봉) 및 청나라 시조의 탄생 등과 관련된 기록을 의도적으로 연결시켜 조성했다.

 


“역사는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미래까지도.” 19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역사가 라마르틴의 말인데,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기도하다.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살고, 내일을 설계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역사의식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왜곡되어서는 안 되고, 왜곡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 고대사와 관련해 가장 심각하게 역사가 왜곡되고 있는 현장은 중국이다. 고구려와 발해를 비롯한 만주지역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해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였다. 동북공정사업은 2007년에 마무리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중국은 통화사범학원에 ‘고구려문화연구기지(高句麗文化硏究基地)’를, 연변대학에 ‘발해문화연구기지(渤海文化硏究基地)’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하여 애국교육기지(愛國敎育基地)로 활용하고 있으며, 1960년대와 1980년대에 이어 세 번째로 전국문물조사(2007~2011)를 실시했다. 아직 중국 각계에서는 정부주도의 동북공정을 민간주도형으로 전환시켜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연변지역의 고구려·발해 유적지를 조사하면서 중국정부의 불순한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현지의 역사교과서를 검토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중국영토 내에 있는 모든 민족은 ‘중화대가정(中華大家庭)’의 일원이며, 중국문명의 한 부분이라는 “통일된 다민족국가(統一的多民族國家)”의 이론적 틀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 동북지역의 중요 발해유적지 일대는 전에 없는 정비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다. 예컨대 흑룡강성 영안시 소재 상경용천부 유적지 입구에 있었던 대형 콘크리트 안내표지석[渤海上京龍泉附遺址]을 철거했고, 길림성 돈화시 소재 성산자산(동모산) 인근 성산자촌 마을 입구에 서 있던 낡은 홍보문[渤海建國第一城]도 철거했다.

 

아마 보다 더 새롭고 세련된 안내판과 문을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영안시 흥륭사와 발해박물관 일대도 대대적인 정비 사업이 진행 중이다. 유적지 주변 도로의 포장, 대형 주차장 완비, 도로가의 조경사업, 고속도로와의 접근성 확보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업들은 하나의 큰 목표 아래 상부의 어떤 지침에 의해서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의 신축과 재정비도 위에서 설명한 사업들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미 길림성박물관이 신축되었으며 흑룡강성박물관은 신축 조감도가 공포되어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대형 박물관은 물론이고 중요 발해 유적지에 중·소규모의 영안시 발해박물관, 돈화시박물관, 팔련성박물관, 서고성박물관, 용두산고분군박물관 등이 건립되었다.


중국의 발해유적 정비사업과 관련하여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발해역사를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발해역사의 관광자원화는 여러 유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발해의 마지막 수도인 상경성이 있던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 거리에는 조잡하지만 대조영 동상을 건립해 놓았다. 그리고 발해 건국지인 돈화지역에는 시내 중심가에 ‘발해광장’을 설치하였고, 발해 왕실의 고분군이 있는 육정산 주변에는 ‘육정산 여유풍경구’라는 관광지구를 만들어 놓았다.


돈화시 발해광장은 2008년 돈화시 중심지역에 조성되었으며, 총면적 7만5000㎡의 대지 위에 5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고 한다. 발해광장은 10개 구역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역사부조구역인데 발해 역대왕의 초상을 부조로 표현해 놓았다. 중앙입구를 통해 걸어 들어가 15명의 발해왕들의 거대한 초상 앞에 서면 마치 발해 종묘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부조상의 뒷면에는 발해의 역사와 문화, 종교 등을 새겨놓았는데,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의 역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이 발해의 중국화를 위해 총면적 7만5000㎡의 대지 위에 50억원 이상을 투자해 만든 발해광장.

