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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비구니 교육도량 공주 동학사승가대학

“부처님 가르침 뼈에 새겨 참 수행자 되리라”

한글화 시대에 역행일까. 아니었다. 살아 숨 쉬는 전통이었다. 공주 동학사(주지 유곡 스님)는 고집스러웠다. 한국 최초 비구니 교육도량다웠다. 동학사승가대학(학장 행오 스님)은 한문불전 원전 강독 전통을 지켜왔다. 그 고집은 오히려 빛났다. 현대식 교육은 줄기이자 이파리였다. 뿌리는 전통교육인 한문불전 원전 강독에 있었다. 그 고목에서는 출가수행자라는 꽃이 피었고 인천의 사표(師表)라는 열매가 자랐다.

 

▲공주 동학사승가대학은 한문불전 원전 강독의 전통을 지켜왔다. 고집은 오히려 빛났다. 인천의 사표이자 비구니 대강백들을 배출해왔다. 졸업을 앞둔 동학사승가대학 화엄반인 4학년 학인스님들 표정이 밝다. 동학사승가대학 고집이 피워낸 연꽃들이다.

 

 12월19일 오전 8시, 동학사승가대학은 하얀 눈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눈은 말없이 내렸다. 한문불전 원전을 강독하는 학인스님들 열의를 방해하지 않았다. 세로로 쓰인 한문을 읽기 위해 자가 등장했다. 왼손으로 자를 부여잡고 오른손에 들린 필기도구는 한문 한 자 한 자를 찍어 내려갔다. 학인스님 입에선 한문에 담긴 부처님 가르침이 국어인 한글로 흘러나왔다. 다른 학인 스님들은 골똘히 한문불전을 쳐다보며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교수 명오 스님 불호령이 떨어졌다. 부처님 가르침이 곡해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3학년인 사교반 금강경오가해 수업이었다.

경봉 스님 모시고 1956년 설립
해방 후 최초 비구니 교육기관

한문불전 원전 강독 최대 강점
서예·사군자로 인격 소양 함양
매주 불교영어회화·염불수업도

 

▲3학년의 금강경오가해 한문불전 강독 수업.

 


4학년 화엄반 수업을 찾아 나섰다. 실상선원에서는 동학사승가대학장 행오 스님이 화엄경을 강독 중이었다. 마찬가지였다. 사교반보다 더 큰 소리가 새어나왔다. 졸업을 앞둔 터라 행오 스님의 교육은 더 날카로웠다. 교육이 끝나면 ‘동학(東鶴)’ 도반들이었다. 학인스님들은 실상선원 마루에 앉아 계룡산 문필봉을 바라보며 미래를 그렸다. 탄탄한 한문불전 이해는 한국불교에서 나아가 한국사회에 있어 사표로서 부끄럽지 않은 출가수행자로 살아가는 자양분이리라. 표정이 밝았다. 동학사승가대학의 고집이 피워낸 연꽃들이었다. 교육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학장 행오 스님 인터뷰 중 옆방에선 화엄학림인 화엄승가대학원 수업이 한창이었다.

행오 스님은 동학사승가대학의 한문불전 원전 강독이 “동학의 자부심”이라고 했다. 스님은 “한문불전 교육은 다른 어떤 승가대학보다 가장 뛰어나다고 자부한다”며 “한문 한 글자 한 글자에 새겨진 부처님 가르침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환희심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만큼 교육이 철저했고 풍부했다. 교육원에서는 금강경 등 8과목을 교육하라 했지만 동학사승가대학은 더 가르친다. 치문, 도서, 선요, 능엄경, 금강경오가해, 화엄경 등등. 1학기 14강이 모자라다고 느낀 동학사승가대학은 경전을 땔 때까지 추가로 가르친다. 그래서일까. 학인스님들 열의도 만만치 않다. 한문불전을 원전으로 공부하고 싶은 학인스님들은 동학사승가대학을 찾는다.

점심공양시간에도 학인스님들은 빼곡이 메모한 흔적이 있는 포켓북 형태의 한문불전을 공부했다. 교수 명오 스님은 “승가대학 나왔다고 하면 한문불전 원전은 스스럼없이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양시간에도 한문불전을 놓지 않는 스님.

 

동학사승가대학이 한문불전 원전 강독을 중요하게 여기는 깊은 뜻은 따로 있다. 한문 한 자 한 자에 담긴 부처님 가르침을 머리로 이해시키는 게 아니었다. 부처님 가르침이 가슴에 닿아 행으로 이어지는 진정한 출가수행자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 전통은 40여년간 동학사승가대학에서 학인스님을 가르치고 지금의 동학사 사격을 갖춘 일초 스님에게 생생히 남아있었다. 스님은 동학사 화엄학림인 화엄승가대학원장으로 아직도 학인스님들을 교육 중이었다.

