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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세상에서 희망을 말하다

기자명 원영 스님
  • 기고
  • 입력 2014.01.02 17:18
  • 수정 2014.01.02 17:41
  • 댓글 0

연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이맘때쯤엔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소박한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다. 촘촘하게 적힌 일정표를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니,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이 곳곳에 박혀있다. 더러는 귓불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운 기억도 있고, 더러는 사려 깊지 못한 선택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래도 2013년을 관통하는 내 삶의 흐름을 살펴보니 나름 열심히 살았다 싶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는 연말이라고 가까운 도반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주 오랜만이다. 각자 바삐 살다보니 어쩔 수 없다. 시간이 꽤 흘렀어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제 본 얼굴처럼 익숙하게 미소 지었다. 함께한 추억이 있는 이와는 원래 이런 건가 보다. 이렇게 오랫동안 보지 못해도 전혀 낯설지가 않으니 말이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서로의 기억을 조금씩 꺼내고, 그걸 하나씩 완성된 추억으로 맞춰가며 우리는 다시 평온해지고, 변함없는 벗의 착한 심성에 안심했다. 이래서 부처님도 도반을 가리켜 “이 길의 전부”라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럴 때 꼭 빠지지 않는 화제가 있다. 바로 나이! ‘세월 앞에서 장사 없다’고 스님들도 나이를 짚어보며 허탈해하곤 한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도 한해가 끝나갈 무렵에는 승속을 막론하고 나이에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이제 아홉수라는 둥 삼재라는 둥 투덜대며, 희망보다는 안타까움의 비명을 더 많이 내지른다. 나이 무게만큼이나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무거운 마음속엔 뚜렷한 진실 하나가 들어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각자의 삶터에서 제 몫을 해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 말이다. 게다가 여기엔 단순한 개인적 희망뿐만 아니라, 어지러운 우리 사회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한마디로 출가자로서의 대사회적 역할에 대한 복잡한 심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참 많이 갈라졌다. 종교 때문에 갈라졌고, 이념 때문에 갈라졌으며, 빈부 차이로 갈라졌다. 각자 자기 얘기만 하느라 그렇게 소통 없이 갈라졌다. 한편 불교는 화합을 매우 중시하는 종교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칠불쇠퇴법’에는 “대중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행동하며, 화합하여 승가가 해야 할 일을 하는 한, 승가는 쇠퇴하는 일 없이 영원히 번영할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불교역사는 이 말에 의지해 늘 화합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금 현재, 한국불교는 그 ‘화합’이라는 미명하에 덮어버린 허물도 참 많다. 어떨 때는 불교계의 허물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좀 더 감추지 못한 걸 원망할 때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솔직한 심경이었음을 밝힌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잘못도 있을 수 있고 노골적인 비난도 있을 수 있지만, 불교계 허물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옹졸한 마음에 풀이 죽고 의기가 꺾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모든 잘잘못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고, 지금은 더불어 미래를 논하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갈라진 세상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건 결국 우리 몫이다. 거칠게 대립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다시 한 번 화합을 강조하며, 부드러운 말과 온화한 미소를 말하는 건 다름 아닌 우리들, 종교를 가진 이들이라는 말이다. 세상사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지만, 강해진 것은 언젠가 약해지고 올라간 것은 결국 내려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가 아무리 제각각 자기 입장만 내세워 세상을 갈라놓는다 해도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너나할 것 없이 ‘대화와 소통’, ‘이해와 공감’, ‘화해와 용서’라고 하는 공통된 정서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 원영 스님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는 “가장 큰 행복은 한 해의 끝에서, 지금이 시작할 때보다 낫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곧 새해가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시간이다. 내년 연말에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낫다고 느끼길 바라며, 모두에게 희망을 권한다.

 

원영 스님 metta4u@hotmail.com

 

[1227호 / 2014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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