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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태와 살

불교에는 두 가지 커다란 기둥이 있다. 하나는 깨달음이요, 다른 하나는 자비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만약 이 가운데 하나가 없다면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깨달음의 무게와 자비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그런데 깨달음만 강조하고 자비를 강조하지 않게 되면 불교를 지탱하는 기초가 흔들리게 된다. 이 두 가지가 만나는 접점이 바로 ‘수행’이다. 따라서 수행이란 깨달음을 구하는 것과 동시에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불교기둥은 깨달음·자비
접점은 수행이라는 노력
내 안에 선한 덕성 키워
모든 생명에 전하길 기원

그래서 깨달음은 물론 자비 역시 초기불교 이래 매우 강조되고 있다. 자비는 자(慈)와 비(悲)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자비는 흔히 말하는 자선이나 불우이웃 돕기와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없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을 포괄하면서, 보다 본질적이며 수행론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자비는 여러 비유로 표현되는데, ‘화엄경’ 77권에 그 한 예가 나온다.

“깨닫는 마음은 가라라(迦羅邏), 연민[悲]은 태[胞], 자애[慈]는 살, 보리분(菩提分)은 사지, 이것들은 여래장(如來藏)에서 자라네.”
 
가라라는 범어 까라라(Kara-la)의 음사어로 보이는데, 그 의미는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는) 돌출된 이’란 의미로 쉬바나 비쉬누의 별칭이기도 하다. 보리분은 37보리분법을 말한다. 이들 말들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깨닫는 마음[覺心]은 번뇌를 제거하기에 위엄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가라라’로 표현한 것이며, 연민을 태[胞]라고 한 것은 생명을 보듬어 안는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자애를 살[肉]이라고 한 것은 생명을 양육하고 키운다는 의미이다. 보리분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방법이기에 두 팔과 두 다리의 사지로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자비의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비란 생명을 보듬어 안아 양육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왜 연민[悲]을 태[胞]라고 했을까. 어머니가 태속에 아이를 품고 있을 때, 그 마음은 어떨까. 혹시나 배속에서 아이가 힘들지는 않을까, 불편하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편안하고 안락하게 자랄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한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거나, 좋은 책을 읽기도 하고, 명상도 하며, 나쁜 소리나 이야기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으려 애쓴다. 아이에게 해가 될까 염려하고 조심하여 보호하는 마음, 바로 이 마음이 연민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 연민을 ‘이롭지 않은 것과 고통으로부터 존재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열망’이라고 설명한다. 그럼 자애[慈]는 왜 살[肉]이라고 했을까. 자식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을 건강하게 살찌운다. 어머니의 자애를 받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래서 자애를 ‘모든 존재들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려는 열망’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비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내 안에 이러한 선한 덕성이 자라도록 노력하고 가꾸어야 한다. 그래서 자비의 실천은 곧 수행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수행할까. 부처님께서는 먼저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하신다. 내가 나를 연민하고 자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나를 연민하는 것이며, 자애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자라나 가족과 이웃을 넘어 궁극적으로 모든 생명으로까지 확대되게 된다.
 
▲ 이필원 박사
새로운 해에는 나의 생명을 보듬어 안고 양육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 대한 자비심이 커지는 만큼 이 세상은 갈등과 분노가 줄어들고 행복해 질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28호 / 2014년 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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