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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존 관리 주체는

기자명 이수정

국가가 곧 민족성·문화 형성 주도한 절터 지킴이

영국 문화재청은 문화재 관련
종류·연령별 책자 제작 배포

종단도 비지정절터 보존 참여
연차적 필요 예산·인력 확보

사부대중도 절터 중요성 인식
그 속에 담긴 정신·역사 이해

 

 

 

▲부여의 정림사지는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습장소로 자주 활용되고 있으나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절터는 말이 없다. 다만 그 속에 담긴 흔적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화려한 모습이 아닌 잔잔한 흔적으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며 자신의 소중함을 알아주는 이의 손길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그런 절터에 그간 관심어린 눈길을 보내고, 보존의 손길을 내민 이는 많았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해왔고, 또 앞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할 주체는 국가와 종단이다. 그리고 지나는 길에 한 번씩 들러 절터를 관조적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사부대중들도 이제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절터는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종단, 사부대중의 이들 ‘삼형제’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주어야 절터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존하고, 현재라는 시대에 의미 있는 공간으로 우리가 품을 수 있을까.

우선 그 맏형인 국가가 해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들이 절터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절터에 대한 보존은 바로 국민의 관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절터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마치 당연하고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일부는 이미 잊혀진 절터를 다시 우리의 생각과 마음 속으로 불러오려면 오랜 시간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가적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

절터는 말이 없기 때문에 문화재청은 현재 남아있는 절터의 가치와 중요성을 명확하게 규명하여,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 전달해 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터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다.

과거에 사라진 절터의 현재적 의미는 바로 역사라는 시간적 연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대대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기록하고,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배우고 전하는 이유는 과거의 그 모든 활동들이 현재의 삶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절터는 아주 오래전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민족성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우리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절터의 가치와 중요성을 전달하는 방식은 다양해야 한다.

가령, 절터의 역사적 변천이나 의미를 간략히 서술한 리플렛을 발간하거나, 절터 답사프로그램이나 관련 활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이를 이미 실천에 옮긴 사례로서 영국의 문화재청에서는 일반국민들이 문화재의 종류별로 발달과정과 특징, 그리고 중요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자를 만들어 일반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또한 연령별로 차별화된 교육 자료를 만들어 교사와 학생들이 역사나 미술시간에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문화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마땅히 보존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또한 영국에서는 우리처럼 고고학적 유적지의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유자가 유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제대로 보존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안내서도 제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절터의 발굴과 조사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절터에 남아있는 유구의 형태별 특징이나 시대적 변천과정을 쉬운 말로 설명하고, 절터가 지닌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서술한 안내책자를 발간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또한 학생들이 수업이나 답사여행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발간하여 우리의 역사를 보다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러한 자료를 활용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교사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절터에 남아 있는 유구를 통해 사찰의 규모와 건물의 배치를 상상해 본다든지 하는 것은 책으로만 역사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학습의 효과를 높이게 될 것이다. 또한 절터를 이해하는 데에는 절터를 찾아 직접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절터 발굴 기간 중 일정기간동안 학생들을 발굴에 참여시키는 체험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거나 종단과 협력하여 전문가의 해설이 함께 하는 절터 답사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등 절터가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궁무진하다.

▲영국의 퍼니스 폐성당지를 역사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교사용 자료.
 
다음으로 종단은 맏형인 국가를 도와 보다 실질적인 역할을 맡아주어야 한다. 현재 남아있는 5000여 개의 절터 대부분이 비지정 문화재인데, 사실상 국가는 사적으로 지정된 극소수의 절터만 보존·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지정되지 않은 절터의 보존·관리는 종단이 맡아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종단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비지정 절터의 보존·관리·활용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우선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의 ‘사지조사사업’에서 나온 조사결과를 토대로 전국의 절터를 중요성이나 유구가 남아있는 정도, 활용가능성 등에 따라 유사한 절터끼리 몇 개의 군으로 분류하여야 한다. 그리고 분류된 군 별로 각각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보존·관리·활용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연차적으로 필요한 예산이나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에 따라 종단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고민하고, 국가, 지자체, 그리고 각종 민간단체와 협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지정 절터에 대한 보존관리를 종단에서 맡는 대신, 문화재청은 종단이 보존관리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전문가 지원이나 재정적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것이 맏형이 해야 할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절터 보존에 대한 당위성을 수립하는 등 큰 정책의 방향이나 기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국가가, 그리고 절터의 실질적인 보존관리방안을 수립·실행하는 등 보존관리를 위한 손발 역할은 종단이 맡음으로서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절터보존에 제일 늦게 참여한 일반 사부대중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사부대중이 절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많은 관심을 가져야만 절터에 생명력이 생긴다. 이를 위해서는 절터에 자주 들러, 그 속에 담긴 정신과 역사를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주의 감은사지나 황룡사지, 익산의 미륵사지나 부여의 정림사지 등과 같이 이미 널리 알려진 절터 말고도 자신의 주변에는 수많은 절터가 있을 것이다. 가까운 곳부터 먼저 찾아가 그 절터를 이해하게 되면 내 고장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절터에 가기 전에 그곳의 역사와 사연에 대해서 알고 가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에 홍수처럼 정보가 흐르고 있어서 절터에 대한 연혁이나 역사를 찾거나, 이미 발간된 책에서 관련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절터에 들러 그들이 잘 있는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귀 기울여 들어본다면 절터는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 함께 숨 쉬는 공간이 될 것이다.

또한 사부대중은 절터를 보존·관리·활용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이해집단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절터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이나 보존에 대한 생각을 가지는 데에 그쳤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공적 자산인 절터의 보존·관리·활용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이들 삼형제가 절터의 보존에 있어서 그 역할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삼형제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어야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삼형제의 역할은 각기 다르지만 서로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이 있다. 절터에 대한 일제조사나 비지정 절터에 대한 보존·관리·활용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므로 국가와 종단에서 절터 보존을 위해서는 자주 대화하고, 서로 필요한 부분을 협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절터 보존에 필요한 사항들을 함께 점검하고, 어려운 점에 대해서 같이 고민한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절터를 보존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5000여 곳의 절터는 오랜 기간 동안 우여곡절을 헤치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들이 감내해 준 세월과 고난을 생각한다면 국가와 종단, 그리고 사부대중이 해주어야 할 역할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우리의 선조들이 이 많은 불국토를 짓는데 들인 정성과 공덕을 생각하면, 우리가 맡은 역할을 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자, 후손을 위해 마땅히 다해야 할 우리의 의무이다.

 

▲이수정 박사
 
절터는 국가나 종단, 그리고 땅을 소유한 개인의 것이 아니다. 옛 어른들이 물려준 우리 모두의 유산이다. 절터를 더 이상 과거라는 지나간 시점에 고정되어 역사책 속에만 등장하는 장소가 아닌 현재의 삶 속으로 살려내야 한다.
 

이수정 박사 slee70@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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