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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부는 커피열풍에 대한 단상

커피열풍이 거세다. 최근에는 믹스커피로 대변되는 인스턴트커피 시대를 넘어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먹는 ‘핸드드립 커피’가 유행이다. 대중화를 넘어 고급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7위의 원두 수입국이다. 올 한해만 1인당 484잔에 이르는 커피를 소비했다. 2000년 313잔에 비해 55%가 늘어난 가파른 상승세다.

세간의 커피열풍으로 불교계의 고민이 깊다. 커피열풍이 불교계에도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즐기는 스님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절 집안의 풍속도마저 바뀌고 있다. 스님들은 전통적으로 녹차를 즐겨마셨다. 그러나 최근 녹차 대신 커피를 즐기는 스님들이 크게 늘었다. 특히 원두커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증폭되는 것과 맞물려 스님들도 직접 사찰에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먹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여러 사찰에 커피전문점이 들어서고 복지관을 비롯해 사찰에서 운영하는 기관까지 커피관련 강좌를 열고 있다. 커피와 템플스테이를 접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찰이 있는가 하면 스님들이 집단적으로 바리스타 과정을 이수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세계7위 원두 수입국
시대 흐름에 차 문화도 엷어져
불가에서 차는 그 자체로 수행
커피열풍에 차 의미 퇴색 우려

그러나 사찰에 부는 커피열풍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커피에 밀려 점차 녹차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찰, 그것도 선원에서 녹차를 멀리하는 것을 스님들의 입맛이나 기호의 변화로 가볍게 치부할 수만은 없다. 불가에서 녹차는 기호식품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선종과의 관계는 각별하다. 참선을 통해 깨달음으로 향하는 선사들에게 녹차는 수행을 도와주는 보조 역할을 넘어 수행 그 자체였다. 옛 선사들의 수행의 향기가 스며있으며 그 자체로 깨달음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선사들은 선다일미(禪茶一味), 즉 선과 차는 한 가지 맛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화엄경’을 비롯한 다양한 경전에 차가 등장한다. 당송 시대에는 23명의 스님들이 27편에 이르는 차와 관련된 화두를 내놓기도 했다. 총림(叢林)이라는 선종만의 독특한 도량문화를 열었던 백장 스님은 청규를 통해 차에 대한 의식을 규정해 놓기도 했다. 말 그대로 차는 선종의 역사이며 문화였던 것이다. 제다방법이나 의식, 음용방식까지 모든 것이 선종의 발달과 함께 이뤄졌다. 이런 이유로 녹차의 맑은 향과 빛깔, 담박한 맛은 군더더기 없이 깨달음으로 향하는 선의 모습 그대로다. 사찰에서 차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커피의 탓으로만 돌릴 수만은 없다. 농약 파동을 거치며 녹차 대중화에 실패한데다 비싼 중국 보이차를 무분별하게 들여오면서 녹차에 담긴 수행의 향기는 이미 엷어진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찰에 부는 커피열풍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예단하기는 힘들다. 한때의 바람으로 그칠지, 수행에 커피가 융합된 새로운 수행문화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녹차가 단순히 기호식품의 의미를 뛰어넘어 있음을 감안하면 지금의 현상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녹차에 담긴 유구한 선종의 역사와 깨달음의 흔적들이 그대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그래서 아프다.

 
차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오랜 세월 수행자와 더불어 깨달음의 길을 걸어 온 도반이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선종의 위대한 역사였다. 사찰에 부는 커피바람이 세간의 커피열풍에 편승한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커피에 대한 관심이 불교의 세속화가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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