 


발해왕들의 부조군 뒤편에는 최흔(崔)의 동상이 서있다. 최흔은 713년 당 현종이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하기 위해 보낸 사람이다. 당나라가 발해의 건국자인 대조영을 책봉하고 이후 발해가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있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한 조형물이라 생각된다. 특히, 동상의 위치가 15대 발해왕들의 부조 뒤 중앙부분에 위치하여 발해왕 전체를 총괄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또한 최흔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북경방향으로 추정되어 발해가 속한 곳이 현재 중국의 수도방향에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중국은 당 현종이 713년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하기 위해 보낸 최흔의 동상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발해광장 옆에 위치한 시민광장의 중심에는 거대한 조형물이 있다. ‘만중일심(万一心)’탑이라고 불리는 이 탑은 사람 ‘인(人)’자 세 개가 뭉쳐있는 모습으로 ‘세 사람이면 집단’임을 강조하여 단결을 강조하는 형상탑이다. 즉, 무리 중(衆)자의 간자체 모양인 ‘’이 사람 인(人)자 3개가 모여 있는 모습인데, 이것을 탑 모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각종 수치자료를 이용해 이 지역의 역사와 연결시키고 있다. 먼저 높이 20.08m는 2008년 광장건립 연대를 상징하고, 주변 127개의 계단은 2008년 당시 돈화현성 건립 127년을, 기반면적 698㎡는 698년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기거하여 진국을 건립하고 진국왕을 자처한 사실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부지면적 1881㎡는 1881년 청나라 정부가 돈화현을 설치한 연도임을 상징하고 있다.


한편, 이 탑 주위는 3개의 부조가 둘러싸고 있는데 내용은 돈화의 과거(대조영·발해), 현재,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과거는 대조영이 군사와 함께 발해를 건국한 상징부조를, 현재와 미래상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모습과 과학기술발전 모습으로 묘사하여 ‘발해역사⇒청의역사⇒중국 역사’로 연결되는 역사계승성을 강조하였다.

 

 

▲‘만중일탑’ 주위에는 3개의 부조가 둘러싸여 있으며, 여기엔‘발해역사→청의 역사→중국 역사’의 상징성을 담고 있다.

 


이 탑에 묘사된 설명문과 상징부조는 중국의 발해는 중국사라는 동북공정의 인식틀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중국적 역사계승인식을 표출하고 있는 대표적인 조형물이다.


발해를 중국사로 귀속시키기 위한 중국 측 입장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공간이 관광지구 입구에 위치한 가로 88m, 높이 19.5m의 거대한 문인 육정산문(六鼎山門)이다. 먼저 명칭에서 유의되는 점은 기왕의 육정산(六頂山)명칭을 육정산(六鼎山)으로 바꿔 표현한 것이다. 육정산은 발해고분이 밀집된 공간으로 발해건국의 상징적 공간이다. 그런데 이 산의 명칭을 여섯 봉우리산이란 의미에서 마치 중국의 은·주이래 제사의 상징인 정(鼎)이 나온 산인 것처럼 육정산(六鼎山)으로 달리 표현하여 중국적 이미지로 완전히 탈바꿈시켜 놓았다. 이 문에는 장백산지역의 선사인류인 안도인을 시작으로 중국고대 신화와 관련한 조각과 발해의 건국, 발해와 당과의 교류(조공, 책봉) 및 청나라 시조의 탄생과 건국 등과 관련된 기록을 의도적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표시하였고, 이들 역사, 문화적 상황이 장백산일대에서 진행되었음 강조하는 거대 조각군상으로 제작되었다.


즉, 1호문은 중국의 천지창조 및 인간창조에 의해 이 지역에 문명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하였고, 2호문에서는 해동성국의 역사와 전설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구체적 내용은 발해건국과 문화가 아닌 발해가 당에 조공을 바친 사실과 발해왕자가 당나라에 가서 조공한 사실만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3호문에서는 지역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 지역 선사인류인 안도인(安圖人)을 장백산 최초의 주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이 지역에서는 “고안도인(古安圖人)、숙신인(肅愼人)、발해인(渤海人), 여진인(女眞人)”이 찬란한 역사를 이룩하였는데, 이들 문화가 장백산 만주족의 역사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안도인(선사인류)⇒중국고대신화⇒발해⇒청’으로 연결되는 인식을 재강조함으로서 발해역사의 성격을 왜곡시키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영산이자 이 지역의 상징인 백두산을 중국적 표현인 장백산으로 부각시켜 장백산문화라는 큰 틀 속에서 이들 역사와 문화를 모두 아우르려는 발상이다.

 

▲임석규 실장

현재 중국 동북지역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발해사의 대중화와 관광화 작업으로 중국인들은 발해의 역사가 한국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중국사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학문적으로 논의된 바 없이 소수의 선언적 주장만으로 박물관과 대중 교육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심각한 일이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noal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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