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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덕·대법선 [끝]

기자명 법보신문

1950년대 중반 첫 만남
신앙·학문 길로 이끌어
내겐 ‘관음보살’의 화신


불교정화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는 1956년의 일이다. 종로 대각사에서 대사상 강연회가 열린다는 동아일보의 광고를 보고 친구와 함께 간 적이 있다. 휴전 후 수복된 서울은 폐허 그 자체였다. 사르트르, 키에르케고르, 까뮈 등의 실존주의 철학이 일세를 풍미하며 많은 지식인들이 고뇌할 때였다. 분단의 아픔을 전쟁을 통해 뼈아프게 느낀 젊은이들이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새로운 민족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하여 기획된 강연회로서 대법선 보살이 그 주최후원자였다.


대법선 보살의 부군인 황산덕 고려대 교수는 강연회 연사 중의 한분이다. 실존철학 강의를 황산덕 선생과 안병욱 선생 두 분이 하였는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명제를 가지고 실존적인 존재로서의 분석을 너무나 쉽게 설명해 주셨다. 당시 서울 인구가 180만 명이었는데 이 강연회에는 연일 200명 이상이 모여들었다. 이 강연이 끝난 후에는 신소천 스님이 ‘금강경’ 강의를 정기적으로 이어갔다. 청강생들이 모여 ‘대각회’(후에 원각회로 개명)라는 모임을 결성하였는데 광덕 스님이 회장이고 대법선 보살이 부회장이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각회(후에 원각회로 개명) 회원이 되었다.


황산덕 교수는 외조부가 평안도 어느 교회 목사였기 때문에 보수적인 기독교 교육을 받았는데, 어느 날 ‘우리 조부, 증조부, 그리고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모두가 지옥 갔단 말인가?’ 하고 생각이 미치자 불신감이 솟아났다고 했다. 성장하여 6·25의 포화 속에서 동대문에 떨어지던 폭탄이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고 포물선을 그리며 영등포쯤 거리에 떨어진 것을 보면서 비행사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절대적 법이라는 것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아마도 불교의 ‘수처작주(隨處作主)’의 경지를 터득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법선 보살은 사랑하던 아들을 잃고 불교에 귀의하여 효봉 스님으로부터 대법선(大法船)이란 법명을 받고 수복한 후에 이른바 불교정화운동에 음양으로 참여한 대 보살이다. 나에게는 ‘법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보살이다. 그 줄기차고 철저한 신앙의 힘은 누구도 추종하기 어려운 현대 한국불교의 드문 거목이다.


대각회 운동은 분단된 조국의 운명을 이끌어갈 인재양성이 목적인 대원력 사업이었다. 4·19와 5·16을 겪으면서 지리멸렬하게 되었지만 그 꿈은 원대하였다. 이때 나는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전공하고 ‘재가불교연구’라는 석사학위를 취득하여 진리탐구를 쉬지 않았다. 이 두 분 댁에는 늘 많은 젊은 구도자들이 들끓었는데 유명한 법정 스님, 일초 스님 등 다 여기서 가끔 얼굴을 익혔다. 지금은 복개된 자동차길이지만, 큰 도랑길의 안암동 개운사의 대원암 뒤에 있는 보타사라는 암자에서 불교청년회 주관의 강의가 있었다. 유럽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 된 불교학자의 강의를 듣기 위해 대법선 보살과 나는 여기에 가서 처음으로 젊은 학자 이기영 박사를 만났다. 학문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에게 유럽의 새로운 학문연구 방법론을 익힐 것을 권하며 대학원 진학을 추천해주셨다.

 

유교적 가정에서 엄격하게 자라며 자상한 사랑의 표현을 느껴보지 못한 나에게 대법선 보살님과 황산덕 보살님은 불법의 자비 문중에 나를 이끌어 주신 분들이다. 일요일 서울근교 산행은 도반들의 즐거운 생활이었다.

 

▲리영자
영하 16도의 눈 덮인 도봉산을 겁 없이 오르도록 격려해 주신 두 보살님. 5~6월 산목련 아름답게 핀 골짜기를 따라 정상에 먼저 오르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야호”를 불러대도 모두가 즐겁게 힘찬 격려를 아끼지 않던 그 모습.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던 나를 끝까지 보듬어 주고 학문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주신 두 분은 분명 나에게는 관세음보살님의 화신들이셨다.

 

리영자 한국불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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