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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포브지카계곡의 케와라캉

신성한 새 머무는 계곡, 소박한 사원서 희망이 자란다

세계적 멸종위기 희귀 동물인
검은목두루미 서식지로 유명


계곡의 자연환경 보호하기 위해
주민들 스스로 송전선 설치 포기
태양열 등 소규모 발전기로 대체


13세기 창건된 케와라캉 사원은
부탄 내 소수종파인 닝마파 소속
정부의 복원·운영 지원 없지만
이곳 고향인 젊은 스님 원력으로
느리지만 조금씩 복원되고 있어

 

 

▲포브지카계곡 안에 자리잡고 있는 케와라캉 사원은 넓은 계곡 한 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13세기 창건된 중심 법당은 낡고 작지만 주지 출팀 스님은 이 법당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며 사원을 복원할 계획이다.

 

 

히말라야의 고봉준령에 안겨 있는 부탄에는 높고 장엄한 산봉우리와 깊고 아름다운 계곡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 중 포브지카계곡은 부탄의 중심부에 있는 국립공원 블랙마운틴의 서편에 길게 펼쳐져 있는 U자형의 빙하계곡이다.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궁전’ 푸나카종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트롱사종으로 향하는 길에 포브지카계곡을 거쳐 가기로 했다.


포브지카계곡은 희귀 동물인 검은목두루미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기후가 온화하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어 야생사슴, 표범, 야생돼지 붉은여우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검은목두루미는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이다. 겨울철 우리나라의 철원평야 등에서 간혹 관찰되기도 하지만 이곳 포브지카계곡에는 매년 겨울 300여 마리가 찾아와 세계적인 검은목두루미 서식지로 손꼽히고 있다.
보통 수십 마리씩 무리를 이뤄 히말라야를 넘어오는 검은목두루미들은 10월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 2월말까지 이 계곡에서 겨울을 보낸다. 검은목두루미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기는 11월인데 이 새를 ‘하늘의 새’라며 신성히 여기는 부탄사람들은 11월에 맞춰 검은목두루미 축제를 열기도 한다. 그리고 2월말이 지나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 새들은 다시 히말라야를 넘어 고향인 티베트로 돌아간다. 이때 겨울을 보낸 계곡을 다시 한 번 둘러보기라도 하려는 듯 하늘을 천천히 한 바퀴 돌고난 후 북쪽으로 향한다고 한다. 높고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간혹 히말라야를 넘는데 실패한 두루미들이 다시 포브지카계곡으로 돌아와 며칠간 휴식을 취한 후 재도전을 한다니 비록 하늘길이라도 히말라야를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한가 보다.


“뭔가 특이한 점이 보이지 않나요?”


계곡에 들어서니 가이드 킨레이씨가 수수께끼를 내듯 질문을 던진다. 글쎄. 아직 여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계곡은 온통 초록빛이고 넓고 원만한 계곡을 따라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집들이 한가롭고 평온해 보이긴 하지만 특이한 점은 언뜻 눈에 띄질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정답이다. 눈에 띄지 않는 것. 전깃줄이다.


부탄은 국가의 가장 큰 수입원 가운데 하나가 수력발전을 통해 생산한 전기의 수출이다. 그러니 산간오지가 아니고서는 전기사정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 계곡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전깃줄을 찾을 수가 없다. 설명에 따르면 검은목두루미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송전선을 설치하는 대신 태양열이나 소규모 발전기 등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기로 주민들이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필요한 전기를 스스로 생산해서 사용하니 계곡을 가로지르는 전기선이나 산등성이에 떡 버티고 서있는 송전탑 등을 찾아볼 수 없는 것. 하지만 아무리 자체 발전을 한다 해도 전기사용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텐데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며 동물들과의 공존을 택한 그들의 지혜, 그리고 자비심이 부럽고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덕분에 포브지카계곡의 전망은 그야말로 맑고 깨끗하게 탁트인 자연 그대로의 장관을 연출한다. 그 속에 점점이 자리잡고 있는 작은 집들조차 그대로 포브지카계곡의 한 조각처럼 한가롭다.

 

 

▲케와라캉의 주지 출팀 스님에게는 이 사원을 여법한 도량으로 복원하는 것이 평생의 원력이다.

 


포브지카계곡은 트롱사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에서 벗어나 작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이나 오르내려야 만날 수 있다.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굳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따로 있다. 부탄에 들어선 이후 줄곧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종들을 만났다. 모두 눈길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동시에 하나의 의문이 계속됐다. 모든 사원들이 종처럼 크고 아름다우며 국가에서 재정을 지원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작고 평범한 사원의 살림살이와 그곳에서 행해지는 생생한 신행의 현장이 궁금했다. 결국 킨레이씨에서 부탁해 작고 평범한 부탄의 사원을 방문하기로 한 것. 그래서 선택한 곳이 이곳 포브지카계곡에 있는 사원 케와라캉이다.


