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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잠재우는 법력에 수백 대중 감동

기자명 진현종

특집 - 프랑스 플럼빌리지 틱낫한 스님 친견기(상)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에 이어 요즘은 틱낫한 스님의 『화』가 베스트셀러 1~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화』의 저자 틱낫한 스님은 달라이라마와 함께 불자들의 존경을 받으며 세계적 성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본지는 지난 7월 11일부터 7월 19일까지 틱낫한 스님을 방문한 불교 저술가 진현종 씨의 프랑스 플럼 빌리지 틱낫한 스님 친견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틱낫한 스님이 어린이들을 비롯한 수백명의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걸으며, '보행 명상'을 하고 있다.

세존 입멸 후 2,500여 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 님과의 인연이 영아기에 머물고 있는 저 멀고도 먼 땅덩어리, 유럽. 그 중심에 근세 중국인들이 그 발음을 따서 법국(法國,중국음-파궈)이라 불렀던 프랑스가 있다. 과연 그 우연적인 명명(命名) 탓이었을까? 프랑스는 작금 유럽 내에서 불법이 가장 흥한 나라가 되고 있으니!

프랑스를 불교적 의미의 법국으로 만들고 있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분은 여러 권의 서적을 통해 한국에도 익히 알려진 틱낫한 스님이다. 따라서 스님을 만나러 가는 1만㎞의 여정은 비록 고되지만 우리시대 선지식을 친견한다는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마치 전라도의 평지를 연상케 하는 탁 트인 벌판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스님의 수행공동체, 플럼 빌리지(Plum Village)에 도착하기 무섭게 스님의 행방을 물었다. 연꽃 같은 미소로 환영의 인사말을 건네던 노 비구니 스님이 갑자기 입을 다물며 한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그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순간 나는 묘한 환희에 휩싸여 탄성마저 삼켰다. 양쪽으로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은 동남동녀의 손을 잡고 수백 대중들의 선두에서 조용히 걷고 있는 스님을 발견한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분명 그곳에 계셨지만, 정작 내가 본 것은 스님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에 구현된 평화 그 자체였다. 서있는가 싶으면 한 걸음 내딛고, 걷는가 싶으면 그렇게 서있는 정중동(靜中動)! 고요하되 환하고 절제된 듯 하면서도 한없이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나는 그것을 '소요(逍遙)하는 평화'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걷고 또 걸으며 수행하는 중생 앞에 불쑥 나타난 문구

"너는 이미 이루었다"



부지불식간에 경행(經行), 즉 스님이 '보행 명상(walking meditation)'이라고 부르는 수행대열에 합류했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앞사람을 따라 걷다가 의혹이 생길 무렵 눈앞에 한 문구가 새겨진 비석이 나타났다. "너는 이미 이루었다(You have arrived)."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미 부처이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온갖 악행을 일삼으면서도 뻔뻔스럽게 이역만리를 달려와 법을 물으려 하는 중생을 위해 스님은 이미 대답을 준비해둔 것이다.

잠시 뒤 대열은 연꽃이 만개한 못을 에워싼 채 좌정에 들어갔다. 연꽃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얼마 후 그 많던 대중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을 되새겨 보니 보행 명상에 동참한 첫 부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 스님과 그 많은 대중들과 함께 걸으면서 어느덧 무아지경에 들어간 것이었다. 행주좌와(行住坐臥)가 모두 수행이라고 하신 어느 조사의 말씀은 한 치도 그른 것이 없었다.

이른 아침 법회가 시작되었다. 스님들이 마치 교회 성가대처럼 앞쪽에 나와 베트남어, 영어 그리고 불어로 된 찬불가를 반주 없이 부르기 시작했다. 30분 동안 계속되는 찬불가는 한국 불자에게 퍽 낯선 것이었지만, 그 아름다움은 한국의 전통 염불과 비견할만했다. 이윽고 관음보살을 찬양하는 대목에서는 그 거룩한 자비심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듯 했다. 어느덧 스님들의 합창을 나지막이 되뇌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찬불가가 끝나자 팃낙한 스님이 법단에 올랐다. 스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법을 시작했다. 때로는 자리에서 내려와 칠판에 글을 써가며 설명하고 때로는 짧은 침묵을 계속하며 걸림 없이 법회를 이끌어 가셨다. 벽안의 불자들과 참석자들은 번갈아 짧은 탄성과 커다란 웃음소리를 내며 경청했다.

스님은 삼독심 중에서도 '화'를 주제로 삼았다. 삼독심(三毒心)은 어느 것 하나 가벼운 것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화', 즉 진심(瞋心)은 일시에 자타를 죽음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무서운 폭력성을 동반한 것이기에 특히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암과 같은 불치병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스트레스, 즉 화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볼 때 스님의 말씀은 그저 경청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말씀대로 수행력을 길러 일상화하지 않는다면 '사후약방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설법은 베트남어와 불어로 진행되었지만, 각국에서 온 불자들은 헤드폰을 이용해 자국어, 즉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어, 영어 등으로 설법을 들었기에 모두 스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만족하는 눈치다. 안타깝지만 한국어 서비스는 없어 영어권 사람들의 자리 한켠을 차지하고 있어야 했다.