“동학사에서는 머리로만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는 사람을 출가수행자라 부르지 않습니다. 경전이 가슴으로 와서 행으로 이어질 때, 그때서야 출가수행자입니다. 배움이 가슴으로 들어오고 행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경전 문구 하나하나에 부처님으로 살아가는 마음가짐 하나하나가 있습니다. 경전 속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고 원력을 다시 세우는 겁니다.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생각이라도 마음에 두면 꽃 피울 씨앗이 됩니다.”

동학사승가대학 전통은 한국불교비구니사에 획을 그어왔다. 1958년 문을 연 청도 운문사승가대학보다 2년 먼저 산문을 열었다. 해방 뒤 1956년 경봉 스님을 모시고 비구니 교육도량으로는 국내 최초로 화합, 정직, 이타를 원훈 삼아 개설했다. 이후 수많은 비구니스님들이 동학사승가대학에서 수학했다. 대강백도 많이 배출됐다. 2007년 조계종정 법전 스님으로부터 종단 사상 처음으로 비구니스님에 대한 최고 지위인 명사 법계를 받은 고 세주당 묘엄 스님도 동학사승가대학을 거쳤다. 스님은 출가 후 1959년 동학사에서 최초 비구니 교수로 학인스님들을 가르쳤다. 운문사승가대학을 중흥시킨 명성 스님도 1956년 사교과를 졸업한 강백이다. 스마트교육을 표방한 김천 청암사승가대학장 지형 스님도 1973년 동학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교수로 활동했다. 동학사 주지 유곡 스님도 승가대학 출신이다. 유곡 스님은 엘리트 교육을 언급했다. 스님은 “요즘 출가하는 사람이 적어 학인스님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면서도 “동학사승가대학은 출가수행자를 뽑는 선불장이다. 소수 정예라도 엘리트 교육으로 참 수행자를 길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 동학사승가대학 설경.

 


전통은 동학사승가대학의 특화교육으로 이어졌다. 사진촬영, 꽃꽂이, 일본어와 영어, 인도불교사, 중국불교사, 선종사 등은 교육원의 표준교과과정 시행 전부터 실시한 교육이다. 당시에도 파격적인 커리큘럼이었다. 현재도 주말이면 꽃꽂이와 일어를 가르친다. 특히 동학사승가대학을 졸업한 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 자우 스님이 매주 금요일 불교영어회화를 강의한다. 자우 스님은 비로자나국제선원은 물론 국제포교사회에서 수업하는 불교영어 전문가다. 참선 등 주로 앉아서 교육과 수행을 병행하는 학인스님들을 위해 일요일마다 요가도 배운다. 서예와 사군자 수업도 동학사승가대학만의 특징이다. 1980년 후반부터 장산 김두한 국선작가가 지금껏 학인스님들을 지도 중이다. 인격은 물론 심신을 다스리기 위해서다. 사군자도 같은 이유다. 전남 미술대전 대상, 대한민국 서도대전 우수상 등 다수 공모전서 수상 경력을 가진 동화사승가대학 동문 법은 스님이 직접 가르치고 있다. 훌륭한 스승 탓에 학인스님들 실력도 출중하다. 대전에서 열린 한 공모전에 전 학인스님들의 작품이 입상한 적도 있다. 학인스님들은 연말이면 동향제를 열고 작품전을 열기도 한다. 불교상용의례로 가르치는 염불도 동학사승가대학 교육의 자랑이다. 진관사 국행수륙대재 등을 시연한 법밀 스님이 강의를 도맡고 있다.

 

 

▲동학사만의 특징인 서예·사군자 수업.

 


동학사를 거닐다 보면 도인이 지었다는 게송이 돌에 새겨져 있다.

동방정기생불천(東方精氣生佛天) 동방의 정기가 부처님의 하늘에서 생겼났나니
학역원무제불하(鶴亦願舞諸佛下) 학 역시 모든 부처님 아래 춤추길 원하였도다
사승심념통불령(寺僧心念通佛靈) 절 스님들 마음이 부처님의 영지에 통하니
찰나견성성불지(刹那見性成佛地) 찰나에 성품 깨닫고 부처님의 지위 이룸이라.

맨 앞 글자와 뒷 글자를 이으면 ‘동학사찰천하령지(東鶴寺刹天下靈地)’다. 부처님을 뽑는다는 선불장(選佛場),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하늘 아래 영지인 비구니 교육도량 공주 동학사승가대학 예가 그곳이리라.

공주=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227호 / 2014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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