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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수호·축생 제도하는 지혜 동물

  • 새해특집
  • 입력 2014.01.05 01:25
  • 수정 2014.01.06 11:14
  • 댓글 0

말은 강인함·생동감 대변
불법 이끄는 전법의 상징
백마사·법주사 설화 등장
민간신앙서 신성한 동물


말과 불교

▲ 만봉 스님의 십이지신상 중 말.

말은 박력과 생동감으로 대변된다. 외형적으로 순발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미끈하고 탄탄한 체형, 기름진 모발, 각질의 말굽 등의 특징을 지녀 강인한 인상을 주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말은 예로부터 고분미술·토기·토우·벽화 등에 자주 등장했으며 민담과 전설 등 민간에서 구전되는 이야기에서도 빠지지 않고 언급됐다. 특히 말은 상서로운 동물로 상징돼 하늘의 사신이나 중요한 인물의 탄생을 예언자 역할을 담당했다. 12지 가운데 일곱 번째 동물로 시각으로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방향으로는 정남(正南), 달로는 음력 5월에 해당된다.

불교에서도 말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축생을 교화하는 영물로 여겨왔다. 관세음보살은 하늘과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 등 6도를 윤회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데 각각의 세계에서 다른 모습으로 현신했다. 성관음(聖觀音), 천수(千手)관음, 마두(馬頭)관음, 십일면(十一面)관음, 여의륜(如意輪)관음 등으로 그 가운데 축생도에서 관세음보살은 마두관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두관음은 말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한쪽 손에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마두관음은 명왕의 하나로 마두명왕, 대력지명왕, 분노지명왕으로도 불리는 데 명왕이란 일체 중생을 교화하려는 부처님 뜻을 받들어 수행하는 지혜 광명, 즉 진언의 주인이라는 의미이다. 후세 민간에서는 마소 등 가축의 무병·식재(息災)·안전 등을 기원하기 위해 길 한 귀퉁이에 세워진 돌부처에 이 마두관음을 새기기도 했다. 축생계를 교화하는 마두관음과 달리 말은 전법 수레를 끄는 동물로 자주 묘사됐다. 특히 부처님의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에도 말이 등장한다. 팔상도 가운데 네 번째에 해당하는 ‘유성출가상’은 사문유관을 통해 출가를 결심한 싯다르타가 왕자로서 보장됐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이른 새벽 말을 타고 성을 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 중 유성출가상.

경전에 따르면 싯다르타는 아들 라훌라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잔치가 끝난 날 이른 새벽, 자리에서 일어나 깊은 잠에 든 아내 아쇼다라와 아들 라훌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별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곤 자신의 애마 칸타카를 타고 카필라성을 나서 구도의 길에 들어섰다.

주인과의 헤어짐을 직감한 말 칸타카는 이를 슬퍼하며 무릎을 꿇고 싯다르타의 발을 핥으며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칸타카는 주인 싯다르타의 서원이 꼭 이뤄 간절히 기원하며 주인이 가는 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처럼 말은 주인을 끝까지 신뢰하고 믿음을 주는 충성심 많고 의리 있는 동물로 상징된다.

말은 사찰의 창건 설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중국 낙양 백마사는 후안 명제가 인도에 파견한 채음과 진경 스님이 인도 고승 섭마등, 축법란과 함께 불경을 백마에 싣고 낙양에 돌아온 데서 유래했다. 백마사는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뒤 최초로 세워진 도량으로 ‘중국 제일 사찰’로 불린다. 1900년 역사를 지닌 백마사 입구 양쪽에는 송나라 때 조성한 두 마리의 백마상이 놓여 있다.

청주 속리산 법주사도 말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사찰 가운데 하나다. 법주사 창건 설화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때 천축국에서 흰 노새에 경전을 싣고 돌아온 의신 스님이 사찰을 창건하기 위해 절터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전을 싣고 있던 흰 노새가 어느 지점에 이르자 움직이지 않고 멈춰 서서는 갑자기 울부짖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스님은 이곳에 절을 지었다. 그리곤 노새 등에 싣고 다니던 경전이 여기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절 이름을 법주사(法住寺)라고 지었다.

그런가 하면 논산 불명산 쌍계사에는 일주문을 대신해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 고려 말 쌍계사에 있던 한 스님의 꿈속에 어떤 스님이 나타나 “말을 탄 사람이 절에 들어오면 화를 입는다”고 전했다. 그 꿈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조선이 개국되고, 사찰에 있는 스님들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받고 온 병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불명산을 뒤흔들었다. 그 소리에 놀란 스님들은 일심으로 목탁을 치며 독경을 했다. 스님들의 독경 소리는 불명산 계곡을 따라 구석구석 울려 퍼졌다. 그러자 쌍계사로 쳐들어오던 병사들의 말들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서거나 엎어져 말을 탄 병사들도 말에서 떨어져 대부분 죽었다. 이런 일이 입소문을 타고 방방곡곡 알려지면서 쌍계사를 찾는 사람들은 그 직위가 아무리 높아도 더 이상 말을 타고 절에 들지 못했다고 한다. 스님들은 이 때 말이 죽은 곳에 하마비를 세우고 천도재를 봉행해 줬다. 하마비는 곧 중생들에게 하심(下心)을 일깨워주는 방편과 같은 설화이다.