환희심에 삼배하는 불자에 미소 지으며 귀엣말로

"수행에 전념하게…"



다음날 같은 시간 어제의 설법에 대한 질의 및 응답이 진행됐다. 설법이 끝나자마자 질의응답에 들어가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적어도 하루는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정말 풀리지 않는 의문, 그리고 반드시 해결해야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뻔한 질문과 뻔한 대답은 서로의 귀중한 시간을 뺏는 일일 따름이니까.

이 시간에는 언제나 어린이들이 먼저 질문에 임한다. 이 또한 한국 불교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대중 앞에서 조실·방장 스님에게 아무런 제한 없이 묻는 것이다. 아이들의 궁금증은 때로는 천진난만하고 때로는 신선하다. "스님은 왜 그렇게 말씀을 잘 하세요?" "스님들은 왜 모두 대머리인가요?" "스님들의 베트남어로 된 법명은 외우기가 너무 어려워요." 스님은 아이들의 질문이라 해서 결코 건성으로 넘기는 않는다. "법명이 어려우면 그냥 시스터(sister), 브라더(brother)라고 부르렴". 마치 할아버지가 친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쉬운 말로 성의를 다해 아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게다가 아이들의 집중력의 한계를 잘 아시기라도 하는 듯 30여분쯤 지나자 모든 아이들에게 밖으로 나가 뛰어 놀라고 당부하신다.

법회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더욱 진지해진다. 질문이 있는 사람은 스님의 옆자리에 앉아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다. 공개석상이지만 서양인들은 자신의 가족사와 같은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스님이 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며 최선을 다해 대답하자, 그는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쏟는다. 앞자리에 있던 한 불자가 조용히 손수건을 건넨다. 하나가 되어 같이 고민하며 눈시울을 적시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같이 해결해서 같이 기뻐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실감이 아닐 수 없다.

성철 스님을 친견하려면 삼천배를 해야만 했던 것처럼 틱낫한 스님은 자신을 취재하러온 각국의 기자나 저술가들에게 최소 3박4일을 플럼 빌리지에 머물게 한다. 두 스님 모두 권위를 내세우거나 신비감을 조장하기 위해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삼천배를 하거나 3박4일 동안 직접 수행 생활을 체험해보면 쓸 데 없는 잡념과 망상은 사라지고 정말 묻고 싶은 것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문제 자체가 해소되기도 한다.

한국 어느 산골 가난한 스님의 거처를 연상케 하는 조그만 책상과 책장 그리고 초라한 취침용 매트와 다구가 살림살이의 전부인 작은 방에서 틱낫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베트남식으로 정좌한 채 한시간 가량 내 질문에 성심껏 답해주셨다. 사실 인터뷰는 의례적인 것이지만 오랜 수행에서 비롯된 감화력 때문인지 대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망상이 끊어지는 듯했다. 이미 책에서 본 같은 말일지라도 각고의 수행을 한 스님들의 사자후는 백팔번뇌를 일시에 잠재우는 무서운 법력을 갖는 것이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나자 나는 환희심을 주체할 수 없어 불자로서 한국에서 하는 대로 스님에게 삼배를 올렸다. 절을 마치자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귀엣말을 하셨다. "수행에 전념하게(Just practice and practice)."

나는 알았다. 스님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은 다름 아닌 당신의 법명, 즉 일행(一行)을 들려주신 것뿐이라는 사실을. 한결같이 수행하는 것(一行)은 스님의 법명이자 스님이 내릴 수 있는 최상의 가르침이라는 내 작은 깨달음이 혹 상하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틱낫한 스님 인터뷰



수년 전 한국에 오신 적이 있는데, 그 인상은?

"베트남은 전쟁으로 많은 불교 사찰이 파괴되었는데, 한국은 불교 문화재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부러웠다. 아름다운 한국의 명찰과 팔만대장경같은 법보를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한국불교와 베트남 불교의 차이점은?

"같은 대승불교로 차이점은 미미하다. 물론 양국은 각자 나름대로 불교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왔지만 지금은 그 차이점의 강조보다는 공동의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불교에서 멀어진 젊은 세대들을 포교하는 것과 세계 평화 문제 같은 것 말이다."



세계불교도들은 스님을 4대 생불의 한 분으로 여기는데…

"우리는 잠재적인 붓다이고 석가모니는 현실의 붓다이다. 가능태와 현실태라는 차이점은 있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렇게 우리 모두 붓다인데 굳이 나를 생불이라 부를 이유는 없다."



한문을 잘 쓰시던데 베트남 불교가 보유한 불경의 상황은?

"문자개혁으로 젊은 세대는 한문을 모른다. 여기 젊은 스님들이 한문을 배우고 있긴 하지만 아직 능숙하다고 할 순 없다. 베트남어로 된 삼장(三藏)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산스크리트, 팔리, 영어 또는 불어로 된 불경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스님의 '전념(mindfulness)' 수행법은 일견 무척 쉬워 보인다. 과연 그 방법으로 윤회의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나?

"그것은 정도의 문제다. 초보자의 수준으로는 어렵겠지만, 수행이 진보해서 더욱 깊게 전념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스님의 책 『화』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데…

"한국은 전통적인 불교국가라 불교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고, 『화』는 현대인들의 생활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고있는 듯 하다."



진현종 (불교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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