케와라캉은 13세기 쿠엔켄 롱첸 랍잠파 스님에 의해 창건됐다. 그러나 스님의 사후 지금의 주지인 출팀 스님이 이곳을 찾아오기까지 사원은 돌보는 사람이 없이 버려져 있었다. 출팀 스님은 인근 마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이 버려진 사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출가 후 학승으로 공부하는 동안에도 줄곧 이 사원 복원에 대한 원력을 품고 있었던 스님은 졸업 후 자원해서 이곳 사원으로 오게 됐다. 그때가 2008년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겨우 지붕만 남은 법당 안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은 그래도 크게 훼손된 곳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법당은 온통 진흙 투성이었고 물 한 그릇 올릴 공양단도 없었지요. 허물어져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법당에서 혼자 잠을 청해야 했어요. 그래도 창건 당시 조성된 불상이 계신 것만으로도 크게 힘이 됐습니다. 불상을 보수하고 벽과 바닥을 수리한 후 조금씩 사원을 중창하고 있는 중입니다.”

 

 

▲스님들이 일행을 위해 축원을 하고 있다.

 


이곳 사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전무하다. 국가차원에서 불교를 지원하는 불교국가이긴 하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국가에서 인정하는 종파, 즉 드룩빠 까규파 소속 사원에 한정돼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오늘날 티베트 불교는 크게 4대 종파로 구성돼 있다. 그 가운데서 달라이라마가 이끌고 있는 겔룩파의 규모가 가장 크지만 부탄에서는 드룩빠 까규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드룩빠 까규파의 총본산인 티베트 랄룽사원 출신의 샤브드롱이 부탄을 통일한 이후 명실상부한 부탄 제1 종파로서의 위상을 견고히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닝마파나 겔룩파 등 소수의 기타 종파 소속 사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위상은 까규파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이곳 케와라캉도 본래 닝마파 소속의 사원이었다. 사원을 창건한 스님이 닝마파였고 지금도 법당 한쪽 벽에는 사원을 창건한 스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공식적으로 닝마파 사원임을 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 출팀 스님은 닝마파 스님이 창건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쿠엔켄 롱첸 랍잠파 스님은 포브지카계곡을 포함에 부탄 전역에 30여 개의 사원을 창건했는데 거의 다 폐허가 되었고 가장 먼저 세운 이 케와라캉이 그나마 온전하게 보존돼 있을 뿐이다.


“이 사원을 창건할 당시 악마들이 와서 방해를 했답니다. 낮에 사원을 세우면 밤에 악마들이 찾아와 부수는 일이 반복됐는데 그때 스님이 떼르참이라는 춤을 춰서 악마들을 조복시키고 사원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년 티베트력 10월이 되면 이곳 사원에서 떼르참을 추는 축제가 벌어집니다.”


사원 복원 비용은 모두 스님이 부담했다. 졸업 후 몇 년간 강원의 강사로 일했던 스님은 당시 모아두었던 월급 모두를 케와라캉 복원에 사용했다. 그리고 이곳에 어린 학승들을 위한 불교학교를 세웠다. 강의는 스님이 직접 맡았다. 강사 출신의 스님이 직접 강의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출가하고자 찾아온 동자승들이 21명에 달했다. 지금은 30여 명의 동자스님들이 이곳에서 기초 불교공부를 한다. 그 후에는 정식 교육을 받기 위해 인근에 있는 낀장 초울링 쉐드라로 보낸다. 쉐드라는 강원 같은 곳으로 교육 기간이 무려 9년이나 된다. 출팀 스님은 케와라캉에도 쉐드라를 세우고 싶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으니 언제 즈음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


“걱정하지 않아요. 좋은 스님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신도들의 기도 요청도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사원 복원도 더 빨라질 것입니다. 언젠가는 가능해지겠죠.”


요즘 스님은 부쩍 출타가 잦다. 집으로 찾아와 기도해주길 바라는 가정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님의 명망이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분에 요즘엔 두 명의 강사 스님이 함께 생활하고 있어 스님의 짐도 조금은 가벼워진 듯 하다.

 

 

▲배구 경기에 푹 빠진 케와라캉의 동자스님들.

 


아직도 갈 길이 먼 일행의 남은 여정이 무사하길 바라며 스님께 축원을 부탁했다. 출팀 스님을 비롯해 동자 스님들까지 모두 10여 명의 스님들이 한 시간 가량 경을 읽고 향을 피우며 축원을 해 주었다. 각각의 의식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성을 다해 축원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껴진다. 축원이 끝나고 법당을 나서니 사원 마당에선 벌써 동자스님들이 배구 경기를 벌이고 있다. 떠들썩한 동자스님의 함성 소리와 온 몸에 배어든 그윽한 티베트향 내음이 어우러진다. 기분 좋은 화창함과 희망이 포브지카 계곡에 가득하다.

 

포브지카계곡=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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