이처럼 말이 민간신앙에서부터 사찰창건설화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그 어느 동물보다 말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은호 인턴기자 eunholic@beopbo.com


사찰 명부전 ‘모란괴석도’가 대표적

불교·민속 문화에 나타난 말

말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축생계를 교화하는 영물로 여겨져왔다. 이런 까닭에 말은 사찰, 문화재 곳곳에 자주 등장한다. 양주 회암사지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부도탑의 기단에는 구름에 휩싸인 말이 생동감 있게 조각돼 있어 눈길을 끌고 있으며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법주사 마애불에도 창건설화와 관련해 경전을 실은 말이 새겨져 있다. 특히 말은 불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데 사찰 명부전에 그려진 불화 대부분에서 저승사자와 함께 등장한다.

▲ 모란괴석도.

대표적으로는 조선 후기 불화로 추정되는 ‘모란괴석도’가 있다. 저승으로 가는 말 모양의 괴석(기괴한 모양의 돌로 장수를 상징)과 모란이 함께 어우러져 눈길을 끈다. 불교문화재에서 말은 이렇게 신비로움과 저승세계와의 연결을 상징하는 동물로 표현돼왔다.

말은 민간 신앙에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말은 고대부터 지배자를 수호하는 영험한 동물로 여겨졌고 사람이 저승갈 때 주인을 태워 데려다 주는 신비로운 존재로 삼았다. 이런 믿음에 따라 주인이 죽으면 말을 함께 묻어 순장도 했고 무덤을 만들 때 의식을 하면서 다양한 말 모양의 토기를 제물로 사용했다.

▲ 국보91호 기마인물형토기.

신라 금녕총에서 출토된 국보 91호 기마인물형토기는 술 등을 담아 따를 수 있는 의례용 토기로 말을 탄 주인상과 하인상이 한 쌍이다. 주인과 하인의 의복과 각종 말갖춤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신라인의 생활상을 알려준다. 말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 토기와 토기 뚜껑 위에 만들어 붙인 말 토우 등 고대의 다양한 마형토기들은 주로 주술적이거나 의례용으로 사용됐다. 이는 말이 죽은 이를 하늘로 인도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임은호 인턴기자 eunholic@beopbo.com


1966년 현존 최고 무구정광경 출현

말띠해 불교 소사

△526년 백제 겸익(謙益) 스님이 중인도 상가나대율사(常伽那大律寺)에서 범문과 율부를 공부한 뒤 범본(梵本) 아비담장(阿毘曇藏) 오부율문(五部律文)을 가지고 귀국해 율부(律部) 72권을 번역 △538년 백제 성왕, 처음으로 불상·경교(經敎) 및 승려를 일본에 보냄 △574년 신라, 황룡사(皇龍寺) 장육불상(丈六佛像)을 주성(鑄成) △610년 고구려 고승 담징(曇徵), 법정(法定) 스님 일본에 건너감 △634년 신라 분황사 창건 △682년 신라 문무왕, 감은사 준공 △ 754년 황룡사 대종 주성 △802년 순응(順應)·이정(利貞)스님, 가야산 해인사 창건 △850년 신라 문성왕 진감혜소(眞鑑慧昭) 국사 입적 △946년 불사리(佛舍利)를 개국사에 봉안 △1018년 고려 현종(顯宗), 개국사탑을 중수하여 사리를 봉안, 계단(戒壇)을 개설하여 3,200여 인을 출가시킴 △1090년 우세승통(祐世僧統) 석후(釋煦)좬신편제종교장총록좭3권을 편수 △1210년 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智訥) 스님 입적 △1282년 고려 충렬왕 송나라 대장경을 강화 전등사에 봉안 △1510년 흥천사 사리각 5층 전소 △1810년 청나라에서 불사리를 건네 받아 대흥사에 봉안 △1930년 만해 한용운 스님 만당(卍黨) 조직 △1954년 전국승려대표자회의 불국사에서 개최 불교조계종 종헌 공포 시행 △1966년 익산 미륵사지 발굴,  불국사 석가탑 사리함에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판본으로 인정받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출현 △1990년 불교방송국 개국, 법주사 청동미륵대불 낙성 △2002년 3월4일 조계종, 금강산 신계사 복원 기원법회’ 거행, 4월30일 조계종,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기공식 거행, 5월20일~6월30일 ‘2002년 한·일 월드컵’템플스테이 운영, 7월29일 법륜 스님(정토회 이사장), 막사이사이상 평화부문 수상.

[1227호 / 2014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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